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이후 강화도 해안을 따라 설치된 53돈대 중 강화도 남쪽 영종도와 강화도 사이의 해협을 지키던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위치한 후애돈대이다. 이 돈대는 강화도에 설치된 군사조직인 5진 7보 중 남동해안을 담당하던 길상면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성 서문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던 선두보 소속의 돈대이다. 선두보 소속돈대로는 후애돈,동검북돈,택지돈이 있었다고 한다. 여러자료에는 이 곳에 택지돈대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후애돈대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이 돈대는 숙종 5년(1679) 강화유수 윤이제가 쌓은 돈대 중 하나로 화강암을 사각형으로 석축을 쌓았으며, 위쪽에는 여장을 아래쪽에는 포좌를 설치해 놓은 돈대이다. 석축과 여장 일부분만 남아 있던 것을 1998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 중 가장 넓고 광대한 면적을 자랑하는 강화도 남쪽의 갯벌이 한눈에 들어오는 돈대를 그 경치가 상당히 웅장하다. 멀리 서해안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강화 후애돈대 전경. 사각형 모양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여장을 올려놓은 돈대로 석축의 높이가 그리 높지는 않다. 돈대 앞쪽으로는 서해안 갯벌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강화도 남부해안의 넓은 갯벌과 멀리 영종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후대돈대 출입문. 다른 돈대와 마찬가지로 문을 달아 놓지 않고, 토끼굴처럼 작은 출입통로만 있다. 커다란 화강석을 사용하여 석축을 쌓아 놓고 있다.
후애 돈대 석축과 여장. 아래쪽에는 큰 돌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작은돌로 여장을 만들어 놓고 있다. 여장은 조선전기까지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잘 설치하지 않았던 것을 조선후기에 조총의 공격에 대비하여 만든 방어시설이다. 서울성곽, 수원화성, 남한산성과 강화돈대 정도에서만 볼 수 있다.
돈대 내부에 모습. 사각형의 평지에 건물은 없고 아마도 텐트같은 숙영시설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돈대에는 약 20~30명의 군사가 상주했다고 한다.
돈대 안쪽에서 본 후애돈대 전경.
돈대에 근무하던 병사들은 석축 위에서 해안을 감시하면서 근무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애돈대 석축위에 설치된 여장
돈대 아래쪽 석축에는 대포를 설치할 수 있는 포좌가 돈대 모서리 해안방향으로 설치되어 있다. 돈대와 포대의 기능을 겸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돈대 여장 너머로 보이는 갯벌과 영종도
돈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화도 동남쪽 갯벌과 해안. 멀리 영종도와 인천사이의 해협과 영종대교가 있다.
후애돈대 남쪽으로 펼쳐진 세계적에서 손꼽히는 넓은 갯벌인 강화도 남쪽 해안의 갯벌.
후애돈대 서쪽편으로 펼쳐진 갯벌. 멀리 보이는 곳이 동막해안이 있는 분오리돈대이다. 이곳에서 보는 낙조는 상당히 아름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현재의 후애돈대는 1998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석축과 여장 일부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곳이 원래 남아 있었던 여장으로 보인다.
후애돈대 출입문.
돈대 옆 민가에서 본 후애돈대.
후애돈대,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954
조선 숙종 5년(1679) 강화유수 윤이제가 어영군 4,300명과 함경.황해.강원 3도의 승군 8천명을 동원하여 쌓은 여러 돈대들 가운데 하나이다. 화강암을 정방형으로 쌓고 대포를 올려 놓는 포좌를 설치했다. 이 돈대는 여장의 일부가 남아 있어 없어진 부분을 1998년에 복원하였다. 이 마을에서는 돈대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출처:강화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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