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강하구 김포지역을 관장하던 통진현 관아가 있었던 월곶면소재지에는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인 통진향교가 남아 있다. 이 향교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고려중기 인종대에 처음 세워졌다. 현(縣)단위 고을의 향교로서 그 규모는 크지 않으며 대성전, 동.서무, 명륜당, 동재와 문루인 풍화루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들은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것을 최근에 복구하였다고 한다. 경사진 지형에 앞쪽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 뒷쪽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두고 있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 형태로 볼 때 명륜당과 동재의 규모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조선후기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제사기능만 남은 전형적인 지방향교의 형태를 하고 있다.
통진현은 한강하구 경기도 김포시 지금의 대곶면, 월곶면, 통진면, 하성면 일대를 포함하는 서쪽 지역을 관장하던 조선시대 행정구역이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가 한강하구를 장악하기도 했으며, 고려시대부터 통진이라 불리웠다. 조선 태종대 전국적인 행정구역개편때 통진현이 설치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병자호란 이후 숙종대에 문수산성을 쌓고 강화도를 요새화하면서 통진도호부로 일시 승격되기도 했으나 고을 규모가 크지 않은 까닭에 현(縣)의 지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포 통진향교,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교육기관으로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양민 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이 주요 교육내용이었다. 또한 향교에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중국과 조선의 선현에게 제사하였다. 고을의 크기에 따라서 향교의 정원을 조정하였는데 대체로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토지를 지급하고 그에 따른 세금 수입으로 향교 운영비를 충당하게 하였다. 이 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세워졌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1군 1향교 정책에 따라 폐쇄되었다가 해방 후 기능을 되찾았으나 한국전쟁 때 동.서무가 파괴되었다. 1987년 대성전과 명륜당이 보수되었고, 1994년에 동재, 이듬해에는 풍화루가 복원되었다. 대부분의 향교와 마찬가지의 배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대성전은 조선 중기의 건물로 경기도 내의 향교 건축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출처: 김포시청>
옛 통진현 관할 중등교육기관이었던 통진향교 전경. 앞쪽에 강학공간이 명륜당, 뒷편에 선현들에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두고 있다. 강학공간이 강당은 건물의 규모가 작은데 비해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는 규모가 큰 편이다. 교육기관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조선후기 향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강당인 명륜당은 날씨가 추운 이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넓은 대청마루와 온돌방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강당건물과 달리 벽
면으로 되어 있으며 가운데 작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앞면5칸, 옆면 3칸이나 그 규모가 상당히 작다. 통진향교 명륜당은 사실상 제사를 준비하거나 유림들이 회의를 하는 재실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뒷편에서 본 명륜당.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서재 중 동재만 복원되어 있다. 현재는 향교 관리인이 거주하는 살림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통진향교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 대성전은 수도권 일대에 남아 있는 향교 건물 중 제일 오래된 것이라고 하며, 동.서무는 한국전쟁때 훼손된 것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동재는 그 규모가 작은데 비해서 제향공간은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통진향교 대성전.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규모가 크고 웅장하게 지었다.
통진향교 출입문이 풍화루. 향교 건물 중에는 규모가 큰 편이며, 강화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누각을 크게 지은 것으로 보인다.
향교의 내력을 말해조는 고목들이 향교내에 많이 남아 있다.
옛 통진현 관아가 있었던 월곶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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