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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객사문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관청 건물 중에서 가장 유래가 깊고 만든 수법이 뛰어나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의 하나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에다. 강릉객사가 있는 임영관은 고려 태조가 강릉에 세운 지방관청 건물로 지방관청 중에서는 유래가 상당히 오래된 곳으로 임영관을 이루고 있던 건물들은 대부분 헐리고 객사문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 복원이 이루고 있다. 강릉객사문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객사 출입문으로 고려시대 목조건축물의 특징인 맞배지붕에 주심포양식으로 만들어졌다. 건축의 수법이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고, 그 수법도 뛰어나기 때문에 문화재로서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강릉 임영관지 객사 출입문인 강릉객사문은 그 모습이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으면서도, 안정적이고 단아하며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백년이 넘은 오래된 건축물이지만 최근에 지은 건물처럼 깨끗하고 단정하게 보인다.
이 강릉 객사문은 맞배지붕에 삼문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고려시대 건축 양식의 특징인 주심포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배흘림기둥이 인상적이다.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하고 있는 맞배지붕.
지붕을 받치고 있는 주심포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구조.
약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잘 구현되어 있는 배흘림 기둥. 주심포 양식과 함께 안정감을 주고 있다.
객사 출입문 문짝. 장식적인 면을 배제하고 있다.
강릉객사문 서까래
여러방향에서 본 강릉객사문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으로, 현재 객사 건물은 없어지고 이 문만 남아 있다. 객사란 고려와 조선시대 때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학교가 헐린 뒤 1967년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서게 되고 현재는 마당에 객사문만 남아 있다. 남산의 오성정·금산의 월화정·경포의 방해정은 객사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다. 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앞면 3칸에는 커다란 널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형태이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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