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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을 상대로 사실상 첫번째로 큰 승리인 당항포 해전이 있었던 당황만 바다이다. 당항만은 거제도와 내륙사이에 있는 진해만에서 서쪽 고성읍 방향으로 들어와 있는 호수에 가까운 바다이다. 한반도에 고대국가가 형성된 이래로 한.중.일을 이어주던 연안 해상교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삼한시대와 가야연맹체 시절에는 고대국가인 소가야가 고성읍에 자리잡게 해 주었던 지형적 잇점을 갖고 있는 바다이다.
당항만은 진해만과 연결되는 폭 300m 정도의 좁은 해협에서 시작해서 내륙의 회화면과 바다쪽 반도인 동해면 사이로 고성읍까지 길이 10 km, 폭 2 km 정도의 호수처럼 잔잔한 내해를 이루고 있는 바다이다. 지금은 선박의 규모가 크고 항해기술이 발달했기때문에 먼바를 쉽게 오가지면 고대사회에서는 이런 바다는 태풍이나 폭풍우를 피하면서 장기간 선박을 정박하기 좋은 조건이다. 게다가 고성읍을 비롯하여 주변의 넓은 농토가 있고, 바깥쪽으로는 큰 산들로 막혀 있어서 항해를 하던 당시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 좋은 바다이다. 아마도 일본을 건너가기 적합한 날씨를 기다리던 무역선들이 이 바다에 정박하면서 때를 기다렸던 것으로 보인다. 당항포 바다 입구를 지키던 해상세력들의 흔적으로 동해면에 있는 가야시대 고분인 내산리고분군이 있고, 이 바다의 중심세력이었던 소가야 유적지로 송학동고분군이 있다.
당황포 해전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해인 1592년 조선 수군 연합함대가 당황포에서 왜군을 크게 격파한 해전으로 임진왜란에서 첫 승리라고도 할 수 있는 해전이었다. 이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왜선 31척과 수군 2천여명을 전사시켰으며, 당시 남해안 전선을 진해만으로 고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항포는 육지로 둘러싸인 내해로 입구가 봉쇄되면 상당한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곳으로 통영 입구인 견내량에서 쫓긴 왜군들이 이 곳에 정박했다는 것은 왜군이 초반 승리에 너무 도취되어 있었고, 해전의 경험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수군이 개별 전투역량과 전략적인면에서 상당한 수준에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당항포해전이 있었던 당항만 입구는 폭이 수백m 정도의 좁은 수로이며, 파도가 거의 없는 호수와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내해이다.
창원시 진전면과 고성군 동해면을 연결해주는 다리인 동진교. 당황만 입구에서 가장 폭이 좁은 곳으로 그 폭은 300m 정도이다.
동진교에서 바깥바다인 진해만과 연결되는 바다.
이 도로는 77번 국도로 창원 진전면에서 분기하여 남해안을 따라서 이어지고 통영까지 이어지는데 남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도로이다.
해안을 따라서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인 77번 국도.
당항만 바깥 큰 바다인 진해만.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바깥바다인 진해만과 내해인 당항만이 가장 가까운 병목에 해당하는 지역인 동해면 소재지 부근에 고대 해상세력의 유적인 고성 내산리고분군이 있다.
내산리고분군이 있는 낮은 고개를 넘어서 당항만 해안을 따라서 바깥바다 방향으로 조금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작은 포구가 있는 어천마을을 볼 수 있다.
이 포구는 큰 어선을 별로 없고 당항만에서 고기잡이나 양식을 하는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포구가 있는 마을에서 본 당항만. 아름다운 호수를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멀리 바다가 끝나는 곳이 고성읍과 당황포가 있는 지역이다.
포구 마을을 지나 동진교가 있는 방향으로 들어가면 바다의 폭이 상당히 좁아 진다.
해안도로에서 본 당황만 바다.
양식을 하는 어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혼자서 뭔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당항포가 있는 고성군 회하면 일대 해안
담항만 남쪽 반도형 지형 동해면 해안.
동해면의 해안에는 멀리 조선소가 보인다.
조선소가 있는 동해면 북쪽편 해안도로.
당항면 바다가 끝나는 지점. 둑으로 바다를 막아서 고성읍 방향으로는 간척지가 형성되어 있다.
당황만 해안 늪지대의 갈대숲
당항만 북쪽편 당항포로 가는 길 입구에 있는 작은 포구. 여기서부터 당항포국민관광지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해안에는 둑을 쌓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멀리 보이는 수문
당항만을 대표하는 포구이자 임진왜란 격전지인 당항포 포구.
당항포 포구 바깥쪽에 있는 포구로 배를 인도하는 빨간 등대
당항포 포구에 정박한 어선들
당항포 포구 바깥쪽에 떠 있는 양식에 사용되는 작은 배(?)
요트를 비롯한 작은 배를 바다로 내리는 시설
당항포 해전
당항포 해전(唐項浦海戰)은 1592년 음력 6월 5일(양력 7월 13일)에 이순신이 지휘하는 삼도수군 연합함대가 당항포에서 왜군을 격파한 해전. 유인작전으로 먼 바다로 끌어내어 싸웠다. 거제도 주민들로부터 "일본 함선들이 고성의 당항포에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조선 수군이 포구로 접근하자, 당항포 포구에 정박하고 있던 왜군 함대는 일제히 조총을 사격하면서 대응태세를 취하였다. 이순신은 일본 수군의 육지 탈출을 봉쇄하기 위해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하기로 하고, 함대를 서서히 철수시켰다. 왜군은 해안에 대기 중이던 병력까지 승선시켜 조선 수군을 추격하였다. 왜 함대가 포구 밖으로 나오자, 조선 수군은 신속히 진형을 바꾸어 퇴로를 차단하고 반격을 시작하였다. 거북선을 뒤따르던 판옥선에 탄 군사들이 불화살을 쏘아 누각선이 화염에 휩싸이자, 당황한 적장은 우왕좌왕하다가 조선군의 화살에 사살되었고, 전의를 상실한 왜군의 대다수가 당항포 먼바다에서 격침되었으며, 일부 함선이 포구 안으로 도피했다. 그러나, 도망간 왜군도 이튿날 새벽에 탈출을 시도하던 중 해협 입구를 지키고 있던 조선 수군에게 모두 격침되었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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