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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고성지(사적 372호)는 조선시대 양천현 관아가 있던 강서구 가양동에 궁산(해발 74m) 정상에 남아 있넌 산성터이다.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한 중요한 요새로서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천고성이 있는 궁산은 안양천과 한강이 합류되는 지금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요한 요새였다. 성은 궁산 정상에 길이 200m 정도의 성벽을 쌓은 테뫼식산산성으로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양천고성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문헌에 남아 있으며,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이 성에 머물렀다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서 크게 이겼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궁산이 있는 양천현은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현령을 지냈던 곳으로 정선은 궁산에 올라 한강 경치를 감상하면서 여러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소악후월도', '안현석봉', '목멱조돈' 등이 있다. 궁산 아래에 있던 양천현 관아 건물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서울에서는 유일한 향교인 양천향교가 이곳이 관아가 있던 지역임을 말해주고 있다.



서울 가양동 궁산(해발74.3m) 상부에 남아 있는 양천고성지(사적372호)이다. 이 성은 궁산 정상부에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안양천과 한강하류가 합류되는 지금 부근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중요한 요새였다. 지금은 정상부에 건물터 몇곳과 성벽 발굴 흔적 몇곳을 제외하고는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궁산(해발74.3m)은 백제의 양천고성 터가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양천 현령으로 재임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던 장소이다.
한강유역 수운을 통제하기 위한 전략적 중요성은 조선시대까지 바뀌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궁산근린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도심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양천고성이 있는 궁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궁산 정상부.


궁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성벽을 따라서 이어지는 산책로

 


양천고성은 정상부 둘레에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성벽은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보인다. 지금은 산책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발굴 현장이 일부 보인다.


양천고성 성벽 발굴 현장


궁산 정상 서쪽편 아래 언덕. 성벽은 길이가 약 220m정도이며 산성 면적은 약 29,370㎡ 정도이다. 산성북쪽은 경사가 심해 별도로 성벽이 필요 없는 것으로 보이면 나머지 방향으로 궁산 정상 아래에 성벽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궁산 정상. 평탄한 지역에 펼쳐져 있고, 건물터 흔적을 볼 수 있다.


양천고성 건물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전망대에서 보이는 행주산성 부근 한강. 이곳은 겸재정선이 소악루에서 달을 기다리며 그린 그림 '소악후월'과 비슷한 역사적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겸재 정선이 그린 '소악후월도'


공항철도가 지나가는 마곡철교


북한산이 보이는 서울 방향


양천고성 내 쉼터


양천고성에서 소악루로 내려가는 길

성황신을 모신 사당인 성황사

 


소악루는 영조대 동복 현감을 지낸 이유가 양천 관아 뒷산 강변에 세웠던 악양류터에 새로 지은 정자이다. 누각에 오르면 안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등이 한눈에 보이고 한강하류 풍경이 빼어난 명소였다. 겸재 정선은 양천현령을 지내면서 이곳에서 여러 작품을 남겼다.

안현석봉, 겸재 정선이 이곳에 올라 안산 부근에서 피워 올리는 봉화불을 보면서 경치를 감상했다고 한다. 탑산과 광주바위를 앞쪽으로 끌어내어 경치를 그렸다. 목멱조돈, 겸재 정신이 북한산에서 북악.인왕산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를 그렸다.


소악루에서 내려다 본 한강


소악루에서 궁산으로 올라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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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1동 | 양천고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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