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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박물관 373

양천 겸재정선기념관, 양천현의 옛모습과 정선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곳

강서구와 양천구 지역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향교가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지방행정 구역으로 양천현이 설치된 곳이다. 양천현 관아는 한강변 궁산 아래 위치하고 있었다. 궁산은 삼국시대 산성인 양천고성이 있었던 곳으로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하구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이지, 한강을 건너는 공암나루터가 있었던 곳이다. 주변에는 한강 경치가 아름다운 옛 양천읍치의 주산이었던 궁산과 양천향교, 멀지 않은 곳에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조선후기 진경산수화풍을 확립한 조선시대 대표 천재화가인 겸재 정선이 양천현령을 지냈던 곳으로 그의 그림속에 옛 양천현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강서구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허준박물관과 겸재정선기념관을 건립하였다. 겸재정선기념관에는 실제 정선이 그린 그림을 ..

지역박물관 2014.11.03

수원화성박물관, 화성축성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는 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은 수원화성 축성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는 전문박물관이다. 수원화성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수원화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2009년에 개관하였다. 박물관은 크게 '화성축성실'과 '화성문화실'로 구성되어 있다. 화성축성실은 정조가 당대의 과학기술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화성을 건설하는 모습과 자급자족이 가능한 계획도시로 발전하는 수원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화성문화실'은 정자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화성을 방문하여 백성과 하나되는 모습, 화성 축성을 이끈 채제공의 삶, 화성 방어체제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수원화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읍성으로 18세기말 당대의 건축기술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건설하였다. 석축성으로 쌓은 기존의 읍성과는 달리 석축성과 중국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지역박물관 2014.10.16

[고궁박물관특별전] 헝가리 왕실의 보물, 합스부르크왕가와 헝가리 귀족 사회

2013년 겨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이 개최되었다. 헝가리국립박물관에서 준비한 이번 전시는 1000년부터 시작된 헝가리 역사를 상징하는 '신성한 왕관'을 중심으로 오스만투르크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지만, 외세에 대한 저항과 협력을 통해 오늘날까지 정체성을 유지해온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헝가리는 우랄산맥 근처에서 거주하던 유목민이 도나우강 유역의 중부유럽으로 진출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외부세력에 대한 유럽의 방패 역할을 하면서 그 세력을 유지했으나, 16세기 근동지방의 강자로 등장하면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오스트리아 빈까지 공격해왔던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으며, 17세기 오스만투르크 세력이 약화되면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기 시..

지역박물관 2014.04.08

[한성백제박물관] 한강유역의 신라

삼국시대 한강유역은 475년 고구려가 백제 수도 한성을 점령함으로써 고구려가 76년간 장악하였다. 이후 백제는 신라와 연합해 한강유역을 되찾기는 했으나 553년부터는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이래 통일신라가 멸망하기까지 약 350년간 신라의 주요 거점으로 존재했었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뒤로 중국과의 뱃길을 확보하고 지방조직인 한산주를 설치하였으며 여러 산성을 쌓았다.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신라 유적지로는 하남 위례성 동남쪽 남한산성 자라게 쌓은 이성산성을 들 수 있다. 이성산서은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둘레 1.6km의 산성이다. 이곳에서는 신라가 쌓은 산성 석축을 비롯하여 자.방망이.톱 등 다양한 생활유물도 출토되었다. 신라, 마침내 한강으로 삼국 가운데 국가체제 정비가 가장 늦었던 신라는 5세기 이..

지역박물관 2014.04.05

[한성백제박물관] 한성기 이후 백제

백제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강한 압박을 받아 개로왕이 죽고 한성을 버리고 남하하게 된다. 새로운 도읍지로 금강을 방패삼아 공산성이 있는 웅진으로 왕성을 옮기게 된다.이후 538년 지형적으로 좁은 웅진을 버리고 넓은 평야를 배후에 두고 있는 사비성으로 옮겨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존속하게 된다. 백제가 수도를 웅진(공주)과 사비(부여)에 자리를 잡았던 시기는 약 200여년의 백제 역사에서 27% 정도의 기간이지만 오늘날 남아 있으면서 잘 알려진 백제유적과 유물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강유역에 물러난 이후 백제는 주변국과의 동맹에 크게 주력했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중국 남조, 왜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일본에..

지역박물관 2014.04.02

[한성백제박물관] 한강유역의 고구려

고구려는 삼국시대를 주도했던 국가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동시대를 이끌었던 주도세력이었지만,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라진 오늘날 고구려 유물이나 유적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다. 다만 한성백제기 고구려와 백제가 한강유역 패권을 다투던 시기에 한강과 임진강 유역에 주둔했던 고구려 군대가 쌓았던 산성이나 보루, 요새 등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편이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 유물은 경주를 비롯하여 남부지역에서도 일부 출토되기는 하지만, 많은 유물들은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서 쌓았던 아차산 일대 보루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들 보루에 주둔했던 고구려인들은 대부분 군인들이었으며, 둔전의 형태로 농사를 짓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토되는 유물들은 철제무기, 말갖춤, 각종 농..

지역박물관 2014.04.01

[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의 무기와 철제 도구

백제는 압록강 중류지방 졸본부여에서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세력이 온조와 비류를 중심으로 출발하여 한강유역에 정착하여 토착화된 세력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이들은 북방계 철기문화를 지닌 부여.고구려계통의 유민집단으로 청동기시대 이래로 성읍국가를 형성하면서 살던 원주민에 해당하는 마한인들보다는 뛰어난 철기기술과 말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때문에 빠른 시일내에 지역내 유력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고, 점차로 그 영역을 확대하여 한반도 서남부지역을 장악하여 고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런 철기기술과 기마전력을 바탕으로 고대국가로 발돋움한 백제는 근초고왕대에는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고, 가야를 공략하는 등 한반도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 한성백제기 왕성이었던 한강유역과 경기도 일대에서 당시의 무..

지역박물관 2014.03.30

[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의 대외교류

백제는 한반도에서 대외교류가 가장 많았던 국가 중 하나였다. 삼국시대는 한나라 멸망 이후 5호16국에서 남북조시대까지 중국에서 크고 작은 많은 나라들이 성쇠를 거듭하던 시기로 혼란스러웠던 측면도 있지만, 다양한 세력간에 많은 교류가 있었던 시기이다. 또한 고조선 멸망이 낙랑군이 중국,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해상교역의 중심이었다가 고구려의 압박으로 낙랑군이 물러난 이후 백제와 가야가 해상교역의 중심이었다. 또한 삼국시대에는 황해도 연안과 산동반도를 잇는 항로가 개발되어 더 많은 물자와 사람의 교류가 있었다. 한성기 백제는 주로 남조, 가야, 일본과 강한 유대관계를 가지면서 정치.경제적인 교류가 있었는데, 이는 를 비롯하여 많은 역사서에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출토유물에서도 당시의 교류관계를 잘 ..

지역박물관 2014.03.27

[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인들의 무덤

석촌호수가 있는 송파구 석촌동 일대에는 일제강점기에는 60여기 이상의 적석총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3호분과 4호분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한성백제기 왕성이었던 풍납토성 서쪽편 한강변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 무덤들은 고구려 매장방식인 돌무지무덤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백제는 한.중.일 해상무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국제적인 성격이 강했던 국가였는데, 백제의 무덤 방식 또한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초기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지배층은 돌무지무덤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후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석실분이라 불리는 돌방무덤이 만들어졌다.한성백제는 당시 한반도에서 최고 수준의 경제력을 보유하면서 강성했던 국가였지만, 지배층의 무덤들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며, 무덤 양식의 ..

지역박물관 2014.03.26

[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인의 생활모습

백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은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역사에 기록된 내용과 출토된 유물, 고구려를 비롯한 주변 지역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 등을 종합하여 추론하고 있다.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출토된 유물로 추정할 수 있는 백제인들의 식생활은 당시 중국이나 동아시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쪄서 먹었으며, 곡물은 끓여서 죽처럼 먹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백제의 여러 집터에서 출토된 계란모양토기와 시루는 지금도 사용하고는 음식을 찌는 용기이다. 또한 그릇으로 보이는 깊은바리토기는 죽을 먹기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백제인의 복식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러 기록에 고구려와 비슷하다고 하며, 고구려벽화에 나타난 복식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몸을 치장하는 장신구들..

지역박물관 2014.03.23

[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의 지방통치

백제는 기원전 18년 졸본부여에서 남하한 세력이 한강유역 토착세력과 함께 세운 나라이다. 초기 성읍국가 연맹체였던 마한의 소국이었지만, 북방에서 남하한 세력으로 북방유목민과 중국 대륙의 선진 문물과 기술을 바탕으로 점차 한반도 중부지역을 장악하면서 마한지역 전체를 장악하면서 고대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백제가 남하하는 고구려의 압력을 받아 웅진(공주)로 천도하기까지 왕도 한성(하남 위례성)은 백제 역사의 73%에 해당하는 493년간 왕성으로서 백제의 전성기를 보냈던 곳이다. 백제는 3세기 중반 한반도 중부지역을 장악하면서 고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4세기 후반에는 고구려를 압박하면서 황해도 일대를 장악하고, 남쪽으로는 남해안 지역까지 세력을 넓혔다. 한반도 지역 성읍국가들이 점차 고구려, 백제,..

지역박물관 2014.03.19

[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의 건국과 하남 위례성

백제는 온조가 백제를 건국한 기원전 18년부터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660년까지 678년간 한반도 서부와 남부에 존재했던 국가이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건국신화에 따르면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아들인 온조와 비류가 권력투쟁에 밀려서 한반도로 남하하여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이런 건국신화를 바탕으로 백제는 부여,고구려 유민집단이 토착세력과 연합하여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한반도 남부지역에는 크고 작은 성읍국가의 연맹체인 삼한이 존재했으며, 백제는 한반도 중부와 서부지역의 마한연맹체 일원으로 출발하였다다. 당시 마한에는 천안지역에 근거를 둔 목지국이 연맹을 주도했으나, 북방에서 남하한 백제는 중국대륙과 북방유목민의 영향으로 기술이나 문화가 뛰어났던 것으로 보이며, 점차 마한내에서 주도세력으로 부상하..

지역박물관 2014.03.17

[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의 여명,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성읍국가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000년 ~ 1,500년 사이에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한반도에는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성립되었다. 고조선의 범위는 한반동 서북지역과 요동지역을 포함하고 있는데, 당시를 대표하는 청동기인 비파형동검과 고인돌, 미송리식 토기등으로 확인되고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 한강유역에는 아직 성읍국가를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사림들이 마을을 낮은 구릉이나 평지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며, 청동의기를 사용하는 권력자가 등장하였다. 서울 주변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양재천 부근 도곡동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집자리 유적을 들 수 있다. 이곳에서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돌끌,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철기시대에는 철로 다양한 도구를 만들었는데 칼, 창, 화살..

지역박물관 2014.03.12

[한성백제박물관] 선사시대의 서울

한강은 한반도 중부지역 대부분을 수역으로 하는 강으로 길이 494km로 한반도에서 4번째로 긴 강이다. 한강은 태백 검룡소와 오대산 우퉁수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서울을 지나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든다. 한강유역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는데 대표적인 곳이 남한강 중류에 해당하는 제천 점말동굴과 단양 수양개 유적이다. 이외에도 한강유역에는 다양한 선사시대 유적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발견되고 있는데, 오랜 세월 한반도인들이 한강유역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서울의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다. 서울 면목동에서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3만전전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완면찍개, 양면찍개 등의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북한 굴포리문화..

지역박물관 2014.03.09

[한성백제박물관] 한성백제의 도성, 풍납토성을 깨우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첫번째 수도는 하남위례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실제 위치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까지의 발굴조사 결과로는 한강변에 위치한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도성이고, 서남쪽에 위치한 몽촌토성은 도성의 기능을 보좌하고 군사적.방어적 성격의 성곽으로 후대인 근초고왕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사기 건국신화에서 알려진 것처럼 백제는 고구려 세력 일부과 권력투쟁과정에서 남하하여 한강유역토착세력과 연합하여 건국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백제와 고구려는 만주에 근거한 세력에서 같이 출발하였지만 성곽의 입지와 축성방법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구려는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서 산성에 의존하면서 돌로 쌓은 석축성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백제는 강과 하천을 끼고 있는 지역에 흙으로 ..

지역박물관 2014.03.03

[한성백제박물관 특별전] 몽촌토성 발굴.조사 과정

서울 올림픽공원은 88서울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건설한 공원이다. 옛 한성백제 왕성이었던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경륜장, 역도경기장, 체조경기장 등 체육시설과 한성백제박물관, 올림픽회관등 공공시설들이 들어서 있고, 43만평의 넓은 부지 위에 넓은 잔듸밭,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서울의 한성백제 유적은 왕성이었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고분지역인 석촌동고분군, 방이동고분군 등이 남아 있는데, 1970년대 강남지역개발로 많은 지역들이 아파트, 도로 등 도시기반시설을 건설하는 동안 묻혔다. 석촌동고분군의 경우 유적지지하로 도로가 관통하고 있으며, 풍납토성에는 아파트를 비롯해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인구 4만명이 사는 주거지로 바뀌어 토성 성벽만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으..

지역박물관 2014.03.01

[한성백제박물관 특별전] 몽촌토성과 한강유역 고구려 보루

한성백제기 중반인 4세기 근초고왕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몽촌토성은 백제가 처음 터를 잡았던 풍납토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몽촌토성에서는 풍납토성과 마찬가지로 왕도인들이 살았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토기를 비롯하여 많은 생활용품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투겁창, 쇠화살촉 같은 무기류나 말재갈, 편자 같은 마구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기존 왕성인 풍납토성이 왕과 귀족들이 거주하면서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다면, 몽촌토성은 왕과 귀족들이 살았던 곳이지만 위례성 남쪽 남한산성과 연결되는 지리적 특성을 활용한 군사적인 성격이 강했던 곳이라 할 수 있다. 5세기 한성백제는 광개토대왕대 이후 고구려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고 있었으며, 457년 장수왕의 공격으로 백제 개로왕은 죽고, 웅진으로 천도..

지역박물관 2014.02.25

[한성백제박물관 특별전]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토기

하남 위례성은 백제가 기원전 18년 건국하면서 도읍을 정한 후 475년 고구려의 압박을 받아 웅진으로 천도하기까지 약 500여년 간 왕도(王都)로 역할을 했다. 기록에 남아 있는 하남 위례성은 풍납토성이었을 것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받아드리고 있다. 몽촌토성은 대체로 백제가 고대국가로서 자리잡고 한반도 서남부지역을 장악했던 4세기 근초고왕때 남한산의 의지하여 수도의 방어력을 강화하고 수도를 확장하는 목적으로 쌓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위해 조성한 올림픽공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몽촌토성은 성벽둘레 2,287m에 성벽대부분이 해자로 보호되고 있는 백제계 토성이라 할 수 있다. 왕과 귀족들이 거주한 왕성이었던 몽촌토성에서는 목책, 건물터, 주거지 등이 발굴되었는..

지역박물관 2014.02.23

[한성백제박물관 특별전] 백제의 꿈 왕도한산(王都漢山), 몽촌토성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

서울 올림픽공원내 위치한 한성백제박물관에서는 2013년 겨울 "백제의 꿈, 왕도한산(王都漢山, The Capital of Backje Hansan).몽촌토성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이번 전시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경기장이 들어설 올림픽공원 조성을 위해 실시된 몽촌토성 발굴.조사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라 한다. 당시 발굴.조사를 통해 복원된 몽촌토성은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가 기원전 18년 건국된 이래 고구려의 압박으로 웅진으로 천도한 475년까지 약 500여년간 수도로 삼았던 곳이다. 당시 발굴.조사과정을 통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성백제기의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급박하게 진행된 까닭에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부분이 많을 것으로 추..

지역박물관 2014.02.20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조국으로 가는길, 윤봉길 의거 이후 임시정부의 고난을 같이 했던 김가진 일가

1922년 김가진이 서거한 이후에도 아들 김의한과 며느리 정정화가 임시정부에서 적극적인 활동으로 독립운동을 이어온다. 며느리 정정화는 임시정부의 안살림꾼으로, 여성단체 주요 멤버로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아들 김의한은 아들 김의한은 김구가 이끄는 한국독립당에 적을 두고 광복국 기관지 '광복'편찬을 책임지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이들 가족은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일본의 압박을 받아 상하이를 떠나 자싱으로 떠난 이후 중.일전쟁으로 소주, 항주, 광주를 거쳐 중칭으로 이동하는 힘든 피난생활을 임정인사들과 같이 했다. 다른 중국 임시정부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 귀국하였으나, 큰 환대를 받지 못한 쓸쓸한 귀국이었다. 또한 한국전쟁때 아들 김의한은 북한으로 납북되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

지역박물관 201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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