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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서울 인릉 (사적194호),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

younghwan 2012. 8. 1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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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조선 23대 순조의 능인 인릉이다. 외관상으로 하나의 봉분에 혼유석이 1개만 설치되어 있는 단릉으로 보이지만 순조와 순원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후기 왕릉의 일반적인 형태로 봉분에는 병풍석은 없이 난간석만 둘러싸여 있다. 석물 배치 또한 일반적인 왕릉과 큰 차이가 없는 정형화된 조선후기 왕릉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순조의 능은 파주 교하에 조성되었는데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철종대에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순원왕후는 능이 이곳으로 이장된 이후에 합장되었다고 한다.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정조 사후에 1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순조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정조의 개혁적인 조치를 되돌리는 복고적인 정치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대규묘로 천주교를 탄압하고 세도정치가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등 조선후기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문란한 사회상이 시작되었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재위기간은 34년으로 상당히 긴 편이지만, 큰 업적을 남기는 못하고 정치적 영향력 또한 크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받는 편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아들 태종 이방원의 능이 있는 헌릉 서쪽편 언덕에 위치한 조선 23대 순조의 능인 인릉. 헌릉은 조선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태종 이방원의 능이고, 부근에 그의 아들이자 조선을 대표하는 군주인 세종대왕의 능이 있어서 그런지 조선시대 왕들은 이 곳에 능을 조성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후기 왕의 권위가 가장 크게 떨어졌던 철종대에 이 곳에 순조의 능을 이장했다고 한다.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던 구한말의 권문세가들의 조선왕실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보이기도 하는 곳이다.


능역이 시장되는 왕릉의 출입문이라고 할 수 있는 홍살문


어도와 신도로 구성된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르는 길


왕릉에서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중심이 되는 건축물이 정자각. 조선왕릉에서 정자각은 표준화된 법규에 의해서 짓기때문에 개별 왕릉의 정자각에서 건축적인 특징을 찾기는 힘들다.


정자각 내부


정자각 월대에서 내려다 본 홍살문과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정자각을 오르는 계단.


인릉 정자각


정자각 오른편에는 수장자의 업적을 기리는 글을 새긴 비석이 있다. 순조의 인릉에는 2개의 비석이 있는데, 이는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순조가 황제로 선포되었기때문에 새로운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비각 내부의 비석.


인릉 봉분으로 올라가는 길. 헌.인릉의 주요한 왕릉으로 봉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인릉은 순조와 순원왕후를 하나의 봉분에 같이 모신 합장릉으로 마치 단일 왕릉처럼 보인다. 왕릉 앞 석물 또한 단일 왕릉처럼 배치해 놓고 있다. 조선시대 왕릉 중 합장릉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는데, 순조의 경우는 순원왕후의 친정이 조선후기 세도정치를 시작한 안동김씨 집안이었고, 인릉을 이곳으로 이장한 직후에 죽었기때문에 합장에는 순원왕후의 바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인릉 앞 석물. 문.무인석 1쌍과 석마가 배치되어 있다.


왕릉에서 내려다 본 정자각


서초구 내곡동 헌.인릉 입구

헌릉.인릉(사적194호)
헌.인릉에는 조선 3대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 민씨를 모신 헌릉과 제23대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김씨를 모신 인릉이 있다. 태종은 고려 공민왕 16년(1367)에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고, 정종 2년(1400)에 세자가 되었으며, 같은 해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 18년(1418)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종 4년(1422)에 56세로 돌아가셨다. 원경왕후 민씨는 고려 공민왕 14년(1790)에 태어나 정종 2년(1400) 정빈에 책봉되고, 정비가 되었으며 56세로 돌아가셨다. 순조는 정조 14년(1790)에 태어나 11세에 왕위에 올랐고, 재위 34년(1834)에 45세로 돌아가셨다. 순원왕후는 정조13년(1789)에 태어나 순조 2년(1802)에 왕비가 되었고, 철종 8년(1857)에 69세로 돌아가셨다. <출처:문화재청>


헌.인릉 바깥쪽에 있는 재사를 준비하는 공간이 재실.


재실 출입문이 솟을대문.


왕릉에 제를 올릴 때 왕이나 왕세자가 머무는 공간인 재실 중심 건물. 앞면 6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조선후기 한옥의 특징인 누마루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재실이 인릉을 이곳으로 옮겼던 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마당에는 왕이 지나는 길이 조성되어 있다.


수행인원들이 머무는 공간인 재실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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