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내 옛 경상우병영 관아가 있었던 북장대 안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경남도청이 들어서면서 옛 관아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고 지금은 청계서원과 사당인 경절사가 들어서 있다. 청계서원은 고려초 거란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정신열과 우리나라에서 목화를 처음 재배한 인물인 정천익을 모신 서원이다. 청계서원은 조선후기 순조대에 진주 대평면 남강변에 세워졌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것으로 해방이후 진주성으로 옮겨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세워졌던 서원이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가문의 유력인물을 모시는 사당으로 변질되면서 많은 병폐가 생겨나던 시기에 세워진 전형적인 서원이라 할 수 있다.
청계서원은 가운데 강학공간인 강당이 있고, 양쪽에 사당인 경덕사와 숭은사가 배치된 특이한 형태이며, 유생들이 머물던 동.서재 건물은 별도로 두지 않고 제사준비를 위한 전사청만 부속건물로 두고 있다. 서원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며,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복원된 것으로 생각된다.
진주 청계서원
이곳은 고려병부상서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진양부원군 은열공 관정 정신열 선생과 고려 공민왕 13년 (1364) 봄 이 땅에 목면 씨앗을 처음 심어 그 중 오직 한 알을 살려 크게 번연시키고 씨아와 물레 그리고 베틀을 창제하여 온 백성들에게 따뜻한 목면 베옷을 입힌 고려 공민왕 때 전객령 판부사로 치사하신 진양군 문충궁 퇴헌 정천익 서생을 모신 곳이다. 조선 순조 33년에 영호남 유림들이 선생에 대한 보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진주의 서쪽 대평면 마동 남강변에 청계서원을 세웠더니 예조에서 해바다 춘추로 관원을 보내 생폐와 향촉을 봉진 사림 봉사해 오던 중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후 1961년 후손들이 이 곳에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경덕사와 정교당을 건립하고, 봉남서당이란 이름으로 그 맥을 이어오다가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정부의 도움과 후손들의 정성으로 숭은사와 전사청을 재건하고, 청계서원으로 복원하여 매년 음력3월15일에 두 사당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출처:진주시청>
조선시대 경상우병영 관아 건물터에 세워진 청계서원 전경
청계서원 정문격인 외삼문
청계서원 강당. 앞면 6칸의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원래는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학공간이지만, 실제로는 문중회의가 열리는 장소로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적인 서원과는 달리 유생들의 기숙사를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내삼문
강당 서쪽편에 위치한 사당인 경덕사
강당 동쪽편에 위치한 사당인 숭은사
강당 서쪽편에도 별도의 사당을 두고 있다.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
진주성 성곽에서 내려다 본 청계서원
진주 청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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