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재실과 비슷한 건물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조선이 들어서 왕릉을 세우고 유지하기 위한 규범인 산릉제도에 재실이 포함되면서 능역뿐만 아니라 일반 사대부에서도 조상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재실을 짓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재실 건물은 외형상 일반 가옥과 비슷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참석하기 위한 공간으로 넓은 대청마루, 마루와 연결되어 같은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온돌방,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 등으로 이루어진다. 선현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나 문묘에 딸린 강학공간 또한 재실의 기능을 확대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왕릉을 조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산릉제도에 따라 재실은 홍살문 바깥쪽 능역입구에 세워졌다. 왕릉의 재실은 능역을 참배하거나 제사를 올릴때 제관이 머물면서 목욕재개를 하는 공간인 재방,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기를 준비하는 제기고, 수행인원들이 머무는 행랑채 등으로 이루어졌다.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에는 왕릉주변 석물들을 비롯하여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정자각, 제사를 준비하거나 능참봉이 머무는 재실 등 유형적인 문화재가 있지만, 오랜 기간동안 여러차례 중건되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훼손이 많이 되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들은 그리 많지 았다. 제사시설인 정자각은 동구릉 태조의 능인 건원릉 정자각을 비롯하여 몇곳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재실은 효종 영릉 재실이 유일하다.
여주 효종 영릉 입구에 있는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재실은 조선왕릉 재실 중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로 재방, 전사청, 제기고, 행각 등의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여주 효종 영릉 재실, 보물 1532호, 경기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재실은 제관의 휴식, 제수 장만, 제기 보관 등의 제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 건물로 영릉재실은 1659년 경기도 양주군에 능 조성 시 인근에 건립되었으나, 1673년 영릉을 천릉하면서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 건물들은 전반적으로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세부수법에 있어서는 짜임새 있게 건립되었고, 안향청, 제기고, 재실, 행랑채 등의 시설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유기적으로 적정하게 배치되어 있다.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대부분 멸실되어 그 일부만 남아 있으나, 이곳은 조선시대 왕릉 재실의 기본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출처:문화재청>
영릉입구에 위치한 재실.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영릉 재실 출입문. 양쪽으로 능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행랑채가 있다.
재실 출입문 주변 행랑채. 크고 작은 방과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능참봉의 집무공간이자 제관이 머무는 재방이 있고, 협문을 하고 있는 중문을 통해서 출입한다.
중문 옆 작은 행랑채
재방. 평상시에는 능참봉이 기거하는 거처이며 능에서 제례를 지낼 때에는 제관들이 머물며 목욕재개를 하던 곳이다. 앞면 6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재방 대청마루.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영릉 재실 대청마루는 생각보다 넓지 않다.
회양목, 천연기념물
이 회양목은 잎이 두껍고 타원형이며, 꽃은 4~5월에 갈색으로 익는 사철 푸른 나무이다. 경북 북부, 충부, 강원도, 황해도 지방의 석회암 지대에 주로 자생한다. 원래 회양목은 작고 낮게 자라는 나무로 이와같이 재실 내에 크게 자란 나무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생물학적 가치가 큰 노거수 일 뿐만 아니라 1673년에 조성한 효종대왕 영릉 재실에서 300여년 동안 자라온 나무로서 그 유래 및 역사성이 매우 깊다. <출처:문화재청>
재실 앞 마당에 심어진 회양목. 이곳에 영릉이 조성되던 시기에 심어진 수령 300년 정도의 고목으로 영릉의 역사와 같이 한 의미있는 고목이다.
재실 마당에 자라고 있는 수령 수백년된 느티나무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와 의복 등을 보관하는 제기고
안향청, 능에서 제례를 지낼 때 임금이 내려준 축문과 향을 보관하던 곳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크지 않은 건물이다.
안향청 내부. 2칸은 대펑마루, 1칸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향청 대청마루 천정
안향청 앞 마당 행각에는 가마 등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
효종 영릉에서 세종대왕 영릉으로 넘어가는 숲속길
영릉(세종.소헌왕후릉) 재실터
이 곳은 발굴조사 결과 여러동의 건물터와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영릉(세종.소헌왕후릉)과 관련된 재실터로 확인되었다. 즉 상.하.남.북으로 중복된 기단 석렬과 이들 주변으로 축조된 담장터, 암거시설, 폐기장 등과 함께 백자를 비롯한 기와, 전돌, 토기, 철기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소조상, 와당, 인각와, 묵서명 백자, 청화백자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와 같이 왕릉 앞에서 대규모 건물터와 많은 유물이 출토된 점을 감안하여 이곳을 영릉의 재실터로 추정하고 있다. 1778년 유의양이 지은 춘관통고에도 홍살문으로부터 동남쪽 250보의 위치에 전사청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릉의 재실은 산릉제례를 위해 '임금이 내려준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례음식을 만들고 제례를 총괄하는 전사청', '제례용 그릇과 옷을 보관하는 제기고', '능지기의 거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릉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으로 1446년 왕후의 승하와 함께 헌릉 서쪽에 모셨다가 1469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출처:문화재청>
세종대왕 영릉 입구에 있는 재실터. 현재의 재실은 안쪽으로 옮겨져 중건하였으며, 이곳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세종대왕 영릉 재실.
세종대왕 영릉 재실은 능참봉이 근무하는 큰 건물이 재방과 행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설은 앞면 6칸에 누마루가 있는 꽤 큰 건물로 구한말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앞 통로로 이용되는 툇마루
건물 오른편에 있는 누마루
세종대왕 영릉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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