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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하동 삼신산(지리산) 쌍계사(雙磎寺) -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

younghwan 2010. 2. 1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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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누각인 팔영루를 돌아서면 경내로 들어서게 됩니다. 쌍계사 경내는 특이하게 석탑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탑비가 경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쌍계사의 내력에서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불교 음악인 범패를 우리나라에 도입한 진감선사탑비입니다. 이 탑비는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 몸통은 손상되었지만 아래의 거북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통일신라시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 같습니다.


국보로 지정된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입니다. 몸돌은 손상되었지만 아래의 거북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역사적/문화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쌍계사의 팔영루를 지나서 본당이 있는 마당에 들어서면 다른 사찰에는 보통 석탑이 가운데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쌍계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진감선사 탑비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진감선사는 우리나라에 불교 음악인 범패를 도입한 분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쌍계사가 우리나라 불교음악을 이끌어 오고 있는 내력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뒷쪽에서 본 진감선사탑비입니다.

대웅전 앞에서 내려다 본 진감선사 탑비가 중앙에 있는 쌍계사 경내 마당입니다. 정면에 보이는 것이 팔영루입니다.



통일신라 후기의 유명한 승려인 진감선사의 탑비이다. 진감선사(774∼850)는 불교 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널리 대중화시킨 인물로, 애장왕 5년(804)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흥덕왕 5년(830)에 귀국하여 높은 도덕과 법력으로 당시 왕들의 우러름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이 곳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몸돌에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아래로는 거북받침돌을, 위로는 머릿돌을 고루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신라 후기의 탑비양식에 따라 거북받침돌은 머리가 용머리로 꾸며져 있으며, 등에는 6각의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등 중앙에는 비몸돌을 끼우도록 만든 비좌(碑座)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옆의 4면마다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직사각형의 몸돌은 여러 군데가 갈라져 있는 등 많이 손상된 상태이다. 머릿돌에는 구슬을 두고 다투는 용의 모습이 힘차게 표현되어 있고, 앞면 중앙에는 ‘해동고진감선사비’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꼭대기에는 솟은 연꽃무늬위로 구슬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진성여왕 원년(887)에 세워진 것으로, 그가 도를 닦던 옥천사를 ‘쌍계사’로 이름을 고친 후에 이 비를 세웠다 한다.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이었던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붓의 자연스런 흐름을 살려 생동감 있게 표현한 글씨는 최치원의 명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할 만큼 뛰어나다. 거의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나, 탑 전체가 많이 갈라지고 깨어져 있어 소중히 보존해야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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