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는 장소는 백제시대 서동요로 잘 알려진 무왕이 조성한 왕궁지로 잘 알려져 있다. 무왕대에 왕궁으로 조성한 것을 의자왕대에 사찰로 변신했다가 고려 시대에 사찰이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의 오층석탑도 고려전기의 석탑이라 한다. 이 곳에서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과 정비작업이 계속 진행중이다. 왕궁리 유적지는 전면부에 궁궐 정전이, 뒷쪽에는 궁궐 후원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왕궁이 있었던 자리를 헐고 후대에 사찰을 조성한 까닭에 사찰 금당과 강당터는 궁궐의 주요 건물터에 조성되어 있고, 현재의 석탑 자리에는 원래 목탑이 있었다고 한다. 후원에는 기암괴석 등을 이용하여 정원을 조성했다고 하며, 남조와 교류가 많았던 백제의 특성상 남조 형태의 정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왕궁리 오층석탑 앞에 있는 궁궐 정전 건물터. 왕궁리 궁궐 정전은 동서 32m, 남북 16m의 대형 건물이 이었다고 한다.
정전 동쪽편 건물터 발굴 현장
왕궁리 오층석탑 동쪽편 발굴 현장. 이 쪽에서 궁궐 건물터가 많이 발굴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왕궁리 오층석탑이 서 있는 자리는 원래 목탑이 서 있는 자리라고 한다.
왕궁리 오층석탑 뒷편에 자리한 금당터.
석탑 서쪽편 발굴 현장
궁궐 뒷쪽편에는 여러 종류의 왕궁 부속시설과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왕궁리에서 발굴된 석재들.
익산 왕궁리 유적지 들어가는 길
‘왕궁리성지’라고도 부르며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는 유적이다. 발굴조사한 결과, 이 유적은 적어도 세 시기(백제 후기∼통일신라 후기)를 지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석탑 동쪽으로 30m 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가마 2기를 발견했다. 특히 탑을 에워싼 주변의 구릉지를 중심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평지성으로 생각되는 성곽 유물을 찾았다. 성곽의 모습은 현재 발굴을 통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또한 성곽 안팎으로 폭이 약 1m정도로 평평한 돌을 깔아 만든 시설이 발견되어 성곽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지역 안에 있는 왕궁리 5층석탑(국보 제289호)과 절터의 배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유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직사각형의 성이 발견되어, 백제 후기의 익산 천도설이나 별도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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