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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146

[중앙박물관 신라실] 문자로 보는 신라,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국보 3호)

신라는 6세기에 국가체제를 갖추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고구려와의 경쟁에서 조금씩 이기면서 진흥왕때는 영토가 한강유역과 함경도 동해안 일대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 기간 신라는 율령을 제정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기간에 국가로서의 모습은 신라가 남겨놓은 여러 흔적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문자를 새겨놓은 비석들이다. 특히, 진흥왕 순수비와 단양 적성비는 진흥왕이 화장된 영토를 순수하면서 기념으로 새겨놓은 비석들로 당시의 관직체제, 인물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의 영역을 보여주는 유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진흥왕순수비 이외에도 신라는 국가정책 등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글자를 새겨놓은 비석을 많이 활용했는데, 그 내용은 법의 시행, 국왕..

중앙박물관 2011.05.22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의 토기, 신라 유물 걸작 '말 탄 사람 토기(기마인물형토기)'

신라의 토기는 항아리, 굽다리접시, 그릇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 인상적인 부분은 동물.배.수레 등을 본 떠 만든 상형토기라 할 수 있다. 토기는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것도 많아보이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토기 중 상당수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묻혀진 것이 많다. 신라의 토기 겉면에는 무늬를 새기거나 토우 등을 붙여서 꾸미기도 하는데 이들 토우들은 신라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이나 동물이 형태를 간략하면서도 특징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어서 현대적인 관점에서 그 묘사가 뛰어난 점이 많아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토기들 중 그 작품성이 상당히 뛰어난 국보 91호로 지정된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말탄 사람 토기(기마인물형)'가 있다. 이 토기는 간략하면서 중요한 특징들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중앙박물관 2011.05.19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의 금속그릇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신라의 금속그릇이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금속 그릇들은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것들을 위주로 전시되어 있으며, 대부분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을 모방하여 만든 부장품이나 청동제 제기인 것으로 보인다. 사발이나 합은 지금 사용하는 것들과 형태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고, 신라나 가야에서 많이 사용한 굽다리접시가 특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청동으로 만든 제기처럼 보이는 초두를 비롯한 그릇들은 중국과 교류가 있었던 고조선 이래로 다양한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초기의 청동그릇들은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라의 청동그릇은 아마도 신라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청동 그릇에는 다양한 내용의 글자를 새겨넣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금속그릇 신..

중앙박물관 2011.05.16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와 실크로드, 서역과의 교류

서기 5~6세기 신라 고분으로 알려진 황남대총을 비롯하여 여러 고분에서는 서역과의 교류관계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유리그릇이나 유리잔 등은 서아시아지역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유물들은 비단길 또는 바닷길로 신라에 전해졌다고 한다. 당시의 바닷길로는 인도와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여러차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삼국시대의 바닷길 교류는 크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들 물품들은 신라가 서역과 직접 교류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교의 전파와 함께 당시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던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는 견해도 있다. 고구려는 국방.외교상 서역과 직접 교류할 필요도 있었고, 교류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어서 서역국가와 직접 교..

중앙박물관 2011.05.15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의 꾸미개, 금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

신라는 '금의 나라'로 알려질 정도로 금과 은으로 수 많은 꾸미개들을 만들었다. 신라금관을 비롯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들 중 상당수는 신라에서 만든 금제 꾸미개들이며 특히 금관은 세계적으로 출토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고 한다. 금관 외에도 신라의 꾸미개로는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주로 금, 은, 옥, 유리 등을 가공하여 만들고 있으며 출토된 유물의 양도 상당히 풍부하면서 그 세공기법 또한 상당히 뛰어나다. 주로 삼국시대에 중기에 만들어진 무덤부장품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그 세공기술은 후대에서는 불상 등 불교관련 문화재들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꾸미개 신라의 꾸미개는 금관 및 허리띠를 비롯하여 관모, 관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신발 등이 있는데 재..

중앙박물관 2011.05.12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의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관 및 금제 허리띠(국보191,192호), 관꾸미개(보물630)와 관모

금의 나라로 알려졌던 신라의 고분에서는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 여러 고분에서 금관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국보 191, 192호로 지정된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과 금제허리띠가 전시되어 있다. 이 금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형태와 화려한 장식 등으로 미루어 왕관으로 추정하고 하고 있다. 신라의 금관에는 나무, 사슴뿔, 새 등의 요소가 담겨 있는데 나무는 왕을 상징하고, 사슴뿔은 시베리아지역 샤먼과 관련된 장식으로 보고 있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이 금관은 나무와 사슴뿔 모양의 세움장식에 푸른빛의 곱은 옥이 달려 있고, 전체적으로 금판으로 장식해서 상당히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금관이 실생활에 사용한 것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전체..

중앙박물관 2011.05.10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상형토기, 지역별 토기

한반도 동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연맹체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철을 기반으로 한.중.일 해상교역로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여 상당하 수준의 경제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가 남겨놓은 많은 고분들에서는 부장품으로 각종 유물들을 남겨 놓고 있는데, 철제무기류와 함께 가야를 상징하는 유물로 다양한 모양의 상형토기를 들 수 있다. 인물이나 기물 등을 본떠서 만든 토기인 상용토기는 가야와 신라지역에서만 주로 출토되는 유물로 수레.배.집 등의 토기에서는 당시 가야인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주며, 각종 동물모양의 토우에서는 그들의 사후관이나 정신세계를 추론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도 바퀴모양토기를 가야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각배라고도 하는 뿔모양의 잔에서는 중앙아시아와의 교류관계를..

중앙박물관 2011.05.08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철생산과 대외교류

고조선 시대 삼한 중 변한지역이었던 가야는 철생산이 많았던 지역이었으며, 일본.중국과 해상교통로의 주요한 위치에 있었기때문에 다른 지역과 무역거래가 상당히 많았던 지역이다. 이런 지리적인 잇점과 당시 철생산이 많았던 지역적인 특성으로 가야는 상당한 경제력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가야지역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당히 크고 많은 고분들을 남겨놓고 있으며, 그 고분들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부장품들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중국.일본과의 해상교류의 거점이기도 한 금관가야 지역의 근거지인 김해 대성동 고분과 창원 다호리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수준높은 청동기와 철기 문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대외 교류와 관련된 많은 유물들을 남겨놓고 있다. 가야 연맹체가 성립된 이후에는 지역에서 생..

중앙박물관 2011.05.02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철제 무기

한반도 동남쪽 낙동강 중하류에 위치한 가야는 고대국가로 오랜기간동안 존재해왔으며, 연맹체국가로서 김해지역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등 여러지역에 근거지를 두었고, 지배계층의 고분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기때문에 오늘날 상당히 많은 유물들을 남겨놓고 있다. 주로 고분의 부장품으로 묻어둔 유물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의 사후세계관을 반영하는 많은 토기류와 철제무기, 장신구 등이 있다. 가야지역은 고조선시대 이래로 중국.한반도.일본과의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지역에서 생산되는 철을 기반을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배계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철제무기류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상당한 수준의 금속가공기술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

중앙박물관 2011.04.30

[중앙박물관 백제실] 백제의 무늬벽돌(보물343호)과 기와, 산수문전을 비롯한 8종류 그림이 새겨진 벽돌

삼국시대 건축을 대표하는 유물이자 회화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부여 외리 절터에서 출토된 여덟 종류의 무늬벽돌이다. 보물 343호로 지정된 이 네모모양의 벽돌은 크기가 일정하고, 네 귀의 측면에 홈이 파여 있어서 서로 연결하여 고정시킬 수 있다. 벽돌에 새겨진 무늬들은 회화성이매우 뛰어나 당시의 예술과 건축, 종교와 사상적인 측면까지 살펴 볼 수 있다. 산수문전.산수봉황문전,연대귀문전.반용문전.와운문전.연화문전의 8매로 이루어진 벽돌에 새겨진 그림은 사비기 백제인을 사로잡았던 도교적인 풍경이 잘 그려져 있으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도깨비 그림 또한 벽돌에 새겨져 있다. 무늬벽돌 부여 외리에서 출토된 여덟 종류의 무늬벽돌이다. 네모모양의 벽돌은 크기가 일정하고, 네 귀의 측면에 홈이 파여..

중앙박물관 2011.04.28

[중앙박물관 백제실] 백제의 문자, 관료의 성장과 꾸미개, 무기

백제는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통해 관료화가 진전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관모를 비롯하여 각종 꾸미개에서 관직체계를 표시하는 관료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백제의 꾸미개로 대표적인 것이 금.은제 관꾸미개와 허리띠 장식이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이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관복에 대한 기록을 확인해기도 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역사는 고려시대에 적은 내용이지만, 비석이나 목간 등에 기록된 문자로 그 내용을 보완하거나 확인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백제의 문자기록은 무령왕릉의 묘지석과 부소산성에서 발굴된 사택지적비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적지에서 발굴된 목간, 기와 등 건축자재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백제의 문자 문자는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과 정보를 후대에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금석문.목간.토기.기와 ..

중앙박물관 2011.04.25

[중앙박물관 백제실] 사비기, 충남 부여를 도읍으로 하던 시기의 유물

백제는 성왕때인 538년에 현 부여지역인 사비로 도읍을 옮겨 새로운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백마강이라 불리는 금강 남쪽해안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도성을 쌓았으며, 현재 부소산성 입구에 해당되는 관북리에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의 옛 도읍이었던 부여에는 중앙의 정림사지와 도성 바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궁남지와 부소산성을 제외하고는 유적지라고 느낄만 곳은 실제로 많지는 않다. 하지만 도성 동쪽편 왕릉이 있었던 능산리를 비롯하여 도심과 외곽에 여러 절터들이 있으며, 이들 절터에서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사비기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높은 문화와 기술 수준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백제는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유물이다. 웅진에서 사비로 무령..

중앙박물관 2011.04.24

[중앙박물관 백제실] 백제문화의 중흥, 무령왕릉 출토유물

백제가 한강유역에서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밀려서 도읍을 웅진으로 옮긴 시기는 약 70년(475~538) 정도이며, 송산리 고분군에서 무령왕릉이 1971년 송산리고분군에서 발굴되기 이전까지는 공산성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유물이 없었다. 송산리고분군 중 하나인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고분 중에서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공이 밝혀진 왕릉으로 관꾸미개를 비롯하여 약 4,600여점에 이르는 많은 유물이 이 왕릉 한곳에서 출토되었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중 보기 드물게 벽돌로 쌓아서 만든 무덤으로 중국 남조와의 문화적 교류를 잘 보여주는 무덤이다. 비슷한 형태의 무덤이 중국 남조의 귀족층 무덤으로 여러 곳이 발굴되고 있다고 한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대부분은 현재 공주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국보로 지정된 유물 ..

중앙박물관 2011.04.23

[중앙박물관 백제실] 백제의 지방세력 (영산강 유역 출토 유물)

한강유역 하남위례성에서 출발한 백제는 삼한시대 마한의 영역이었던 한반도 서남부지역을 장악하면서 고대국가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영역 중 수도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영산강 유역은 옛 마한의 근거지이자, 한.중.일 해상교통로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며, 넒은 평야를 끼고 있어서 오랫동안 강력한 지방세력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한의 근거지였던것으로 추정되는 나주 반남면 일대 자미산성 주변으로는 신촌리, 덕산리, 대안리에 상당히 규모가 크고 많은 수의 고분이 존재하고 있으며, 영산강 이북에는 나주 복암리를 비롯하여 여러지역에 지방유력세력의 근거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산강 유역의 고분들은 마한시대의 것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백제시대 지방 유력자들의 그 고분이다. 이들 ..

중앙박물관 2011.04.22

[중앙박물관 백제실] 백제의 대외교류와 제사

백제가 위치한 한반도 서남부 지역은 고대 이래로 중국본토와 일본열도를 연결해주는 동아시아 해상교통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고조선 내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세력들이 세운 성읍국가들로 구성된 진국, 삼한이 존재해 왔으며, 그 성읍국가들 중 고구려에서 밀려난 세력들이 세운 성읍국가에서 발전한 나라가 백제이다. 이런 역사적, 사회적 배경으로 볼 때도 한반도 서남부 지역은 상당히 높은 문화수준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국가 발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대외교류라고 볼 수 있다. 백제는 이러한 대외교류를 통해서 부단히 발전해 왔으며, 특히 중국 남조와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 한성기에 근초고왕이 보내준 칠지도를 비롯하여 일본과의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한반도와 일본에 상당히 많..

중앙박물관 2011.04.19

[중앙박물관 백제실] 백제의 건국과 한성기 유물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백제는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의 아들인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에서 백제를 건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부여계통의 세력이 한강유역으로 이주하면서 백제를 세웠다는 것을 말해준다. 초기에는 십제였다가 백제로 불리게되었다고 하며, 한반도 서남부지역 마한의 일개 성읍국가였다가 그 세력을 확장하여 고대국가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초기 백제의 수도는 하남 위례성이라고 기록에 남아 있으며, 그 위치가 풍납토성, 몽촌토성, 또는 하남의 또다른 지역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백제가 한성에 수도를 정한 기간은 약 500년(기원전18 ~ 기원후 475)에 이르며 백제역사 700년의 대부분을 한성에서 보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 백제의 유적이나 유물은 후대 웅진이..

중앙박물관 2011.04.18

[중앙박물관 고구려실] 고구려의 무기, 말갖춤

고구려는 중국대륙의 혼란기라고 할 수 있는 5호16국, 남북조시대에 한반도북부와 만주 일대에서 크게 번성했던 국가이다. 고구려가 북방민족이 세운 중국 북조의 국가들과의 투쟁에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철갑기병을 비롯하여 강력한 철제무기, 산성축조기술과 전략적 운용능력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 백제수도 한성을 공격해 한강유역을 차지하는 등 이 시기에 남한지역에 많은 고구려의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 대표적인 백제와의 투쟁의 흔적인 서울 아차산성에서는 무기류를 비롯하여 다양한 고구려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중앙박물관에서는 이들 유물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고구려 군사력의 바탕이 되는 무기류로는 고분벽화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기병의 활과 말갖춤 등이 특징적이..

중앙박물관 2011.04.16

[중앙박물관 고구려실] 고구려인의 일상과 불교

고구려는 오녀산성이 있는 환인성에서 성읍국가로 출발해서, 압록강 중류지역에 있는 길림성 지안시에 위치한 국내성, 마지막으로 대동강 유역의 평양성으로 수도를 이전했다. 그래서 고구려 유적은 대부분 압록강 중류의 지안시, 북한의 평양일대에 분포하고 있기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유물이나 유적을 실제로 보기는 힘든 형편이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유물들은 고구려 전성기때 한국유역에 남아 있는 여러 산성들에서 조금이나마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며, 신라에서 가져간 고구려 물건들이 경주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북방민족과 긴장관계에 있었던 고구려는 산성을 비롯하여 성곽을 쌓는 기술이 발달하였으며, 지배계층은 주로 성곽 안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지역에 있는 고구려 궁궐인 안악궁은 역사이래로 가장 규모가..

중앙박물관 2011.04.15

[중앙박물관 고구려실] 고구려의 무덤, 금동관

기원전 2세기 이전에 성읍국가에서 출발한 고구려는 부여에서 남하한 주몽세력에 의해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으며 점차 주변지역을 아우르면서 삼국 가운데에서 제일먼저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고구려는 환인성 오녀산성에서 출발하여, 압록강 중류에 지안시에 위치한 국내성을 근거지를 수도로 하다가 대동강 일대에 있던 낙랑군을 몰아내고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고구려의 유적지는 압록강 유역의 요녕성 환인현과 길림성 집안시에 도성, 무덤, 비석 등이 많이 남아 있으며, 마지막 도읍지인 평양성 일대에도 다양한 벽화가 그려진 고분들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비록 지금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상당한 수준의 유물과 유적들을 남겨놓고 있다. 특히 지안시 일대의 유적들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중앙박물관 2011.04.14

[중앙박물관 부여/삼한실] 삼한의 대외교류

한반도 남부지역에 존재했던 삼한은 그 세력의 기원이 고조선내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세력들이 남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한반도 남부에서도 중국, 일본과의 해상교역로에 많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의 동전, 청동거울 등 교역과 관련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유물이 출토되었던 지역은 경남 사천의 늑도, 제주도, 여천 거문도, 창원 다호리, 김해 양동리, 대구 만촌동, 울산 하대리 등 남해안 해상교통의 요지나 큰 강이 있는 지역이다. 특히, 창원 다호리에서는 붓과 손칼이 출토되는 등 문자를 사용하고 상당히 높은 문화수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삼한은 중원, 오르도스, 왜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는 철을 낙랑과 왜로 수출하였고, 실제로 남부지방의 여러 유적에서 ..

중앙박물관 201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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