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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박물관] 가야연맹체의 작은 나라인 아라가야, 소가야, 비화가야

younghwan 2012. 4. 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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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한시대 변한지역에 소국에서 출발한 가야연맹체는 삼한시대 성읍국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연맹체는 남해안 해상무역을 장악한 금관가야와 철의 주생산지였던 고령지역의 대가야가 두각을 나타내었고, 그 외에는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함안지역의 아라가야, 남해안 해상무역 주도권을 금관가야와 다투었던 소가야, 경북지역 낙동강 서쪽에 위치했던 성산가야, 창녕 지역의 비화가야가 가야연맹체의 소국으로서 어느 정도 세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안지역의 아라가야는 559년 신라에 멸망하기까지 500년 이상 존속했던 국가로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함안지역에 존재했던 정치세력이다. 남해안 주요 항만인 마산항과 가까이 있으면서 낙동강 수운을 장악할 수 있었던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가까이 있었던 금관가야와 협력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라가야 유적으로는 함안의 도항리, 말이산 고분군들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삼국시대 철기병으로 불렸던 기마병의 말갑옷을 비롯하여 많은 철제무기류들이 출토되었다. 소가야는 남해안 연안 항로에서 중요한 지점인 통영과 당항포 사이의 넓은 벌판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삼한시대 국제무역항인 사천 늑도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한.중.일 연안항로의 거점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금관가야와 해상무역의 패권을 다투었다가 후대에 그 지위를 잃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요 유적지로는 고성의 송학동 고분군, 내산리 고분군 등이 있다. 창녕지방에 자리잡았던 비화가야는 가야연맹체 중에서 특이하게 낙동강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던 세력으로 실제로는 가야연맹체의 일원이라기 보다는 신라와 관계가 깊었던 세력으로 여겨지며, 신라의 영향을 받은 각배, 철제무기류 등이 많이 출토된다. 주요 유적지로는 창녕 교동 고분군, 계성동 고분군 등이 있다. 신라 진흥왕이 561년에 이곳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워놓고 있다.

아라가야
아라가야는 변한 12개 소국 가운데 안야국이라는 함안지역의 정치세력에서 출발하였다. 아나가야, 이시라국, 안라국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리웠으며, 왕궁지와 통치자들이 묻힌 말이산 고분군과 도항리 고분군이 있다. 고분군 중에는 20m나 되는 거대한 봉분을 가진 것도 있어 강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라가야 토기는 불꽃 무늬 굽구멍을 가진 굽다리접시가 특징이며, 말갑옷, 고리자루큰칼, 미늘쇠 등이 출토되었다. 아라가야의 전성기는 주로 5세기대 약 100년간이며, 5세기 후반은 아라가야의 최전성기이다. 남강 연안의 의령, 진주지역까지 영향을 미쳤다. 신라의 계속되는 압력에 대항하여 안으로 가야세력의 결속을 도모하고, 밖으로 백제.왜와 손을 잡기도 하지만 결국 6세기 중반 신라의 힘에 굴복하고 말았다. <출처:김해박물관>



수레바퀴장식토기(Pottery with wheel), 함안 말이산. 굽다리 위에 수레바퀴가 양측에 놓이고, 그 사아에 뿔모양 잔을 마주보게 붙인 토기이다. 제사나 의례 때 술이나 음료를 담는 용도로 추정되는데, 수레는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도 있다.

가야의 기마무사
말갑옷은 전투 때 적의 공격으로부터 말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크게 목가리개와 몸통가리개로 이루어져 있다. 말갑옷은 긴 철판을 여러 매 이어 만들었는데 목가리개는 부채꼴 모양으로 연결하였다. 고구려 벽화무덤에 많이 표현되어 있는 말갑옷의 실물은 마갑총 출토품을 통하여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마갑총은 함안 도항리.말이산 고분군의 북쪽 능선상에 위치하며 길이 6.9m, 너비 2.8m, 깊이 1.1m규모의 덧널무덤 안에서 말갑옷이 출토되었다. <출처:김해박물관>


말갑옷(Horse arnour), 함안 마갑총.


마갑총에서 발굴된 말갑옷은 철판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미늘로 구성된 가야무사의 미늘갑옷과 같은 형태로 만들었다.


마갑총에서 말갑옷이 발굴되던 당시의 사진.


미늘쇠(Saw knife), 함안 도항리. 길쭉한 철판의 양쪽 가장자리를 오려내어 만든 것으로 미늘의 형태는 고사리나 가시모양이 많다. 말탄 무사를 말에서 끌어내릴 떄 사용하은 무기였으나 새모양의 미늘을 만드는 등 의기로 변모하게 된다.


미늘쇠(Saw knife, 함안도항리), 말띠드리개(Horse strap pendant, 함안 말이산), 쇠칼(Iron dagger, 함안 말이산), 쇠낫(함안 말이산), 쇠화살촉(Iron arrowhead, 함안 말이산), 쇠투겁창(Iron spearhead, 함안 말이산)



항아리(Big jar), 함안 말이산


항아리.그릇받침(Jar & pottery stand), 함안 도항리


항아리(Short-necked jar), 함안 도항리


굽다리접시(Mounted cup), 함안 도항리와 말이산


굽다리접시(Mounted cup, 함안 도항리), 작은그릇받침(Pottery stand, 함안 말이산), 입큰단지.그릇받침(Wide mouth jar & pottery stand, 함안 도항리), 목항하리(Jar with long necked, 함안 말이산), 손잡이잔(Mug, 함안 도항리)


굽다리접시(Mounted cup), 함안 황사리

토기의 굽다리에는 보통 세모 또는 네모 모양의 구멍을 뚫지만, 이 토기에는 직선과 곡선을 이용하여 불꽃모양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불꽃 모양 굽구멍은 대부분 함안지역토기에서 보이며, 아라가야의 대표적인 토기입니다. 곡선적인 토기의 모습과 불꽃무늬가 어어러져 뛰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굽구멍들은 단순히 장식을 위한 용도뿐 아니라 토기를 구울 때 굽이 터지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합니다.

소가야
소가야는 고성과 사천지역에 위치하며 3세기까지 변한의 고자미동국, 고자국으로 불렸던 세력이 성장한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4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소가야의 여덟나라는 금관가야가 장악하던 남해안의 해상교역권을 빼앗기 위해 공격하였으나 신라의 개입으로 실패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소가야는 상당히 위축되었고 이후 신라에 흡수되었다. 대표적 유적으로는 송학동 고분군, 내산리 고분군, 율대리 고분군 등이 있다. <출처:김해박물관>


굽다리항아리(Mounted jar, 고성 동외동), 바리(Bowl, 고성 동외동),


항아리(Wide mouth jar, 고성 내산리), 목항아리(Long necked jar with cover, 진주 무촌리), 잔(cup, 진주 무촌리)


굽다리접시(Mounted cup with cover, 고성지역), 항아리(Wide mouth jar, 고성 연당리)


목항아리.그릇받침(Long-necked jar & pottery stand) 마산 현동,
고성 연당리

비화가야
비화가야는 현재의 창녕지역에 위치하였는데 비사벌 세력이 발전한 것으로 비자화라고도 불렸다. 이 지역 무덤에서는 대부분 신라의 것과 모양이 비슷한 토기와 금공품이 출토되어 일찍부터 신라의 영향 아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창녕 교동과 계성 일대의 고분들이며 돌덧널무덤, 돌방무덤이 대부분이다. 특히 교동 12호 무덤은 경주지역에서 많이 만들어진 돌무지덧널무덤의 형태이다. <출처:김해박물관>


자루솥(Three-legged cauldron with handle, 창녕 교동)


청동합(Bronze bowl with cover, 창녕교동)


청동뿔잔(Bronze horn-shaped cup, 창녕교동

뿔모양잔(각배)

뿔잔은 문자 그대로 소나 코뿔소 등 짐승의 뿔을 잘라 술과 같은 음료를 마시던 습관에서 유래된 것으로 점차 토기나 금속, 상아, 옥 등으로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처음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2,000년경 이란에서부터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4대왕인 석탈해가 아직 왕위에 오르지 않았을 때 토함산에서 내려오면서 심부름꾼을 시켜 마실물을 떠오게 하였는데 심부름꾼이 몰래 먼저 물을 마시자 뿔잔이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이를 꾸짖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까지 출토지가 알려진 뿔잔은 그리 많지 않지만 대체로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김해, 부산, 창녕, 달성 등에서 출토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출처:김해박물관>


말안장(Saddle bridge, 창녕 교동)




손잡이바라(Bowl with handles, 창녕 교동), 굽다리접시(Mounted cup with cover, 창녕 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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