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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독산성은 수원, 기흥, 동탄의 넓은 평야지대를 내려보고 있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산성이다. 북쪽으로 수원 광교산까지는 산이 거의 없는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어, 독산성에 올라서면 상당히 넓은 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이 곳은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거점이지만, 산성내에 물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그래서 임진왜란때 권율장군의 세마대 전설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독산성은 남한산성 등과 더불어 수도 서울의 남쪽을 지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산성으로 그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독산성은 산정사 부근에 성벽을 쌓은 퇴메식 산성으로 산성의 규모는 크다고 볼 수 없다. 현재 성벽을 쌓은 규모로 보면 남한강변을 지키는 적성산성이나, 온달산성과 비슷한 규모로 보이며, 많지 않은 군사가 머물면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산성으로 보인다.
세마대지가 있는 독산성은 독성산성으로 불리며, 산정상을 약 3km 정도 둘러싸고 있는 퇴메식 산성이다.
독산성 산성 중간 시야가 좋은 곳에 돈대를 설치해 놓고 있다. 산성이라 성벽을 높게 쌓지 않고 있으며, 흉벽같은 보호시설도 만들지 않고 있다.
산성 성벽은 낮게 쌓았으며, 자연지형의 경사를 성벽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주위에 나무가 많지만 원래는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을 것이다.
독산성 성벽에서 보이는 동탄신도시
독산성에서 보이는 수원지역 멀리 광교산이 보인다.
독산성 성문. 정상부근 작은 암문이다.
독산성을 유명하게 해주는 권율장군의 전설이 있는 세마대
독산성에 있는 보적사 오르는 길
독산성 아래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독산성
독산성은 다른 이름으로 독성산성이라고도 한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곳이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선조 27년(1594)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5년(1602)에 당시 부사 변응성이 다시 보수하고, 그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다시 공사했다. 둘레는 3,240m이고 문도 4개이지만 성 안에 물이 부족한 것이 큰 결점이었다. 이런 결점때문에 이 곳에는 세마대(洗馬臺)의 전설이 있는데, 권율 장군이 산위로 흰 말을 끌어다가 흰 쌀로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해 보이므로 왜군이 성안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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