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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홍성 엄찬 고택, 성삼문선생이 태어난 마을에 남아 있는 후손들의 집

younghwan 2010. 12. 2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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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는 조선초 한글창제에 큰 역할을 했으며,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다가 죽음을 당한 사육신 성삼문 선생의 외가가 있던 곳으로 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는 그를 기르는 사당인 노은단과 유허비가 남아 있으며, 성삼문 선생을 기리는 대표적인 유적지라 할 수 있다. 선생이 태어난 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오래된 고택이 한채 있는데 선생의 외손인 엄찬이라는 사람이 살았던 집이라고 있다.

 이 저택은 1670년대에 지었다고 전해지며,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않고 건물만 남아 있는 집이다. 이 가옥은 문간채와 안채가 갖추어진 양반집이었으나 지금은 문간채가 없어지고 안채만 남았는데 평면은 'ㅁ'자형 집이다. 가옥의 대지는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건물은 후대에 여러번 개조된면은 있지만,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양반집인 'ㅁ'자형 가옥과는 주택의 구조가 약간 다른 조선전기 양식이 남아 있는 건물로 보인다. 건물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된 것은 아마도 선생의 외손 엄찬이 지은 고택이라서 그 의미가 깊어서 사람들이 허물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홍성 엄찬 가옥은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진 건물로 서쪽을 향하고 있는 본채를 중심으로 건물을 달아 내어논 형태를 하고 있다. 별도의 사랑채를 두지는 않고 건물 바깥쪽으로 누마루처럼 쪽마루를 내어놓은 사랑방을 두고 있다.


사랑채 역할을 하는 방이 3칸으로 바깥쪽으로 누마루 형태의 마루를 내어 놓고 있다. 사랑채 마루는 높은 언덕에 있는 형태가 되어서 마루에 앉아 있으면 동네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들판에서 농사를 짓는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사랑채 바깥쪽으로 반칸 정도 내어 놓은 마루는 정자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랑채는 안쪽과 바깥쪽으로 크게 문을 달아놓고 있어서 바람이 잘 통하는 시원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은 후대의 가옥에 비해 작게 만들어졌고, 그 옆으로 행랑채러머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안채 가운데에는 3칸짜리 큰 대청마루가 있고,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남쪽은 사랑채, 안쪽은 안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사진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대청마루가 자연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대청마루와 천정의 서까래


안채와 연결된 건물에는 부엌과 광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연결되어 있다.


안채로 사용된 북쪽편 건물에는 방이 3칸 정도 있다. 건물의 모양새에서 조선후기의 'ㅁ'자형 양반저택과는 약간 다른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쪽편에는 원래부터 방이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외양간처럼 생긴 건물들이 있다.


안채 바깥쪽에도 외양간같은 시설이 있고, 그 옆에 머슴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1칸짜리 작은 방이 있다.


이 가옥은 옆면이 8칸으로 큰 건물처럼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넓지가 않고 방도 많지는 않다. 외벽은 흙벽돌로 마감을 하고 있는 전통가옥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마을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배산임수의 옛 양반집의 모습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삼문 선생이 태어난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마을.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의 외손 엄찬의 고택이라 전하는 옛집이다. 1670년대에 지었다고 전하며, 지금은 연고가 없는 개인의 소유가 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집에서 조선 현종 13년(1672)부터 숙종2년(1676)까지 4년간 성삼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하였다고 한다. 또 성삼문의 둘째 딸이 제사를 올렸다고 전하기도 하여 이 건물은 그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처음 지을 당시에는 문간채·안채 등이 갖추어진 집이었으나, 지금은 문간채가 남아있지 않다. 약간 높은 대지에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ㅁ'자형으로 지었다. 본채는 북쪽은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나머지 동서남쪽 부분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과 앞면이 사디리꼴 모양인 우진각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벽은 옛날대로 흙벽을 유지하고 있으며, 건물의 일부가 허물어졌으나 중요한 부분은 잘 남아있다. 일부 개조된 부분이 있지만 조선 시대의 특징있는 구조양식과 주거생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전통가옥으로 중요하다. 또한 이 마을에는 성삼문의 위패를 모신 '노은단'과 '노은서원유허비' 등이 있으며, 도지정 전통문화보존마을로 관리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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