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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_현대 건축

인천항 홍예문, 일본인 조차구역 출입문

younghwan 2010. 8. 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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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개항장 중 하나인 인천항은 항구 안쪽 자유공원 아래로 청.일 양국의 조계지가 있었고, 언덕에는 많은 서양인들의 별장이 자라잡고 있었다. 그 중 일본인 조계지는 일본 영사관을 중심으로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한일합방 이후에는 인천 행정의 중심지로 최근까지 그 역할을 해 왔다.

 이 곳 중구청 부근에는 아직도 많은 일본식 가옥이 남아 있으며, 거리의 모습 또한 전형적인 일본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곳에서 일본인 조차구역을 정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서쪽편에는 청.일 조계지경계계단이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인이 사는 지역과는 뒷쪽편 언덕에 있는 홍예문이 그 역할을 해 왔다.

 이 홍예문은 1908년에 일본 공병대가 건설한 것으로, 당시 일본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료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금은 높은 건물들이 있어서 앞쪽 전망이 크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토목 구조물이다.


인천 홍예문은 언덕에 굴을 파서 만든 구조물로 외벽을 화강석으로 쌓아서 만들었다. 자동차1대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로 그 높이는 높은편이라 할 수 있다.


인천 홍예문 아치


홍예문 위쪽으로는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홍예문 앞쪽으로는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게 되어 있다. 개항장 인천항의 중심이 인천부청사(현 중구청)에서 멀지 않은 거리이다.


홍예문을 나서면 한국인 거주지역으로 그 중심에 오랜 역사의 제물포고등학교가 있다.


제물포고등학교와 자유공원 가는 길


옛날 홍예문 모습(모형)


인천 홍예문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은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에 준공하였다. 당시 일본이 자국의 조계지를 확장하기 위하여 조성한 축조물이다. 현재 인천의 남북을 연결하는 인천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당시의 일본 토목공법 및 재료에 대한 사료로서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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