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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도호부는 인천지역을 관할하던 지방관청으로 지방수령 중에서 높은 편에 속하는 종3품 도호부사가 근무하던 곳이다. 원래의 위치는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문학초등학교로 변신해 있으며, 지금도 동헌일부와 객사가 남아 있다.
보통 지방관청은 객사를 중심으로, 지방수령이 근무던 동헌, 숙소인 내아를 비롯하여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던 이방청 또는 작청 등이 있으며, 주변에는 지방 공공교육기관인 향교가 배치되어 있다. 현재 복원된 인천도호부청사는 객사, 동헌 그리고 출입문이 아문이 향교 동쪽편에 복원되어 있어 역사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복원된 인천도호부청사. 출입문격인 아문이 앞쪽에 있고, 객사와 동헌이 나란히 있다. 이 곳에는 전통문화체험 등 다양한 행사와 여러 민속자료들을 체험할 기회를 주고 있다.
입구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공덕비들. 전형적인 지방관청의 모습이다.
인천도호부 청사 정문인 아문. 2층 누대로 되어 있으며, 좌.우에 민원이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아문은 관아의 정문으로 2층으로 된 누대에 위풍당당한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문은 세 칸으로 나누어져 있어 외삼문이라 하는 데, 가운데 문은 주로 수령만이 출입하고 좌우문은 일반인이 이용하였다. 이 문에 이르면 수령이하 모든 사람이 말에서 내려 걸어서 출입하는 것이 통례였으며, 좌우에 건장한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어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막았다. 또한 대문의 공간 일부를 이용하여 민원인 들의 임시 대기실로 쓰기도 하였다. <출처:인천시청>
객사와 향교에서 내려다 본 아문 주위의 풍경
아문 좌우의 행각.
인천도호부 청사의 중심인 객사
지방 수령인 인천도호부사의 집무공간인 동헌
객사와 동헌 출입문이 있는 공간
지방수령인 인천도호부사가 관장했던 공공 교육기관인 향교
도호부는 조선시대 행정기관의 하나로 상급기관인 목(牧)과 하급기관인 군(郡) · 현(縣) 사이에서 행정을 담당했던 관청이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을 8도(道)로 나누고 도(道)아래 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 현을 두고 지방행정업무를 관장하였다. 인천에 도호부가 설치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초기 학자이자 명신(名臣)인 강희맹(姜希孟)이 쓴 "인천부호승호기(仁川府陞號記)"에 1424년 이미 객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최소한 그 이전에 도호부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도호부에는 당초 왕권의 상징인 객사(客舍)를 비롯하여 부사의 집무처인 동헌(東軒), 내동헌(內東軒) 등 15~16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현재는 문학초등학교 교정에 객사와 동헌 일부만 보존되어 있다. 이 곳에 복원한 건물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花島鎭圖>를 근거로 객사, 동헌, 공수 등 7동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출처:인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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