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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144

서울 동묘(보물142호), 삼국지 영웅 관우 장군 제사를 모시는 곳

서울 동묘는 삼국지의 영웅인 관우 장군 제사를 모시는 묘로서 중국에서는 공자의 제사를 모시는 묘인 대성전 만큼 인기가 좋은 곳이지만 우리나라에는 많지 남아 있지 않아서, 이 곳 서울의 동묘가 거의 유일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동묘를 짓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나라가 왜군을 물리치게 된 까닭이 성스러운 관우 장군께 덕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인데, 명나라의 왕이 직접 액자를 써서 보내와 공사가 이루어졌다. 동묘는 선조 32년(1599)에 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601년에 완성되었다. 서울에는 동.서.남.북 4곳에 지어졌으나 지금은 동쪽편에 지어진 동묘만이 남아 있다. 동묘에는 관우와 그의 최측근인 관평, 주창 등 4명의 상을 모시고 있다. 동묘는 조선중기에 세워진 중국풍의 건물로 우리나라..

궁궐_종묘 2013.05.22

서울 사직단, 조선이란 국가를 상징하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

서울 도성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사직단이다. 토지의 신에 제를 올리는 사단(社壇)은 동쪽, 곡식의 신에 제를 올리는 직단(稷壇)은 서쪽에 설치되어 있다. 사직단은 내부에 담장이 설치되어 있고 사방으로 신문(神門)이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는 삼도로 연결되어 있다. 사직의 국가를 의미하는 말고 동일시 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사직단은 국가의 구성요소 중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천의식은 부여를 비롯한 고대국가에서 아주 중요시 여겨졌으며 다양한 형태의 의식이 거행되었다. 사직단은 중국의 문물을 많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삼국시대부터 설치된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991년(성종10)에 사직단이 개경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조선왕조 또한 한양으로..

궁궐_종묘 2013.03.30

[창덕궁] 낙선재 부속 건물들과 승화루, 상량정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위치한 낙선재 일원은 1846년(헌종 12)는 창건된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와 후원의 취운정.한정당.상량정, 승화루, 삼삼와, 칠분서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이었던 경빈을 사대부 저택처럼 지어진 건물로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경복궁 건청궁과 마찬가지로 국왕이나 왕비들이 궁궐에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집처럼 꾸며놓은 처소라고 할 수 있다. 낙선재 건물들은 대체로 구한말 유행했던 사대부 저택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창살문양이나 정자 등에서 당시 상류층들이 선호했던 청나라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창덕궁 낙선재 일원에는 국왕의 처소인 낙선재, 왕비의 처소인 석복헌, 대비의 처소인 수강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강재 바깥쪽에는 수행원들의 처소로 보이는 건물과 창..

궁궐_종묘 2013.01.09

[창덕궁] 낙선재 일원 (보물 1764호), 마지막으로 왕족이 거처하던 곳

창덕궁 낙선재는 일제강점기 이후 1989년까지 마지막 이씨왕조 후손들이 살았던 공간을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국왕의 침전이다. 구한말인 헌종 13년(1847)에 지어진 낙선재는 기존의 궁궐전각 형태가 아닌 사대부 저택처럼 지어진 국왕의 침전이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이 처음부터 궁궐에서 태어나 세자를 거쳐서 왕위에 오른 경우도 있지만, 일부 국왕들은 사저에 태어나 일반인처럼 살다가 왕위를 이을 세자가 없어서 대신 왕위에 오른 경우가 많다. 이런 왕들은 민간인으로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여 궁궐내에 사대부 저택 형태로 전각을 짓고 거처하는 경우가 있었다. 낙선재와 마찬가지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경복궁 후원의 건청궁이 이런 연유로 궁궐내에 사대부 저택 형태로 지은 전각들이다. 낙선재는 먼저 국왕의 ..

궁궐_종묘 2012.11.18

[덕수궁] 중명전, 서양식 왕실 도서관 건물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

덕수궁 중명전은 정동길 정동극장 뒷편에 옛 미국대사관과 나란히 있는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덕수궁 일원에서 제외되어 서울구락부라는 사교단체 등에 임대되었던 건물이다. 중명전은 1897년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진 건물로 원래 이름은 수옥헌이었으나, 1904년 덕수궁 화재때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서 중명전이라는 이름으로 바뀐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덕수궁과 떨어져 있지만, 동쪽편의 미국대사관저, 서쪽편의 예원학교와 함께 덕수궁 궐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덕수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영역은 원래의 1/3정도로 축소되어 대한제국의 궁궐이었음에도 다른 궁궐에 비해 좁아 보인다. 이 곳은 덕수궁 화재 이후 편전으로 사용되어 외교사신의 접견이 이루어졌던 장소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중..

궁궐_종묘 2012.10.12

[창덕궁] 성정각과 관물헌, 세자가 거처하던 동궁

창덕궁 성정각과 관물헌은 왕세자가 머물던 동궁으로서 국왕의 처소인 희정당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성정각은 원래는 동궁이었으나 한때는 내의원으로 쓰였기 때문에 내의원으로 많이 알려진 장소이며, 관물헌은 구한말 갑신정변 때 고종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국왕과 왕비가 주로 거처했던 편전과 내전인 선정전과 대조전에서 대비를 비롯하여 왕실가족들이 많이 거쳐했던 창경궁과 후원으로 연결되는 길목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서 동궐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잘 내려다 보이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 있어서 행동하기에 약간 불편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정각 안쪽에 작은 행각에는 이곳에 내의원이었음을 말해주는 '보호성궁', '조화어약'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성정각과 관물헌은 세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일반..

궁궐_종묘 2012.10.12

[창덕궁] 선정전(보물814호), 국왕이 집무를 보던 편전건물로 유일하게 청기와를 얹은 건물

선정전은 창덕궁의 편전으로 국왕 일상적인 업무를 보던 공간이다. 조선시대 국왕은 지금의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는데, 그 중 상당부분이 편전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요 일과라 할 수 있다. 편전에서 이루어지는 주요 업무는 신하들과의 조정회의, 중요한 업무보고, 세미나 성격의 경연 등이 있다. 이곳에서의 모든 회의 내용은 사관이 참여하여 기록을 남겨놓는데 이를 사초라 하며, 사초의 내용을 바탕으로 당대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실록을 편찬하였다. 창덕궁 편전인 선정전은 경복궁과는 달리 정전과 일직선으로 배치하지 않고 자연환경에 맞추어 동쪽편에 배치되어 있다. 창덕궁은 원래 상왕이었던 태종을 위해 지은 이궁(離宮)으로 건물의 규모를 크게 짓지 않아기 때문에 경복궁 편전인 사정전에 ..

궁궐_종묘 2012.10.10

[창덕궁] 인정전(국보 225호), 창덕궁과 동궐의 중심이 되는 정전

창덕궁 인정전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 버린 이후 구한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조선후기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창덕궁의 정전이다. 인정전은 태종 이방원이 상왕이 되었을 때 거처할 궁전으로 창덕궁이 건립될 때 정전으로 세워진 건물로 당시에는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규모였다. 임진왜란때 경복궁과 함께 불타버린 것을 궁궐 정전의 형식에 맞게 현재의 규모로 앞면 5칸의 2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순조대에 화재로 불타버린것을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인정전은 일제강점기에 순조가 거처하는 궁궐의 정전으로 바뀌면서 내부에 마루를 깔고 전등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인정전은 궁궐 정전으로 인정문과 회랑으로 둘러져 있어 조정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원래 상왕이 머무는 이궁으로 건립한 까닭에 경복궁에 ..

궁궐_종묘 2012.10.09

[창덕궁] 인정문(보물813호)와 조정(朝廷)이라 불리는 인정전 앞 마당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 앞 마당은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치루는 장소로서 조정(朝廷)이라고 부른다. 정전을 중심으로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져 있으며, 마당에는 박석을 깔아 놓고 있으며, 중문인 인정문에서 인정전 월대까지는 국왕의 가마가 지나가는 길인 삼도가 놓여 있다. 삼도 좌.우에는 품계석이 세워져 있는데, 정전에서 국가적인 공식 행사가 있을 때 동쪽에는 문신, 서쪽에는 무신들이 서는 자리를 표시해 준다. 바닥에는 거친 박석을 깔아 놓아 빗물에 미끄러지지 않게 하거나,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정전 앞에서 조심스럽게 걷도록 하고 있다. 경복궁 근정전 앞 마당은 웅장한 느낌을 주는데 비해 창덕궁 인정전 앞 마당은 편안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조정(朝廷) 출입문인 인정문은 보물 813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

궁궐_종묘 2012.10.04

[창덕궁] 인정문 앞 외조(外朝),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 거행되던 곳

동아시아에서 궁궐은 크게 국가적인 공식행사 및 외교사절의 접견등을 하는 통치의 중심이 되는 정전, 국왕이 평상시 집무를 보는 공간인 편전, 국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내전으로 이루어져 있고, 궁궐 바깥쪽에서 궁궐 정문사이에는 국왕직속 관청들이 모여 있는 궐내각사 등이 배치되었다. 궁궐에서 외조(外朝)라 함은 궁궐 정문과 정전 출입문 사이의 공간을 말하며, 좁게는 궁궐 정전 출입문 앞 마당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행각들을 일컫는다. 이 공간에서는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 이루어지기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 중에 하나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국왕의 즉위식은 선왕의 장례식 절차 중 하나로 여겨지기 때문에 실제로 성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 장소 또한 정전 바깥쪽인 외조(外朝)에 이루어졌다..

궁궐_종묘 2012.10.02

[창덕궁] 구선원전(보물 817호), 역대 국왕의 초상화를 모시는 궁궐내 건물

창덕궁 궐내각사 뒷편에는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모시는 건물인 보물 817호로 지정된 선원전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은 전체 9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종묘나 일반적인 사당건물과는 달리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 앞쪽에 양쪽으로 진설청과 내찰당을 달아내어 붙였으며, 앞쪽에는 행각이 있다. 선원전은 종묘와 함께 선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건물을 웅장하거나 화려하게 짓지 않고, 단정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건물 앞쪽 행각끝에는 억석루라는 역대 왕들의 어필 현판을 보관하는 건물이 있고, 동쪽편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인 양지당이 있다. 건물 뒷편에는 의풍각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제기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선원전은 역대 임금의 초상을 봉안하는 건물이다...

궁궐_종묘 2012.10.01

[창덕궁] 돈화문, 가장 오래된 궁궐의 정문

임진왜란 이후 국왕이 주로 머물렀던 창덕궁 출입문인 돈화문이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바깥세상에서 궁궐로 들어오는 첫번째 문으로 경복궁의 광화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보물 385호 지정된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412년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이후 중수된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은 광화문과 달리 정전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고, 동궐 서쪽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정전인 인정전 정면으로는 조선초기부터 존재했던 종묘가 있었기때문이다. 이는 경복궁과는 달리 법도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자연지세를 적절히 맞추어 건물을 배치한 동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돈화문은 문루가 있는 2층으로 이루어진 출입문으로 석축으로 쌓아 성문과 ..

궁궐_종묘 2012.09.22

[창경궁] 관덕정, 국왕이 활을 쏘던 활터 정자

창경궁 후원 춘당지 뒷편 언덕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서양식 온실이 있고, 그 동쪽편으로 국왕 활을 쏘던 활터인 관덕정이, 서쪽편으로는 작은 연못인 애련지와 순조대에 일반 사대부 저택처럼 지은 연경당이 있고, 그 안쪽으로 크고 작은 연못들과 정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국왕이 거처하는 궁궐로 자리잡았던 동궐(창덕궁과 창경궁)에서 이 지역은 건물들은 많이 들어서 있지 않고, 국왕과 왕실가족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큰 정원과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조선초에 지은 경복궁이나 중국 북경의 자금성과는 달리 상당히 넓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넓은 공원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대춘당지가 있던 곳에는 국왕이 직접 농사를 짓던 논도 있었기때문에 궁궐 안에 하나의 ..

궁궐_종묘 2012.09.21

[창경궁] 춘당지, 창경궁 후원의 큰 연못

춘당지는 창경궁 후원에 있는 큰 연못으로 창경궁을 대표하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동물원 시절부터 창경원으로 대표하는 장면으로 많이 알려진 곳으로 창경궁 후원의 울창한 수목과 함께 도심속에서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운 정원이 동궐 후원의 여러 연못을 지나서 흘려 내려온 냇물이 모여서 큰 연못을 이루고 있는 춘당지는 위쪽의 작은 연못인 소춘당지와 아래쪽의 큰 연못이 대춘장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춘당지에는 도교의 낙원을 상징하는 작은 섬이 조성되어 있다. 많은 전각들로 가득찬 경복궁과는 달리 창경궁은 동궐 후원과 연결된 울창한 숲과 산책로 덕분에 도심에서 잠시 숲을 즐기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심공원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조선시대 창경궁에는 소춘당지만 있었고 아래쪽 대..

궁궐_종묘 2012.09.20

[창경궁] 영춘헌과 집복헌, 후궁들의 거처로 사도세자가 태어나고 정조가 승하한 곳

창경궁 내전의 중심건물인 통명전과 양화당 일대는 대비를 비롯하여 왕실이 어른이 거처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궁궐에 속한 많은 후궁들과 궁녀, 어린 왕실 가족들이 거처하는 왕실의 생활공간으로 궁궐내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선전기에는 경복궁이 왕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이 되기도 했지만, 창덕궁에 국왕이 주로 머물렀던 조선후기에는 동궐 중 창경궁과 서궐인 경희궁 일대가 궁궐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공간이다. 궁궐에 머물렀던 사람들로는 국왕과 왕비, 세자와 가족들, 어린 왕자들, 많은 후궁들, 대비를 비롯한 선왕대의 후궁 등과 이들에 딸린 많은 궁녀와 왕을 호위하는 내시 등을 들 수 있으며, 대부분 이들은 창경궁에 거처했다고 할 수 있다. 대비의 거처로 주로 쓰였던 양화당 아래쪽에는 이 ..

궁궐_종묘 2012.09.16

[창경궁] 통명전(보물818호)과 양화당, 대비가 거처하던 창경궁의 중심 공간

창경궁은 원래 세종때 상왕인 태종이 거처하기 위해서 처음 조성되었으며, 그 후로는 왕실의 어른인 대비들을 위해서 성종대에 창건된 궁궐이다. 창경궁은 왕의 거처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비를 비롯하여 많은 후궁들과 그들의 소생을 비롯하여 주요 왕실 가족이 거처하던 공간이었다. 창경궁 안쪽 후원과 가까운 곳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통명전과 양화당은 창경궁의 핵심적인 건물로 통명전은 국왕이 거처하는 침전으로, 양화당은 대비가 거처하는 곳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국왕은 대비의 거처 근처에서 머물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통명전은 대비의 거처인 양화당과 함께 대비가 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수렴청정 기간 등 대비의 위상이 높았을 때, 대왕대비가 존재했을 때, 또는 왕의 생모가 대비가 아닌 경우 등 여러 ..

궁궐_종묘 2012.09.14

[창경궁] 환경전과 경춘전, 국왕과 왕비가 거처했던 내전 건물

창경궁 정전인 명전전 뒷편으로는 국왕과 왕비를 비롯하여 왕실에 속해있던 많은 일가들이 머물던 공간이다. 창경궁은 세종대에 상왕인 태종을 위한 공간으로 처음 궁궐건물들이 조성된 이래로 성종대에 대비를 비롯한 왕실가족을 위해 창건한 궁궐이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버린 이후 대부분의 기간동안 국왕이 거처했던 창덕궁은 실제로 정전, 편전, 동궁전을 제외하고는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지 않다. 실제로 대비를 비롯한 왕실 어른들, 많은 후궁들과 그들 소생인 어린 왕자와 공주들, 왕실에 일하던 상궁과 나인 등 왕실에 속한 사람들이 주로 거주했던 장소는 창경궁 일원이었다고 한다. 창경궁에는 이들을 위한 많은 전각들이 있었는데, 일제가 이곳에 동물원을 조성하면서 대부분의 전각들은 허물어지고, 환경전,통명전,경춘전 등..

궁궐_종묘 2012.09.14

[창경궁] 숭문당과 함인정, 국왕이 학자들과 학문을 논하던 건물

숭문당은 법전인 명정전 뒷편에 임금이 거처하던 문정전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이 숭문전이 그 역할을 하는 곳으로 건물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조용한 분위기로 학문과 국사를 논의 하기에 적당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국왕이 주로 거처하며 정사를 논의하던 곳은 창덕궁이며, 창경궁 정전과 편전은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편전의 부속건물이라 할 수 있는 숭문당은 창덕궁에서 성균관으로 가는 길에 있으며, 궁궐 후원과도 가까운 까닭에 창덕궁에 비해서 일상적인 업무에서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국왕이 정치를 벗어나 학자들과 학문을 논하기 좋은 분위기를 하고 있어 많이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조는 이곳에서 성균관 유생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함인정은 명정전..

궁궐_종묘 2012.09.13

[창경궁] 편전인 문정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

창경궁 명정전 뒷편에 위치한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임금이 정사를 보던 곳이다. 일반적으로 편전은 법전 뒤에 나란히 위치하나 창경궁의 편전인 문정전은 동향인 명정전과는 방향이 다른 남향을 하고 있다. 문정전은 창경궁이 건립된 성종대부터 존재했던 건물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던 휘녕전이 이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조성하면서 철거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1980년대 창경궁 중창공사때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되었다. 건물은 궁궐의 편전건물로 격식을 크게 강조하지 않고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내부는 닫집이 있는 어좌를 중심으로 마루가 깔려 있는 하나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국왕이 머무는 곳이라기 보다는 신하들과 국가의 중요..

궁궐_종묘 2012.09.11

[창경궁] 정전인 명정전 (국보226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전

창경궁의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되는 건물로 현존하는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다른 궁의 법전이 남향인 것과 달리 동향이다. 임진왜란때 불탄 건물으로 광해군때 다시 지은 건물이다. 창경궁 자체가 대비가 거처하는 장소로서 유교법도에 따라 동향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에 비해 단층 지붕으로 규모는 약간 작다. 인조 반정을 포함하여 대비의 정치적인 위상이 높을 때 등에 많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 창경궁 명정전은 창덕궁이나 경복궁의 정전과는 달리 단층 건물이지만, 국왕이 국가적인 행사를 주관하는 정전으로 2층의 월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놓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1칸 규모로 팔작지뭉을 하고 있으며, 지붕을 받치는 보는 다포계 양식을 하고 있다. 임진왜란 이..

궁궐_종묘 201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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