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내 경상우병영 운주헌을 비롯한 관아 건물들이 있던 자리에는 경절사라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경절사는 고려시대 거란의 2침입때 큰 공을 세운 하공진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경절사는 원래 진주시 수곡면에 있었는데 1992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건물은 서원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뒷편에 사당인 경절사가 있고, 앞쪽에 재실 성격의 건물 2동이 마주보고 있다. 하공진장군은 진주성과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지만, 이곳에 있던 경남도청 건물 등이 허물어지고 사적지로 재정비되는 과정에 진주를 대표하는 성씨인 진주하씨문중에서 사당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하공진(?~1011년)은 고려초 문신으로 진주하씨 시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고려초 목종을 폐위시킨 강조의 정변에 가담하였으며, 거란의 2차침입때 외교협상 대표로 참여하여 현종의 입조와 자신이 볼모가 되는 것을 조건으로 강화협상을 이끌어내었다. 이후 여러차례 요나라 탈출을 시도하다가 처형되었다. 진주 하씨는 하공진은 시조로 하고 있는 성씨로 진주태생인 하공진을 따러서 진주를 본으로 하고 있는 성씨다. 후손으로는 조선초 개국공신으로 태종을 도왔던 하륜이 잘 알려져 있다.
진주 경절사, 경남 진주시 남성동
이곳은 고려조 충절신 하공진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헁례를 받드는 곳이다. 공은 현종원년(1010) 안으로는 왕실의 위난을 수호한 공을 세웠고, 밖으로는 거란의 40만 대군을 삼촌설로 퇴각케 하였을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하여 적국의 볼모가 되어 절개를 굽히지 않고 의를 쫓아 신명을 홍모와 같이 버리신 분이다. 그러므로 나라에서는 문하시랑동평장사를 추증하고 영정을 기린각에 모시었다. 공의 죽음은 곧 위국충절의 상징이 되어 이곳 진주를 충절의 고장이라 일컫는 효시가 되었다. <출처:진주시청>
진주성 관아가 있던 곳으로 옮겨진 고려초 문신 하공진을 모신 사당인 경절사.
사당출입문인 외삼문
외삼문을 들어서면 진주하씨 종친회에서 재실용도로 지어진 큰 건물이 있다. 건물들은 앞면 5칸의 큰 건물로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실제 조선시대에 지어진 사당이나 재실의 건물은 그리 크지 않다.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
하공진을 모신 사당인 경절사
진주성 북장대에서 내려다 본 경절사
경절사 입구에 세워진 하공진장군 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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