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근대_현대 건축

인천항 옛 제물포구락부, 외국인 사교클럽

younghwan 2010. 8. 7. 17:31
반응형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한 옛 제물포구락부 건물이다. 1901년에 지어진 2층 벽돌건물인 이 건물은 당시 개항장인 인천항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활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건물로 인천시장 관사 바로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병합하기 전까지는 많은 외국인이 찾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는 일본군 장교들의 사교클럽, 미군의 장교클럽 등으로 권력을 가진자들의 사교클럽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옛 제물포구락부의 모습을 재현한 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자유공원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구한말 역사현장과 볼거리를 주고 있다. 내부는 옛 사교클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술을 마시던 바와 작은 식탁, 그리고 각국에서 기증한 것으로 보이는 물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구한말로 서구인들이 노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 내부의 풍경이다.



옛 제물포구락부. 2층 건물로 자유공원에서 내려오는 계단과 연결된 출입문을 통해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2층 출입문


이 제물포 구락부는 러시아인이 설계한 2층벽돌조 건물이다. 사교클럽의 핵심시설인 바를 비롯한 편의시설은 대부분 2층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1층은 사무실이나, 주방같은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에 지어진 서울 정동의 러시아공사관을 비롯하여 여러 근대건축물들을 러시아인이 설계하여 건축하였는데 이런 건물들과 비슷한 형태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 건물은 창문을 크게 만들지는 않고 있으며 단순한 형태로 창문 위쪽에 장식을 두고 있다.


옛 제물포구락부 외관


제물포구락부 내부로 들어가면 홀 중앙에는 사교클럽임을 말해주는 바가 설치되어 있다.


내부는 주로 각국 문화를 소개하는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891년 청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으로 조직되었다. 처음에는 둥구 관동1가의 목조 단층건물에서 출발했다가, 1901년 지금의 자유공원 기슭에 지상2층의 벽돌조 건물을 지어 옮겨왔다. 설계자는 러시아인 사바찐으로 건물안에 사교실, 당구장, 독서실과 외부에 따로 테니스장을 설치하는 등 사교활동에 필요한 편의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그러나 이 건물이 갖는 사교장으로서의 기능은 1914년 각국 조계가 철폐됨에 따라 중단되었다. 이후 일본재향군인회가 사용하면서 정방각으로도 불렀으며, 광복 후 미군의 장교클럽, 시립박물관, 문화원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현재 제물포구락부의 옛 모습을 재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출처:인천시청>

인천에 있던 외국인들의 사교모임인 제물포 구락부의 사교장으로 쓰기 위해 광무 5년(1901)에 지은 것이다. 1913년 일본제국 재향군인회 인천연합회 소속의 정방각으로 불리다가, 1943년 일본부인회관으로 사용하였다. 광복 이후로도 정치 변화에 따라 여러 용도로 쓰였는데, 1990년부터는 인천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2층 벽돌집으로 근대 개항 이후 복잡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호화스러운 건물이다. <출처: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