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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유적 8

장성 황룡전적지(사적406호), 동학농민전쟁 초기 관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주요 격전지

구한말인 1894년 대규모 농민봉기이자 미완의 혁명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격전지 중 하나로 사적406호로 지정된 장성 황룡전적지이다. 이곳은 장성군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2km, 필암서원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장성군 중심지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황룡전적지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전투가 있었던 장소처럼 황룡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조형물 외에는 특별히 볼 수 있는 유적은 없지만 동학혁명이라는 구한말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1994년에 세워진 기념탑은 동학혁명을 상징하는 높이 30m의 죽창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앞에는 당시 혁명군이 사용하였던 총알을 막기 위해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장태를 굴리는 모습을 형상을 ..

근현대유적 2013.02.27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유적지

공주 금강변 남쪽 무령왕릉과 공산성 사이에 위치한 낮은 야산에 위치한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유적지이다. 이 곳은 원래 충청감영에서 죄인을 처형하던 장소로 서울의 서소문 순교지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죄인을 재판하고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권한은 대부분 관찰사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충청감사 관할내 죄인들에 대한 처형은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한말 천주교가 충청 서해안을 중심으로 포교가 많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이며, 프랑스인에 의한 남연군묘 도굴사건도 충청감사 관할지역인 내포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충청감사가 더욱 강경한 조치를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 처형된 대표적인 인물도 남연군묘가 있는 내포지역 천주교를 이끌던 이존창이며, 기록에 의하면 2..

근현대유적 2011.04.17

공주 우금치 전적지(사적 387호), 동학혁명 최대의 격전지

조선시대 호남지역에서 논산, 부여를 거쳐서 서울로 연결되는 육로가 금강변 충청감영이 있었던 공주 시내에 들어오기 직전에 있는 마지막 고개가 우금치로 동학농민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이다. 동학혁명당시 정부와 체결된 전주확약이 지켜지지 않자, 동학 농민군은 2차봉기를 일으키고 전봉군이 이끄는 4천명의 농민군은 논산에서 손병휘가 이끄는 북접군과 합류하여 2만여명의 군세로 충청감영이 있는 공주로 진격했다. 호남지역에서 공주로 들어오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렸으나 관군의 우세한 화력에 밀려 크게 패퇴하였다. 지금 우금치 전적지에는 당시를 기념하기 위년 기념탑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우금치 전투를 기념할만 것은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게다가 우금치전적기념..

근현대유적 2011.04.11

정읍 황토현 전적지, 동학 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곳 (사적 295호)

전북 정읍의 황토현 전적지는 사적 295호로 지정된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 곳은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곳이다. 이 곳 황토현 지역은 넓은 호남평야에서 높지는 않은 작은 야산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전북 감영이 있던 전주까지는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야지대이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주에서 출발한 관군이 이 곳에 황토현 부근에서 넓은 평야지대를 지켜보고 있던 동학농민군에게 크게 패한 장소이다. 황토현 전적지에는 동학농민 운동을 말해주는 특별한 유적은 없고, 주변에 사당을 비롯하여 기념관, 학생수련원 등의 교육.전시시설들이 모여 있다. 넓은 대지위에 여러 기념관과 동학혁명을 기념하는 각종 조형시설들만이 있어 약간 설렁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구..

근현대유적 2010.11.20

정읍 만석보 옛터, 동학혁명 횃불이 타올랐던 역사의 현장

만석보는 전북 정읍과 김제의 경계선이 되는 곳인 정읍천과 동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 두었던 보가 있었던 곳이다. 구한말 탐관오리의 대명사인 고부군수 조병갑이 고을 백성들을 동원하여 보를 쌓고, 과중한 수세를 거둠으로써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구한말 동학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역사적인 현장이다. 실제로 만석보를 쌓았던 지점을 보면 그 강폭이 그리 넓지 않고, 강을 막는데 동학혁명이 일어날 정도 과중한 공사가 아니었음에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욕에 의해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방에서는 당시에 만석보 상류에 농민들이 만들어 사용하던 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병갑이 농민들을 동원해 보를 쌓고 물세을 걷었다고 하니 그의 탐욕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만석보만 보아도 그의 ..

근현대유적 2010.11.20

[개항장 인천항]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구한말 역사적 의미가 남아 있는 곳

구한말 서구에 처음을 개방했던 항구인 인천항을 바라보고 있는 자유공원 아래 중구청 주변은 임오군란 이후 청.일 조차지역으로 발전해 왔다. 서쪽편 청나라 조차구역은 지금의 차이나타운으로 발전했으며, 동쪽편 일본 조차 구역은 한일합방이후 인천부청사가 들어서고 구한말 많은 일본의 금융기관과 통상을 지원하는 무역회사들의 사무소들이 있었던 곳으로 당시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거리로 변모해 있다. 두 구역의 경계가 되는 지점은 도로와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석조 계단이 만들어져 있으며, 계단에 올라서면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좋은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계간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며, 계단 자체로서는 건축적인 의미는 크지 않으나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라 할 수 있다. 계단 동쪽편..

근현대유적 2010.09.10

서울 외국인묘지 공원, 근현대사 인물과 외국 묘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서울 양화대교 부근에 위치한 외국인묘지공원은 근현대사에 많은 족적을 남긴 선교사를 비롯한 외국인들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한국을 찾아서 사회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던 세계 각국 출신 인사들이 묘지인 관계로 세계각국의 묘지들의 모습을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기도 하다. 근처에 있는 절두산 성당과 함께 한국에서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작은 공원으로 역사적인 인물들의 업적과 정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깨끗한 공원이다. 이 곳 외국인 묘지에서는 대표적인 곳 중 하나인 이화여대 설립자인 스크랜턴 부인의 묘소. 이화여대 설립에 공이 큰 아펜젤러 가족, 셔우드 등 독립운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베델과 헐버트 묘소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 가족묘 제중원을 설립한 의사 에..

근현대유적 2010.09.10 (1)

창녕 척화비, 대원군이 외세를 배척하고자 세운 비

창녕읍 동쪽편 화왕산에서 흘러내린 개울물은 창녕읍을 동에서 서쪽 낙동강 방향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그 개천을 중심으로 읍이 형성되어 있다. 이 곳 창녕읍에서 화왕산 방향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 도심공원 역할을 하고 있는 만옥정이 있다. 이 공원에는 창녕에 있었던 진흥왕척경비 같은 여러 기념물들이 옮겨져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구한말 대원군이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로 창녕읍내 다른 지역에 있는 것을 옮겨 왔다고 한다. 이 비석을 세운지 백년정도 밖에 되지 않아 문화재 같은 느낌은 주고 있지는 않지만, 역사적 의미는 큰 비석이라 하겠다. 창녕 만옥정 내에 있는 창녕 척화비. 문화재같은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척화비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하게되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

근현대유적 2010.09.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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