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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중앙박물관] 강서대묘 사신도, 고구려 기상이 넘치는 동물투쟁도

younghwan 2010. 12. 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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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1층 고고관에서는 특별전시로 대표적인 고구려 벽화인 강서대묘 사신도를 전시하고 있다. 이 사신도는 1930년대에 벽화를 보고 모사한 그림으로 실제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강서대묘는 북한 평안도 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고구려 고분으로 1900년대 초에 그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내부는 대형 화강암 판석을 수직으로 쌓아 만든 널방 벽체와 천정으로 이루저여 있으며 특별한 장식이 없이 사방이 벽화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기운생동하는 사신도와 유려하고 다채롭게 표현된 천장 그림들은 고구려 무덤벽화의 절정기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북벽의 현무가 연출하는 긴장감 있는 화면 구성과 회화적 완성도는 조사보고 당시부터 국내외의 이목을 끌었으며,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 벽화를 모사했다고 하며,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벽화도 이 당시에 모사한 그림 중에 하나이다. 일제강점기에 중앙박물관에서 공식으로 모사한 그림으로 생각되며 그 수준 또한 상당히 높아 보인다.

 청룡.백호.주작.현무로 이루어진 사신은 중국 한나라때 처음 묘사되기 시작하여, 후대에 많이 그려졌던 그림인데, 고구려 사신도 벽화가 그 수준이 가장 높고 잘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를 비롯하여 후대에 왕릉을 조성할 때에도 사신도를 그리거나 조각으로 새겨 넣는 등 오랜 세월 동안 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존재로서 그 위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신은 봄과 동쪽을 상징하는 청룡, 여름과 남쪽을 상징하는 주작, 가을과 서쪽을 상징하는 청룡, 겨울과 북쪽을 상징하는 현무로 구성되어 있다. 동양에서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도교와 유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와 사상에도 반영되어온 음양오행설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 중 하나로 오늘날 풍수지리사상에도 그 근간을 이루는 내용 중 하나이다.


강서대묘 북벽의 현무의 모습을 그린 벽화이다. 강서대묘의 사신도를 비롯하여 고구려 벽화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통털어서 가장 대표적인 벽화라 할 수 있다. 서방세계에서 사자가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 동물투쟁도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으며, 서역과의 문화적 교류의 한단편으로도 많이 소개되는 벽화이다.


이 그림은 뱀이 거북을 감은 형상으로 두 동물의 투쟁모습을 생생하고 기운이 살아 넘치는 역동적인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강서대묘 벽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그림으로 고구려벽화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회화로서도 상당히 우수하고 잘 그려진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는 벽화이다.

널방 북벽의 현무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현무는 뱀이 거북을 감은 형상으로 거북이와 뱀이 마주 보면서 서쪽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다. 마주보는 머리는 비스듬히 허공을 쳐다보는 거북과 뱀의 크게 벌린 아가리에서는 불꽃간은 기운이 뿜어 나온다. 거북이 자아낸 운동감과 뱀이 이루어 낸 탄력성이 잘 어우려져 역동적인 현무를 만들고 있다. 북방의 수호자인 현무는 주작과 함께 음양의 기운을 순조롭게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무의 개념은 중국 한나라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뱀과 거북이 한 몸을 이룬 전형적 모습은 한나라 때에 처음 등장하지만 이후에도 거북만으로 표현된 경우가 적지 않다. <출처:중앙박물관>


강서대묘 동쪽 벽면에 그려진 청룡이다. 흔히 좌청룡이하고 하는 동쪽과 봄을 상징하는 상스러운 동물로 출입문인 남쪽문을 향하여 불을 뿜고 있는 모습이다. 백호와 함께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대표적 상징으로 지금까지도 풍수에서 좌청룡.우백호의 기운의 지세를 추구하고 있다.


불을 뿜고 있는 청룡의 얼굴을 생동감있고 활기차게 묘사하고 있다.

널방 동벽 청룡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청룡은 널방 입구인 남쪽을 향해 왼쪽 앞발을 크게 내닫으며 하강하는 모습이다. 커다란 S자 모양의 가느다란 목과 굵은 몸통, 계단꼴을 이루면서도 유연하게 뻗어 나간 꼬리, 적절하게 내딛고 뒤로 뻗은 네 다리가 서로 어우러져 청룡의 자태를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있게 만들어 준다. 화려하면서도 치밀한 몸체의 묘사와 채색이 돋보인다. 청룡은 사신 중 동쪽의 수호자이며 일찍이 백호와 함께 벽사의 기운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 청룡과 백호에 대한 옛사람들의 인식은 중국 신석기시대 무덤에서 발견딘 좌우의 용과 호랑이 형상 조개껍질 더미에서 처음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이들이 약 6천년 전부터 죽은 이의 삶터를 지키는 존재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청룡의 머리 뒤쪽에 대형 철못의 흔적으로 보이는 검은색 방형 점이 그려 있고 그 아 아래에 철녹을 표현한 듯한 붉은선이 있다. 이러한 검은 점이 널방 네 벽의 비슷한 위치에서 확인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강서대묘 널방 출입문 양쪽에 암수 한쌍으로 그려진 주작이다.  닭의 부리에 날개와 꼬리깃이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는 동물로 중국의 봉황, 서양에서 말하는 불사조인 피닉스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상서러운 동물이다.


동쪽편에 그려진 주작. 서양에서 많이 묘사하고 있는 불사조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서쪽편에 그려진 주작

날개달린 주작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암수 주작은 널방 입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모습이다. 널방 입구 주변은 넝쿨무늬로 장식하였다. 부릅뜬 눈, S자를 이룬 목과 몸통, 원형에 가깝게 활짝 편 날개와 반원꼴로 말려 올라간 세갈래 꼬리깃 등이 주작을 거세고 힘있는 존재로 보이게 한다. 두 주작 모두가 화려한 인동 잎에 싸인 연봉우리를 부리에 한줄기씩 물고 있다. 주작의 다리 아래쪽에는 봉우리가 여러 개가 연결되어 산맥을 이룬 산이 그려져 있다. 주작은 사신 중 남쪽을 수호하며 현무와 함께 음양의 조화를 관장하는 동물이다.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 주작은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두 날개을 활짝편 새로 한 쌍으로 등장한다. 머리에는 깃털관이 있고 부리는 닭의 부리에 날개와 꼬리깃이 몸에 비해 과장되게 표현되었다. 벽화 속에 등장하는 주강는 닭의 형상에 가깝게 그려진 예도 있지만 대체로 고대 중국에서 깃털달린 동물 중 으뜸으로 칭했던 봉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강서대묘 서쪽편 벽에 그려진 백호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호랑이의 모습과는 다르게 용이나 상서스러운 동물처럼 묘사되어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서쪽편 청룡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입구인 남쪽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백호의 얼굴은 약간 해학전인 면이 보인다. 실제 호랑이의 얼굴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인다.

널방 서벽 백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서쪽을 관장하는 백호는 청룡과 짝을 이루어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수호신으로 인식되어 왔다. 동벽의 청룡과 마찬가지로 남쪽 널방 입구를 향해 포효하며 내닫는 모습의 백호는 매우 환상적으로 표현되었다. 기본 자세와 태도는 맞은편 청룡과 거의 같다. 다만 역 S자꼴을 이루며 목과 몸통으로 이어지는 선이 보다 가파르고 치밀한 세부 묘사를 생략한 모통 표현, 상대적으로 가늘어 보이는 네 다리의 묘사 등이 백호 나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점이 다르다. 넓은 혀를 내민 백호에는 줄무늬와 호피무늬를 부분적으로 그려 넣었을 뿐, 붉은 색으로 엷게 채색한 몸에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았다. 앞발을 크게 내민 대각선 구도가 속도감과 운감을 더해 주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고구려의 사신
청룡.백호.주작.현무로 이루어진 사신은 대표적인 상상 속 신수이다. 사신은 동서남북의 네 방향,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계절, 하늘 사방의 29별자리와 관련있는 존재이며 벽사와 음양조화를 뜻하는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본격적으로 사신이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한대부터인데 시기별.지역별로 인식과 표현 기법에서 변화와 발전을 계속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무덤벽하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 사신은 해와 달, 별자리, 상서로운 동물, 연꽃 등과 함께 내세를 이루는 한 요소로 무덤칸 천장에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5세기까지는 표현과 배치가 정형화되 않아 기이하고 어색한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고 쌍을 이뤄 나타나거나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특성은 점차 사신에 대한 인식이 체계화되면서 신령스러운 동물 특유의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해 나가게 된다. 그리하여 6세기 이후에는 벽화에서 그 비중이 점차 높아져 무덤칸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사실상 유일한 주제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로부터 단지 내세를 구성하는 하나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독자적 존재이면서 무덤의 수호자로 격상된 사신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강서대묘는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에 있다. 삼묘리에는 3개의 흙무지돌방무덤이 삼각형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는데, 제일 남쪽의 가장 큰 무덤이 강서대묘이다. 1900년대 초반부터 벽화 무덤이라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져 외부인들의 무덤 안 출입이 계속되었으나 1912년에야 본격적인 내부조사가 이루어졌다. 무덤의 방향은 남향이며 무덤칸은 지상에 축조되었다.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진 외방무덤으로, 잘 다듬어진 대형 화강암으로 무덤칸의 벽과 천장고임을 축조하였다. 대형 화강암 판석을 수직으로 쌓아 만든 널방 벽체가 서로 만나는 곳의 상부는 끝부분을 각이 지게 깍아 내어 처음부터 약간 좁혀진 상태로 천장을 고일 수 있게 하였다. 널방의 천장구조는 평행삼각고임이다. 무덤 안의 돌 벽면에 직접 벽화를 그렸다. 벽화의 중심 주제는 사신이다. 아무런 배경 장식이 없는 널방 벽면에 사신을 가득차게 그려 넣었다. 특히 기운생동하는 사신도와 유려하고 다채롭게 표현된 천장 그림들은 고구려 무덤벽화의 절정기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북벽의 현무가 연출하는 긴장감 있는 화면 구성과 회화적 완성도는 조사보고 당시부터 국내외의 이목을 끌었다. 그 뿐 아니라 천장고임에는 연꽃, 비천,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 기린, 봉황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상서로운 존재들, 넝쿨무늬, 산악 등을 그려 넣아 신선 사상과 불교적 내세를 표현하였다. 또한, 천장석 중앙에는 왕의 표지로도 이해되는 황룡을 그려 넣었다. 이러한 벽화들에 대한 모사 작업이 1912년과 1930년 무렵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전형적인 외방무덤 구조, 사신을 중심 주제로 삼은 벽화구성, 최고조에 이른 사신 묘사 기법 등으로 보아 무덤의 축조와 벽화 제작 시점은 6세기 말일 가능성이 높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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