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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강릉 임영관지 칠사당

younghwan 2010. 9. 2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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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관아인 임영관지에 건물로서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인 칠사당이다. 이름으로는 사당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관청건물로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다양한 용도로 쓰인 건물로 보인다. 보통 조선시대 관아는 객사와 동헌, 내아를 기본으로 하여 이방청, 작청 등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는 건물부터 여러 종류의 건물이 있는데, 이 곳 칠사당은 시대에 따라서 다른 용도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에 불타버린것으로 다시 지었다고 하며, 군영 등의 용도로 사용하다가 1950년대까지 시장 관사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반 관아 건물 형태와 가정집의 형태가 섞여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강릉 임영관지의 칠사당 전경. 이 건물은 시대에 따라서 용도가 변함에 따라 계속 그 형태가 변해온 것으로 보이며 앞면 7칸의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건물이다.


이 칠사당 건물은 구한말 고종때 불타버린 것을 새로 지었다고 하며, 구한말 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정자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누마를 앞쪽으로 달아 내어서 'ㄱ'자 모양을 하고 있다.


누마루를 올라가는 작은 사다리 모양의 계단


앞면 7칸 중에서 가운데 3칸을 대청마루이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칠사당 중앙의 넓은 대청마루.


기둥에는 배흘림을 적용하지 않아 약간 불안해 보인다.


이 건물의 공포는 주심포도 아니고 다포계도 아닌 이익공양식을 사용하였다.


강릉 칠사당 건물은 모퉁에 독립된 공간인 툇마루를 여러개 두고 있다.


건물 뒷편


칠사당 입구인 솟을 대문


솟을대문 양쪽으로 행랑채가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관공서 건물로 일곱 가지 정사 (호구,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비리단속에 관한일)를 베풀었다 하여 칠사당이라 불리었다. 이 건물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에 고쳐 지었고, 1726년에 크게 수리하였으며, 1866년에는 진위병의 군영으로 쓰이다가 이듬해에 화재로 타 버린 것을 강릉부사 조명하가 다시 지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수비대가 사용하였고, 그 후에는 강릉 군수 및 강릉시장의 관사로 1958년까지 사용되었다. 정면 좌측에 누마루(다락같이 한층 높게 만든 마루)를 별도로 달아 낸 'ㄱ'자형 평면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측면 1칸은 툇칸(건물의 덧달아 낸 칸, 물림칸]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뒷편에도 방 2칸과 툇마루(방이나 마루 바깥에 붙여 꾸민 좁은 마루)를 툇간으로 구성하였다. 누마루 부분의 4개 기둥과 전면의 툇기둥은 둥근 기둥으로 둥근형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이익공(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 쇠서 모양을 내고 초각한 공포재의 하나)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조금씩 변형되어 조화를 잃은 면도 보이나, 전체적으로 관청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강릉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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