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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박물관] 강원도의 고대 부족국가 동예(東濊)

younghwan 2012. 4. 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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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예(東濊)는 고조선이 멸명할 무렵 한반도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많은 부족국가들 중 하나로 함경남도 원산일대에서 경북 영덕에 이르는 동해안 지대와 강원도 중부 내류지역에 존재했던 부족 국가들을 총칭하며, 통일된 국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조선 이후 삼국시대 초기의 역사가 기록된 중국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동예는 고구려와 같은 족속으로 인구는 2만여호에 풍속과 언어가 고구려와 비슷하며, 의복에서 다른점이 있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한사군의 낙랑군의 간접지배를 받았으나 2세기후반경부터 고구려에 복속되었고, 지리적인 영향으로 강원도 이남지역은 대체로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한다. 강원도지역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영동과 영서가 다른 역사적 특징을 보이는데, 고조선이후에는 동예라는 부족국가의 일원이었다고 영서지역은 낙랑군과 백제의 영역으로, 영동지역은 북쪽은 고구려, 남쪽은 신라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지역에 남아 있는 동예의 유적으로는 춘천 중도, 횡성 둔내, 양양 가평리, 강릉 안인리 등의 유적이 대표적이며, 동해 망상지역에서는 제철관련 유물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강원의 고대문화
기원전 1세기무렵, 한반도 전 지역으로 철기문화가 확산되면서 단단하고 예리한 철제 농기구와 무기의 발달을 가져와 사회분화가 촉진되고 지배질서가 확립되면서 각지에 새로운 정치집단이 등장하였다. 문헌 자료에 의하면 강운지역에는 예맥, 실직국, 동예 등의 부족국가로부터 영서 지역의 백제와 고구려, 영동지역의 신라의 영향을 받은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가 멸망하는 10세기 초까지의 흔적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춘천 중도, 원주 법천리, 강릉 초당동, 철원 궁예도성 등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 자료를 통해 철기의 유입과 그로 인한 변화, 철기의 제작과정, 고대인의 생확과 미의식, 고대국가의 성장과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춘천박물관>

동예 문화
동예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사라질 무렵 한반도 동북부와 강원도 일대에 존재했던 부족국가이다. 이 시기에는 철기 제작 기술이 들어와 철제 무기나 농기구가 만들어지면서 농업생산력이 늘어나고, 사회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생활모습은 낮은 구릉이나 강변 대지에 위치하며, 출입 시설이 있는 '여 呂'자형 또는 '철 凸'자의 움집터와 경질민무늬토기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강원지역에는 춘천 중도, 횡성 둔내, 양양 가평리, 강릉 안인리 등의 집터 유적이 대표적이다. 둔내에서는 벽면을 판자로 두른 판벽 유구가 확인되었고, 안인리 출토 한식토기는 당시 낙랑군과의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출처:춘천박물관>



소형토기(Pottery), 유리 거푸집(Glass Beads Mould, 춘천 중도)


시루(Steamer, 홍천 하화계리), 동예


목걸이(Necklaces),


그물추(Fishing-Net Sinkers, 춘천 칠전동), 가락바퀴(Spindle Whorls, 강릉 병산동), 동예

동해 망상 단야로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의 동해안 모래언덕 위에 형성된 집터 유적이다. 망상 유적은 2008년에 예맥문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에서 4세기 중반부터 5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철(凸)자 모양의 집터가 확인되었으며, 여기에서는 토기를 비롯한 각종 철기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단야로를 비롯하여 모룻돌, 숫돌, 송풍관, 노바닥, 단조박편, 폐철 야적장 등 철기 제작 관련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어 각 마을별로 철기를 직접 만들어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야란 대장간에서 금속을 두드려 만드는 작업의 하나로, 단야로는 쇠를 녹이거나 달구기 위한 시설이다. 대개 땅바닥을 얕게 파서 흙 등으로 노의 형태를 만들고, 아래쪽에는 쇠를 쉽게 달굴 수 있도록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한 송풍관이 마련되어 있다. 동해 망상 단야로는 2개의 송풍관이 대칭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구조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고대 제철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춘천박물관>


단야로(Iron-manufacturing furnace, 동해 망상)와 송풍관(Tuyeres, 동해 송정동), 쇠찌꺼기(Stag, 횡성 화전리), 동예


도가니 조각(Crucible piece, 동해 송정동), 숫돌(Grind stones), 쇠삽(Iron Shovel, 춘천 우무동), 쇠도끼(Iron Axes), 동예

대외교류
강원지역은 부족국가를 거쳐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변방에 위치했지만, 세나라를 잇는 주요한 길목이었다. 영서 지역은 백제와 고구려의 영향권에 차례로 놓였고, 영동 지역은 일찍부터 신라의 영향을 받는 등 치열한 각축장이 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9주5소경 가운데 고구려의 예땅인 수약주(삭주)와 하서주(명주), 그리고 북원경(원주)에 편입되었다. 강원지역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주는 자료들이 각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강릉 안인리와 동해 송정동에서는 한식토기가 출토되어 강릉과 서북한지방과으 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춘천의 방동리.신매리, 양양 포월리 등에서 확인된 고구려 계통의 돌방무덤 등은 고구려의 진출을 추측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원주 법천리 고분군에서는 중국 동진산 양모양 청자와 청동자루솥과 함께 백제 관련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의 진출과 함께 백제를 통한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엿볼 수 있다. 동해 추암동에서는 신라토기와 함께 대가야토기가 출토되어 신라의 영향 하에 고령지역과의 대외교류를 살펴볼 수 있다. 강릉 초당동 조개더미에서는 경질민무늬토기와 함께 중국 한나라의 오수전이 출토되었다. <출처:춘천박물관>


긴목항아리(Pottery with long neck, 강릉 강문동)


오수전(Ancient Chinese coins Wushu, 강릉 초당동), 화살촉(Bronze Arrowhead, 철원 와수리)
오수전은 한무제 4년(기원전 119년) 처음 제작된 오수 두 글자가 표시된 중국의 옛 돈이다. 수는 무게의 단위이다. 화살촉은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고, 슴베 부분은 쇠로 되어 있는 화살촉이다. 낙랑과의 교류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하나이다.


한식토기(Jar of Han Type, 강릉 안인리. 동해 송정동), 동예

백제와 강원
삼국이 각축하던 시기의 강원지역은 처음에 우리나라 중부지역을 차지하였던 백제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은 한강 유역에 정착하여 동북으로는 낙랑과 말갈, 남으로는 마한과 자주 충돌하였는데, 1세기 중반까지 서북으로 칠중하(적성)에서 동북으로 부현(평강)까지 진출하였으며, 당시 강원으 우두산성(춘천)에까지 이르렀다. 고구려 고국원왕의 공격을 받은 근초고왕은 평양성까지 지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이 무렵 강원지역에는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한성백제 시기의 물품이 들어오게 되는데, 원주 법천리에서 출토된 동진의 양모양청자가 좋은 예이다. <출처:춘천박물관>


청동자루솥(Tri-legged cauldron with handle, 원주 법천리), 백제


양모양청자(Sheep-shaped jar, 원주 법천리, 복제품), 백제


삼한토기.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우리나라 중부이남 지역에는 중국으로부터 물레를 이용한 성형, 두드림기법 및 굴가마.소성 등의 새로운 토기제작 기술이 전해진다. 이 시기의 토기는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서북지방 무덤유적에서는 화분모양토기와 회백색의 단지모양 토기가 세트로 출토되며, 이후 낙랑토기로 이어진다. 동북지방의 옥저지역은 다양한 모양의 갈색간토기가 유행하였다. 중부지방의 마한과 동예 지역은 경질민무늬토기와 두드림무늬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호남지방의 마한지역에서는 조개더미와 집터에서 경질민무늬토기와 연질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영남지방의 진.변한지역은 널무덤과 덧널무덤에서 출토되는 와질토기로 대표된다. <출처:춘천박물관>


삼국토기. 고대국가의 체제를 갖춘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만들어졌다. 고구려토기는 정선된 바탕흙, 광택나는 겉면, 흑회색 또는 황갈색의 색조, 납작바닥이 특징이다. 크게 벌어진 아가리에 넓적한 띠모양의 손잡이가 4개달린 항아리와 배부는 단지, 깊은 바리, 시루, 뚜껑이 있는 원통형 세발토기, 솥 등이 있다. 백제 토기는 이전의 전통적인 기술에 낙랑과 고구려의 기술을 받아들여 만들어졌다. 시대의 변화와 지역에 따라 종류와 모양이 다양하며, 바탕흙과 빛깔에 따라 적갈색연질토기, 검은색토기, 회청색토기로 나누고 있다. 적갈색토기는 한강 유역, 검은색 토기는 한강유역과 부여지방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회청색토기는 굽는 온도에 따라 경질과 연질로 나늰다. 항아리, 굽다리접시, 뚜껑접시, 세발토기, 그릇받침 등이 대표적이다. 신라토기는 물레로 빚고, 1100~1200도의 온도에서 구워진 회청색경질토기와 적갈색연질토기를 말한다. 초기에는 고구려, 백제와는 다른 특색을 보이나, 가야와는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낙동강을 경계로 신라토기와 가야토기로 나누어져 각각 뚜렷한 특징을 갖게 된다. 종류로는 항아리와 굽다리접시, 잔, 그릇받침 외에 인물이나 동물, 특정한 물건을 본 떠 만든 상형토기, 토우가 장식된 토기 등이 있다. 가야토기는 신라토기와 비슷하지만 보다 세련되게 만들어졌다. 가야 지역 안에서도 부산.김해 중심의 금관가야, 함안 중심의 아라가야, 고령 중심의 대가야, 진주 중심의 소가야 등 지역에 따라 모양과 므니 등의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가 보인다. 종류로는 굽다리접시, 목항아리, 그릇받침 등 다양한 생활용 토기와 함께 여러가지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토기가 있다. <출처: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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