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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장성 진원리 오층석탑, 정형화된 고려시대 오층석탑

younghwan 2013. 3. 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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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이다. 1층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오층석탑이다. 탑의 규모도 크지 않은 편이며 조각수법도 전성기 석탑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지는 편이다. 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셔놓은 곳으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는 불교 사원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는 예배물이었지만, 고려시대 이후 불전에 모셔진 불상이 신앙의 대상으로 바뀜에 따라서 형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석탑이 형식적인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석탑의 기단부는 2층으로 쌓아야 안정적인 모습을 하는데, 이 석탑은 원래부터 그런지 알 수 없지만 1층으로 쌓고 있으며, 기단부와 몸돌에 안상이나 불상 등을 전혀 새겨 놓지 않고 있다.

 이 석탑은 원래 마을 뒷편 절터에 있던 것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정원을 장식하기 위한 조형물로 사용하기 위해 반출하려던 것을 마을사람들으로 반대로 반출하지 못하고, 마을입구에 현재의 위치에 두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60년대에 일부 마을 주민들에 의해 훼손되었다가. 1971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되었다고 한다.

장성 진원리 오층석탑,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탑이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여 열반과 해탈을 상징하는 불교의 예배물이다. 이 탑은 본래 진원리 뒷산 탑동이라는 곳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불법 반출해 가려 한 것을 주민들의 반대로 옮기지 못하고 지금의 위치에 옮긴 것이라고 한다. 이 석탑은 탑동에서 이곳 묘동 마을 앞으로 옮겨진 뒤에도 1960년대에 또 한차례 수난을 겪었다. 당시 묘동 마을에 우환이 잦자 그것을 이 석탑의 탓이라 여긴 사람들이 밤에 몰래 무너뜨려 방치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후 1971년에 이 마을 주민 이상현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부재들을 모아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른다. 지대석은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로 기단부 면석(넓은 돌)이 있다. 면석에는 각면에 가운데 기둥과 모서리 기둥이 표현되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지붕돌)이 각 1석씩인데 현재는 4층 이상의 탑신과 옥개석이 없다. 1층 탑신은 각면의 양 모서리에 기둥이 조각되었다. 2층부터는 체감을 보여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폭이나 높이가 줄어들고 있다. 탑의 일부 조각이 생략되었으며 전체적으로 가늘고 긴편으로 안정감이 없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출처: 장성군청>


장성 진원리 마을 입구에 세워진 고려시대 오층석탑. 원래 이곳에 절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현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탑은 1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형태를 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균형감이 떨어진다. 원래 오층이었던 탑신은 4층만 남아 있다.


석탑 기단부


1층 몸돌은 다른층에 비해서 큰 편이며, 양쪽 모서리에 기둥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지붕돌과 2,3층 모돌


이 석탑이 있는 장성 진원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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