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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 7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국보7호), 교통의 요지에 세워졌던 절터의 흔적

천안시 성환읍 대흥리 1번국도 도로변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비석인 봉선홍경사 갈기비(국보7호)이다. 비석이 세워진 곳은 서울과 호남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던 봉선홍경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절터이다. 봉선홍경사는 고려 초인 1021년(현정12)에 세워진 사찰이다. 당시 이지역은 교통의 요지이지만 마을이 없고 주변에 습지가 많아 도적이 자주 출몰했기때문에 여행객의 안전을 위하여 현종이 절과 숙소인 원(院)을 세웠다고 한다. 봉선홍경사 갈비는 사찰이 세워진 뒤 5년후에 세워졌다. . 갈비(碣碑)는 보통 석비보다 규모가 작고 간략화된 것을 말하지만, 이 비석은 머릿돌, 몸돌, 거북받침돌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석비의 형식을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의 머리는 어룡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머..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 404호), 비문이 없는 석비

충북 진천읍 연곡리 만뢰산 아래 연곡계곡에 남아 있는 연곡리석비(보물404호). 전체 높이 3.6m로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이수)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비석이다. 비몸에는 글자가 없어 '백비(白碑)'라 불렸다. 처음부터 비문을 새기지 않았는지 지워져 버린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머릿돌에는 아홉마리의 용을 새겼는데 표현이 사실적이고 조각수법도 뛰어나다. 거북받침돌의 머리부분이 손실되었는데 말의 머리와 비슷해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나 조각수법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곡리석비는 원래 계곡에 비석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보탑사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 세워졌다. 지금은 보탑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어 이 사찰과 관련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탑사와는 무관한 석비이다. 부근..

진천 대한성공회 진천성당

충북 진천군 진천읍 남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성공회 진천성당이다. 대한성공회는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19세기말 서구열강과 함께 한국에 전래되었다. 대표적인 교회로 덕수궁 옆 영국대사관과 함께 있는 서울교구 주교좌성당과 강화도의 성당이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초에 세워진 성공회 성당은 다른 개신교와는 달리 한옥의 형태를 응용하여 토착화한 형태의 교회건물이 많이 세워졌다. 진천 성공회 성당은 충북지역 선교의 거점으로 1908년 한옥 건물 형태로 처음 세워졌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3년에 신축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동쪽에 출입구를, 서쪽에 제단을 둔 직사각형 형태로 앞면 4칸, 옆면 8칸 규모이다. 내부에는 2개의 열주에 의해 신자석인 네이브(Nave)와 회랑의 성격을..

진천 이상설 생가,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초가삼간

진천읍소재지에 멀지 않은 들판에 위치한 이상설 생가이다. 이성설은 구한말 관료이자 독립운동가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한 3인 중 한명이다. 진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신학문을 배운 후 관료의 길을 걸었다.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이준, 이위종과 함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펼쳤다. 진천군 산척리 마을에 남아 있는 생가는 일제강점기 이후 무너진 것으로 복원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3칸, 측면2칸의 작은 초가집이다. 이상설은 구한말 신학문을 배우고 과거에 급제했던 것으로 볼 때 신분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생가는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초가집이다. ..

고택_정원 2014.06.16

진천 농다리, 자연석으로 교각을 쌓은 전통 돌다리

진천 농다리는 진천읍을 지나 청원군을 거쳐 금강에 합류하는 미호천(세금천)을 건너는 오래된 돌다리이다. 다리가 있는 진천군 구곡리 마을은 상산임씨의 세거지로 이 다리는 고려 고종때 권신이었던 임연이 놓았다고 전해지는 다리라고 전한다. 자연석을 축대처럼 쌓아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장대석을 상판으로 올려놓은 구조로 그 형태는 일반적이 돌다리와 비슷하나 자연석을 이용해서 쌓아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다리는 길이 93.6m, 너비 3.6m이다. 교각 사이의 폭은 80cm 정도이며, 원래는 28칸의 교각을 만들었으나 지금은 24칸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자연석으로 쌓은 교각은 양끝을 뾰족하게 하여 물이 잘 흐르게 하고 있다. 천년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보수하면서 사용해 왔다고 하며, 웬만한 장마에도 무너지지..

[중국 취푸(曲阜)] 공부(孔俯), 별채에 해당하는 화청(花厅)과 후원(後苑)

취푸(곡부,曲阜,Qufu) 공부(孔府)는 연성공이라는 작위를 받은 공자 직계 후손이 사는 공간으로 중국 관아와 대저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공부는 궁궐의 건물배치와 거의 비슷하게 전면부에는 연성공이 공적인 업무를 보는 관아건물들이, 뒷편에는 살림집이 배치되어 있다. 안채에 해당하는 살림집인 전상방(前上房), 전당루(后堂楼), 후당루(后堂楼)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동쪽편에는 연성공 일가들이 사용하는 건물들이, 서쪽에는 별당에 해당하는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궁궐과 마찬가지로 안채 뒷편에는 가족들의 휴식공간으로 넓은 정원을 꾸며 놓고 있다. 공부(孔府)의 별당에 해당하는 건물을 화청(花厅)이라고 한다. 화청은 여러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당에는 정원을 꾸며놓고 있다. 주로 멀리서 공묘를 ..

중국(China) 2014.06.11

[중국 취푸(曲阜)] 공부(孔俯), 가족들이 거처하는 전상방(前上房), 후당루(后堂楼), 후동루(后东楼), 후서루(后西楼)

취푸(곡부,曲阜,Qufu) 공부(孔府)는 공자의 사당인 공묘(孔廟)와 묘역인 공림(孔林)을 관리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공자의 직계후손이 사는 저택이다. 공부는 궁궐처럼 앞쪽에 공자 가문의 종손인 연성공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건물들과 사랑채에 해당하는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고, 뒷쪽에 연성공 일가가 거주하는 안채에 해당하는 건물들이 배치되었다. 두 영역은 담장과 출입문으로 분리되어 있다. 또한 동쪽편은 공씨가문 일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서쪽은 연성공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사랑채나 별당과 비슷한 성격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공부(孔府)에서 연성공 가족들이 거처하는 안채에 해당하는 공간은 크게 연성공 집안 대소사를 치를 수 있는 공간인 전상방(前上房),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공간인 전당..

중국(China) 201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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