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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의정부 수락산 입구 서계 박세당 사랑채, 조선후기 대표적인 중농주의 실학자

younghwan 2010. 9. 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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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중농주의 실학자인 서계 박세당 선생의 고택이다. 원래는 안채,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를 갖춘 양반가의 대 저택이었으나 한국전쟁때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사랑채만이 남아 있다. 원래 저택의 규모가 상당히 컸었던지 지금도 여러동이 건물에서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물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2칸으로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누마루가 사랑채에 붙어 있다. 사랑채의 방향은 서향으로 뒷쪽으로는 수락산을 등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도봉산 봉우리들이 보이는 경치가 상당히 수려하고, 수락산 계곡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박세당 선생은 관직을 그만둔 뒤 이 곳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에 관련된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의 아들 박태보 선생은 숙종때 인현왕후 폐위에 반대하다 죽었으며 그를 모신 서원인 노강서원이 서울 노량진에 있다가 60년대에 이 곳 수락산 자락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수락산을 뒤로하고 도봉산을 바라보고 있는 서계 박세당 선생의 고택. 지금은 사랑채만 남아 있으며, 주위에 후손들이 사는 여러동의 주택이 있다. 상당히 넓은 규모의 저택이었던 것 같다.


이 저택의 사랑채는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앞면 5칸의 규모가 있는 건물이다. 오른쪽으로 누마루를 내어 놓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넓은 마루를 두고 있다.


고택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랑채. 넓은 마루는 많은 사람들과 학문을 논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조선후기에 많이 유행한 것으로 보이는 정자같은 느낌의 누마루. 이 곳에서 책을 저술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마루에 걸터 앉으면 멀리 도봉산 봉우리들이 보인다.


사랑채 건물은 전체적으로 5칸이지만, 양쪽끝 방는 그 크기가 작아 보인다. 이 저택은 경치가 좋은 수락산 계곡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방을 많이 두고 있다.


왼쪽편 3칸은 큰 방과 작은 툇마루로 되어 있는 것 같다.


큰 마루 뒷편에도 방을 두고 있으며, 누마루와 연결된 방이 제일 좋은 방이어서 박세당 선생이 머물렀던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서계 박세당 선생 고택의 사랑채


사랭채 뒷쪽에는 새로 지은 한옥건물이 있는데, 선생을 기리는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보인다.


사랑채 앞에는 넓은 마당이 있고, 그 가운데 커다란 고목이 우뚝 서 있다. 주변에 텃밭이 많이 있는데 선생이 직접 농사를 지었던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문.


앞쪽으로는 도봉산 바위봉우리들이 보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계 박세당(1629∼1703) 선생이 저술 활동을 하던 건물이다. 선생은 조선 현종 1년(1660)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자리에 올랐으나 40세에 관직을 그만두고 이곳에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또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체험한 것을 토대로 그의 대표적인 농학서 『색경』을 저술했다. 처음에는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를 갖춘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규모였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바깥 사랑채만 남아 있다. 사랑채 규모는 앞면 5칸·옆면 2칸 반으로 누마루가 덧붙어 있어 乙자형 구조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동쪽의 수락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서향집에서 왼쪽을 향하고 있다. 보통 좌향의 배치에서는 남향이나 남서향, 남동향을 따르는 것에 비해 이 가옥은 방향보다 배산임수의 자연지세에 따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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