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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남쪽 지역인 남포면 일대에는 조선시대에 남포현이 있어던 지역이다. 금강하구 서해안에서 서울 방향의 육로와 서해안 뱃길이 지나가던 이 고장은 고려말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곳으로 충청수영이 설치된 오천과 보령읍성, 서산의 해미, 홍성의 결성 등과 함께 서해를 통해 침입하던 왜구에 대처하기 위헤 읍성을 쌓았던 고장 중 하나이다.
남포읍성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쌓았던 전형적인 읍성의 모습을 하고 있어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도시화에 소외되었던 까닭에 읍성의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포읍성에는 주로 관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읍성은 둘레 900m 정도로 그리 넓다고는 볼 수 없지만 높이 3.6m의 석축성으로 상당히 견고하게 쌓은 읍성이다. 동.서.남쪽에 성문을 두고 북쪽편에 관아인 동헌과 객사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문은 지금은 원래의 모습이 남아 있지는 않으나 옹성을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내에는 관아 건물인 동헌, 문루인 진서루, 동헌 출입문인 옥산아문이 남아 있다.
남포읍성은 상당히 큰 돌로 쌓은 석축성으로 초등학교 담장 구실을 했던 동쪽과 북쪽편의 성벽은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성벽은 높이 3.5m 정도로 바깥쪽은 크고작은 돌로 쌓았으며, 안쪽은 흙으로 쌓은 전형적인 석축성이다.
남포읍성 동문. 원래는 옹성이었으나, 도로를 만들면서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옹성이 완전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성곽 바깥쪽으로 잡초가 우거진 작은 언덕처럼 남아 있다.
동문 옹성의 석축은 그내로 남아 있어서 조금만 보수를 하면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문이 있던 자리의 석축
동문 북쪽편 성곽.
북쪽 성곽 안쪽으로 관아 건물인 동헌이 보인다.
동문과 남문 사이의 성곽. 초등학교 뒷편의 성곽은 온전히 남아 있으나, 그 옆쪽으로는 많이 훼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포면 소재지쪽으로 연결되는 서문. 도로와 연결되는 남포읍성의 주 출입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포읍성 서문 또한 옹성 형태로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큰 도로와 연결되는 곳이라 훼손이 많이 된 것으로 보인다.
서문 옹성의 석축
남포읍성 관아가 있는 서문 북쪽편 성곽. 관아 입구에 있었던 오래된 고목들이 보인다.
남포읍성 서문과 남문 사이의 성곽. 동쪽편 성곽에 비해서 많이 훼손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곽 안쪽의 흙으로 쌓은 부분.
남포읍석 관아인 동헌 뒷편 북쪽편 성곽
대부분의 읍성과 마찬가지로 별도로 여장을 설치해 놓고 있지는 않고 있다. 아마도 전투시에는 성벽위에 목책을 설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곽에서 앞쪽으로 돌출된 치. 동문을 엄호하는 적대의 성격을 갖기도 한다.
남포읍성 북쪽편 성곽 바깥쪽의 석축
남포읍성 성곽
남포읍성내에 남아 있는 관아 건물인 동헌.
남포읍성,
남포읍성은 차령산맥 끝자락 평지에 쌓은 성으로 고려시대에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고, 우왕때 석성으로 축성하여 공양왕 2년(1390년) 완성하고 군영을 설치하였다. 조선 태조 6년(1398) 병마첨절제사를 두어 현사를 겸하게 하였고, 서해로 출몰하는 왜구를 물리치고 민심을 바로 잡았다. 길이 900m, 높이 3.6m의 수직 성벽에 미석과 여장을 두었고 사방에 치를 두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동.서.남 3대 성문을 두고 옹성 형태로 만들어 외부에서 성문을 찾지 못하도록 하였다. 성내에는 우물이 3곹이 있었고, 서쪽 성벽에 수구가 남아 있으며, 당시 건물로는 동헌, 옥산아문, 진서루가 보존되고 있다. <출처:보령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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