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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81

서울 아차산(해발 287m),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역사탐방로

아차산(해발 287m)은 용마산과 함께 서울 동부지역과 경기도 구리시를 경계짓는 산으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난 곳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큰 산맥인 광주산맥의 한줄기가 수락산(해발638m)을 거쳐서 한강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특히, 한강이남 한성백제 수도였던 위레성 주변 한강유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워커일 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아차산은 서울 동부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근교산이다. 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여러곳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코스는 남쪽 산자락 아래 아차산성 입구이다. 해발 300m가 되지 않는 나즈막한 동산으로 걷기에 수월하면서 능선을 따라서 펼치지는 경치가 일품이다. 아차산은 도심..

한국의 풍경 2014.05.16

서울 양천고성지(사적 372), 삼국시대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하구를 지키던 산성

양천고성지(사적 372호)는 조선시대 양천현 관아가 있던 강서구 가양동에 궁산(해발 74m) 정상에 남아 있넌 산성터이다.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한 중요한 요새로서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천고성이 있는 궁산은 안양천과 한강이 합류되는 지금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요한 요새였다. 성은 궁산 정상에 길이 200m 정도의 성벽을 쌓은 테뫼식산산성으로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양천고성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문헌에 남아 있으며,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이 성에 머물렀다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서 크게 이겼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궁산이 있는 양천현은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현령을 지냈던 곳으로 정선은 궁산에 올라 한강 경치를 감상하면서 여러 작품을 남..

서울 용마산 보루(사적455호), 고구려군이 아차산 일대에 쌓은 보루

아차산보루군은 삼국시대 한강유역 패권을 다투던 5~6세기에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던 풍납토성, 몽촌토성 지역을 압박하기 위해 고구려군이 쌓았던 소규모 군사요새로 남한 최대의 고구려 유적지이기도 한다. 현재까지 아차산보루, 용마산보루, 시루봉보루, 수락산보루, 망우산 보루 등 17여개가 확인되었는데 그 중 10여개가 고구려군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용마산보루는 아차선 능선 북쪽의 4보루 북쪽 능선에서 시작하여 용마산 일대 능선에 쌓은 보루를 말하며 용마산 정상을 비롯하여 7곳의 보루가 확인되었다. 보루는 주로 중랑천 일대 넓은 평야지대를 감시.장악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이며 정상부 부근 능선에 3곳, 평지와 가까운 낮은 곳에 4곳의 보루가 확인되었다. 용마산보루에서는 고구려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연..

서울 아차산보루(사적455호), 고구려군이 쌓은 보루를 복원한 아차산4보루

한성백제 왕성이었던 풍납토성 북쪽 아차산 능선을 따라서 고구려군이 세웠던 보루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4보루이다. 등산로를 따라 발굴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다른 보루와는 달리 4보루는 시범적으로 고구려군이 쌓았던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하고 있다. 아차산4보루는 둘레 249m로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석축을 쌓은 방어시설이다. 조선후기 강화도 일대에 쌓은 돈대와 비슷한 성격이지만, 여장이나 총구 등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성벽 위에 목책을 설치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벽 안쪽 건물터에는 온돌, 배수로, 저수조 등이 있었으며, 투구.창.도끼같은 무기와 낫.쇠스랑같은 농기도, 말갖춤이 발굴되었다. 아마도 군사들이 주변에 둔전을 경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차산보루(사적455호)는 삼국시대 고구..

성곽(산성_읍성) 2014.04.15 (1)

고양 행주산성(사적56호), 임진왜란 행주대첩 현장이자 서울 해맞이 장소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중에 있었던 3대 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의 현장으로 우리에게 아주 가까히 있는 유적지이다. 행주산성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석축으로 성벽을 쌓고 사방에 문루가 있는 전형적인 산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고, 한강과 창릉천으로 둘러쌓여 있는 덕양산의 지형적 장점을 이용하여 산을 둘러서 토성을 쌓고 있는 모습이 전형적인 삼국시대 산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백제가 쌓은 토성들은 조선시대에 석축성으로 바뀌었는데 행주산성은 서울을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조선시대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곳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후손들이 찾는 역사유적지이다. 행주산성은 일산으로 가는 자유로에 자리잡고 있어 눈에 익은 명소이기는 하지만 자주 방문..

남한산성 연주봉 옹성, 산성 북쪽 한강에 내려다 보이는 능선에 설치된 방어시설

남한산성 연주봉 옹성은 남한산성 아래 광주의 중심지역이었던 춘궁동, 이성산성 일대, 한강과 그 너머의 아차산성이 내려다 보이는 중요한 지점에 설치된 방어시설이다. 남한산성 서문에서 북문을 연결하는 성벽 바깥쪽으로 돌출된 능선에 성벽과 여장, 포대를 설치한 옹성으로 그 둘레는 315m이며, 73개의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현재의 연주봉 옹성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되었던 것을 고증을 통해서 최근에 복원한 것이다. 옹성은 원래 성문을 호위하기 위해 성문바깥쪽에 반원형으로 돌출된 성벽을 쌓은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남한산성 옹성은 성벽 바깥쪽 방어에 취약한 능선에 기존의 성벽에서 돌출된 형태로 쌓은 방어시설로 적이 거점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제압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남한산성의 ..

남한산성, 수어장대에서 서문(우익문)까지

남한산성의 중심이 되는 수어장대를 내려서 서울 송파지역과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는 서문(우익문)까지의 성곽길이다. 수어장대에서 서문을 지난 북문까지의 성곽은 비슷한 고도를 따라서 능선길이 있으며, 경사가 별로 없는 언덕길을 내려가는 것과 같다. 옛날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군이 송파지역에 주둔했던 것처럼, 남한산성을 침입하는 가상의 적은 대부분 이쪽방면으로 올라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성벽의 석축은 매우 견고하게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역사에 있어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수도인 한양을 방어하는 목적이 있었던 산성이지만 이는 주로 병자호란때 경우를 말한다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는 한양과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한강을 건너야 했기때문에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항하여 국왕이 이 곳으로 피난할 목적으로 ..

남한산성, 수어장대 아래 서암문(제6암문)

남한산성 지휘부가 있었던 수어장대 아래에는 바깥으로 통하는 서암문이 있다. 수원화성 서장대나 동장대 부근에도 암문이 있었는데 이 곳 남한산성에서도 수어장대 아래에 지휘부가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인 암문을 두고 있다. 이 암문을 빠져 나가면 남한산성 아래쪽인 송파지역과 연결되며, 옛날에는 송파나루를 거쳐서 도성인 한양과 연결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암문 북동쪽으로는 성벽을 돌출하여 적이 이 암문을 통과할 때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어며, 암문은 눈에 잘 띄지 않게 평거식으로 낮은 통로만 두고 있다. 지휘부가 있었던 수어장대 부근이라서 그런지 암문 주위 성벽은 주위보다 높고 튼튼하게 석축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암문(제6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

서울 탕춘대성, 구기동 암문에서 향로봉 아래까지

탕춘대성은 한양도성을 이루는 인왕산과 북한산 향로봉 아래까지를 연결한 성으로 숙종대와 수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북한산성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경복궁 뒷편에서 세검정을 거쳐 북한산성 대남문으로 연결되는 비상통로를 확보하고 군량미를 저장하면서 한양도성의 외성역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용도로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북악터널이 지나가는 보현봉과 북악산을 있는 동쪽편 능선에서 성을 쌓을 계획이었으나 숙종의 사망으로 완성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탕춘대성 안쪽 지형은 구기동 계곡을 중심으로 3면이 능선으로 둘러싸어 있고, 계곡에는 민가가 많지 않은 지역으로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이 휴식공간 역할을 했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구기동계곡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로 흐르는 홍제천이 유일한 통로이며 그 ..

남한산성 수어장대(서장대), 청량산 정상에 세운 군사를 지휘하던 장대

남한산성에 쌓은 4개의 장대 중 서장대에 해당하는 수어장대이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안에서 최고 높은 곳인 청량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어 성내부와 주변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특히 도성인 한양과 한강, 그리고 한양과 남한산성까지의 길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군이 주둔하고 있던 삼전도비가 있는 송파구 일대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이라 인조가 직접 수어장대에 올라 전행을 지휘했다고 한다. 수어장대는 원래 1층 누각이었으나, 영조때 다시 위에 2층 누각을 지었으며, 바깥에는 '수어장대', 안쪽에는 병자호란의 시련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무망루'라는 현판을 걸어 놓았는데, 현재 '무망루'현편은 수어장대 오른쪽에 별도의 보호각을 만들어서 전시해 놓고 있다. 인조때..

남한산성, 남문(지화문)에서 영춘정까지

남한산성 경기도 성남시 동쪽 광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천혜의 요새이다. 청량산과 남한산 사이에 위치한 조그만 분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한산성으로 들어오는 길은 광주시에서 계곡을 따라서 올라오는 길과 성남시에서 능선을 따라서 올라오는 길이 있다. 평지에서 산성까지 들어오는 길은 상당히 험한 편이고 산성 바깥쪽으로는 경사가 심한 반면에 산성에서는 서울을 가로 질러 흐르는 한강을 비롯하여 서울 전체와 성남지역이 막힘없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어 산성으로서는 조건을 상당히 잘 갖추고 있는 곳이다. 남한산성 남문은 지화문이라고도 부르며, 성남쪽과는 능선을 따라서 만들어진 도로를 통해서 들어올 수 있다. 이번에는 남한산성 성곽을 돌아보는 가장 편한 길 중 하나인 남문에서 서문을 거쳐서 ..

성곽(산성_읍성) 2013.08.12 (1)

문경 고모산성, 옛 영남대로(토끼비리)와 진남교반이 내려다 보이는 남쪽편 성벽

문경 고모산성은 삼국시대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을 꾀하기 시작한 5세기경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영남과 중부지방을 연결하는 영남대로가 백두대간 문경새재 입구 조령관문에서 12 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의 오정산, 서남쪽 어룡산 등이 길을 막고 있으며, 산성 서쪽으로는 문경시 가은읍에서 흘러내려오는 영강이 문경새재에서 흘려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하여 흐르고 있다. 산성있는 고모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길을 막고 있는 병목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관문성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산성은 전체 길이 약 1.6km에 이르며 작은 봉우리 사이에 약간의 평지가 있고, 영강이 흐르는 서쪽으로 작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어 전체적으로는 포곡식산성처럼 보인다. 허물어진 성벽에서 작은 돌을 촘촘하게 쌓..

북한산성(사적162호) 중성문, 대서문과 행궁 사이에 쌓은 중성 출입문

북한산성의 정문인 대서문과 북한산성 마을이 있던 등운각갈림길을 지나서 계곡을 따라서 등산로를 한참 올라오면 만날 수 있는 성문이 중성문이다. 중성문은 북한산 노적봉과 중취봉 사이에 쌓은 중성에 설치된 성문이다. 이 중성문 안쪽이 북한산성 내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곳에 별도로 중성을 축조한 이유는 이곳이 지형이 평탄하여 대서문이 적에게 공략당할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 중간 병목같은 위치에 중성을 쌓고 성문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중성문을 들어서면 북한산성 계곡에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설치된 정자인 산영루를 비롯하여, 북한산성을 거처간 관리들의 공덕비들이 세워져 있는 비석군이 있고, 그 안쪽에 국왕의 피신처로 마련한 행궁을 비롯하여 식량과 무기를 저장하던 창고, 북한산성 승병들을 지휘하던 ..

성곽(산성_읍성) 2013.06.17 (1)

강화산성(사적132호), 남문 안파루와 주변 성곽

강화산성은 전체 둘레 7.2km의 큰 성곽으로 4개의 성문과, 2개의 수문, 남.서.북장대, 암문 등이 출입시설과 방어시설을 두고 있다. 현재의 강화산성은 병자호란때 파괴된 것을 숙종대에 강화유수 허질이 대대적인 개축을 하면서 고려시대 궁성의 내성 규모로 남산과 북산을 연결하여 석축형 형태로 쌓은 것이다. 강화산성에는 남문인 안파루, 동문인 망한루, 북문인 진송루, 서문인 첨화루를 두고 있는데 그 중 남문이 첨화루는 강화읍 남쪽편 지역에서 산성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이다. 남문은 서북쪽 하점면과 송해면을 제외한 강화도 대부분 지역 사람들이 사용했기때문에 사람의 통행이 가장 많은 성문이었으며, 자연스럽게 남문 주위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남문을 이용한 사람의 통행이 많았기때문에 서울 보신각종처럼..

강화산성(사적132호), 남산 정상(해발223m) 남장대와 주변 성곽

강화산성에서 군사를 지휘하던 남장대가 있는 남산은 해발 223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변에 고려산(해발 436m)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이 없어 멀리 한강하구와 개성지역, 동쪽으로는 문수산성, 갑곶나루와 염하(강화해협), 서북쪽으로는 강화고인돌이 있는 송해면 일대의 들판과 해안, 서쪽으로는 고려산 고갯길과 국화저수지, 동남쪽으로는 팔만대장경을 새겼던 선원사 절터가 있는 선원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화유수부 관아가 행궁이 있는 강화읍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강화산성은 둘레 7 km에 이르는 규모가 큰 산성이지만 실제로는 고려시대 대몽항전을 위해 쌓았던 성곽 중 고려궁 주변에 쌓은 궁성에 해당하는 내성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강화산성은 서울에서 강화..

성곽(산성_읍성) 2013.06.14 (1)

강화산성(사적132호), 석수문에서 남장대 아래 암문까지

강화산성 성벽은 서문과 석수문을 지나면 해발 223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강화산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남장대가 설치된 남산으로 성벽이 이어진다. 남산은 관아와 행궁이 있는 북산에 비해서 경사가 가파르고 주변과 마을이나 다른 지역과 연결되는 고갯길이 많지 않은 편으로 실제로 남산 성곽은 적이 공략하기 힘들고 주변지역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도 많지 않은 편이며 남산 정상 남장대 아래 암문을 통해서 능선길을 따라 강화도 남쪽지역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강화산성은 강화읍 남쪽 남산과 북쪽 북산을 연결한 읍성의 성격을 갖고 있는 산성인데, 산능선을 따라 석축을 쌓은 지역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는 용이하나 큰길과 연결되는 동쪽과 서쪽은 평지에 석축을 쌓았기때문에 실제로 적의 공격에 취약한 부분..

성곽(산성_읍성) 2013.06.12 (1)

강화산성(사적132호) 서문 첨화루와 구한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던 연무당 옛터

강화읍 중심부를 지나서 강화지석묘 방향의 48번 국도에 자리잡고 있는 강화산성의 서문과 성루인 첨화루이다. 지금은 서문 옆에 도로가 있지만 원래는 성벽이 북쪽 북산과 남쪽의 남산을 연결하고 있다. 강화산성은 전체 약 10 km에 이르는 큰 규모의 산성이자 읍성의 기능을 같이 가지고 있다. 산성 성곽은 북산 능선과 남산 능선을 따라서 쌓은 석축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도로가 지나가고 마을이 형성된 남문과 서문 주위의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졌던 것을 최근에 복원되고 있다. 서문 주위의 성벽 서장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언덕까지의 성벽은 대부분 훼손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서문 주변 일부만 최근에 성벽을 복원해 놓고 있다. 서문 안쪽으로는 구한말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장소인 연무당 옛터가 있고, 또한 ..

성곽(산성_읍성) 2013.06.10 (2)

강화산성(사적132호) 북장대터와 주변 성벽

강화산성에는 남산, 북산 그리고 서문 부근 3곳에 장대를 세워놓고 있다. 그 중 북장대는 북산 정상 부근 강화읍내가 내려다 보이는 봉우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강화산성 북장대는 강화읍과 산성 북쪽 송해면 지역과 연결해주는 고갯길에 있는 암문과 비슷한 역할을 하던 북문인 진송루에서 동쪽 능선으로 이어진 성곽길을 따라서 조금만 걸으면 오를 수 있다. 북산이 해발 140m로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인데다 진송루가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어 약 5~10분 정도 걸으면 북장대가 있던 봉우리를 오를 수 있다. 북장대 건물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봉우리까지 걸어서 올라온 수고에 비하면 그 전망은 꽤 뛰어난 편이다. 북장대에 오르면 강화읍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북쪽으로는 한강하구와 그 너머 북녁땅..

강화산성(사적 132호), 동문에서 북산으로 연결되는 성벽

강화읍의 주산이라 할 수 있는 북산 해발 140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강화읍 북쪽을 장벽처럼 막아주고 있다. 고려시대 궁궐과 조선시대 행궁, 관아가 들어서 있는 관청리는 대부분 북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북산은 관청리에서 동쪽편 출입문인 동문과 북산 서쪽편 고갯길에 위치한 북문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으며, 능선을 따라서 북문과 서문 사이가 석축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곽길을 따라서 북산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멀리 개성 지역 평야와 한강하구, 동쪽으로는 조선후기 강화도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쌓은 문수산성이 한눈에 들어오기때문에 한강하구를 통제하기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 강화도가 고려시대 이후 국방상 중요한 지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산성의 유적지로 그 중요성이 강..

강화산성(사적132호), 동문인 망한루와 주변 성벽

강화산성에는 동.서.남.북에 성문을 두고 또한 4개의 암문, 2개의 수문을 두고 있으며,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파괴했던 것을 숙종대에 석축성으로 중수하였다. 강화산성 4개의 성문 중 동문은 염하를 건너는 나루터인 갑곶진과 한강을 오가는 선박들이 정박하는 연미정 부근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동문은 안쪽으로는 '망한루', 바깥쪽에는 '강도동문'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행궁과 관아가 있는 관청리 일대와 직접 연결되는 출입문으로 주로 강화부를 방문하는 관리들이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산성 동문은 구한말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2000년대에 복원하였다. 당시 프랑스군은 동문을 돌파하여 강화부 관아와 행궁을 불태우고 규장각에 있던 많은 도서들을 약탈해 갔다. 동문 동쪽에는 낮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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