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고택_정원 214

동해 북평해암정

동해시 추암 촛대바위 부근에 있는 작은 정자인 북평해암정이다. 앞면 3칸 규모의 전형적인 정자 건물로 조선중기에 지어졌으며 여러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송시열을 비롯하여 조선후기 관동팔경 유람을 떠났던 많은 선비들이 찾았던 명소 중 한곳이다. 동해 북평해암정. 경치가 빼어난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정자이다. 옆쪽에서 본 모습. 정자 뒷편으로는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동해안 일출명소인 추암 촛대바위가 있는 언덕. 추암 촛대바위

고택_정원 2018.07.30

영월 김종길 가옥

남한강 지류인 추천강이 휘감으면서 흐르는 마을인 영월 주천면 소재지에 있는 고택인 김종길 가옥이다. 구한말에 지어진 집으로 ‘ㄱ’자형 안채와 ‘-’자형 사랑채, 문간채 등으로 되어 있다. 원래 안채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사랑채, 문간채 등을 새로 지었다. 안채는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 툇간을 달아내어 방, 부엌, 광 등을 배치하였다. 영서지방의 ‘ㄱ’자형 한옥의 형태를 잘 보여주는 고택이다. 영월군 주천면 소재지에 있는 고택인 김종길 가옥이다. 남한강 지류인 주천강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큰 규모의 고택이다. 'ㄱ'자 형태를 하고 있는 안채. 대청마루가 넓으며 개방적인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대청마루 왼쪽에 날개채를 달아내어 방과 광 등을 두고 있다. 대청마루 오른쪽에는 건너방과 부엌이 있다. ..

고택_정원 2018.01.15

보은 선병국 가옥

충북 보은군에 있는 고택인 선병국가옥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개량한옥으로 충북 지역을 대표하는 99칸 대저택이다. 경북 상주에서 충북 청주지역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자 보은읍에서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여행하는 손님들이 많이 찾았을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사랑채, 안채, 사당을 중심으로 대문채, 행랑채 등 많은 부속건물을 두고 있다. 전통 한옥에 비해 마당을 넓게 쓰고 있으며, 건물 또한 대체로 전통한옥에 비해 공간이 넓은 편이다. 일제강점기 새로운 기술이나 생활환경 등에 따라 한옥이 구조나 형태가 바뀌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보은 선병국 가옥. 20세기초에 지어진 99칸 대저택으로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따른 건축양식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 넓은 대..

고택_정원 2018.01.01

보은 선병묵 고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대저택

충북 보은군 하개리 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고택이다. 안채와 사랑채 등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마당을 비교적 넓게 쓰고 있는 한옥이다. 근처에 있는 선병국 가옥과 선병우 고가와 비슷한 양식을 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지주 계층의 살았던 대저택의 모습인 남아 있다. 보은군 하개리 마을에 있는 고택인 선병묵 고가이다. 안채, 사랑채, 대문 등의 고루 갖추어져 있는 대저택이다. 대문은 서쪽편 마을을 향하고 있다. 뒷편에 있는 안채. 전통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붉은 벽돌을 사용하는 등 일제강점기 이후 건축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안채 앞 마당. 앞쪽에 위치한 사랑채.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전통한옥에 비해 마당을 상당히 넓게 쓰고 있다. 사랑채 출입문. 동쪽편에 있는 별채로 보이는 건물..

고택_정원 2017.04.03 (1)

보은 선병우 고가

충북 보은군 장안면 속리산 서원계곡 입구 하개리마을에 위치한 선병우 고가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종의 개량한옥이다. 앞쪽에 바깥주인인 거처하는 사랑채가, 뒷편에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가 배치되어 있다. 보은에서 유명한 대저택인 선병국 가옥과 비슷한 양식이며 일가 친적으로 보인다.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선병우 고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개량한옥이다. 저택 출입문인 솟을대문. 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안채를 출입하는 중문채. 붉은 벽돌과 유리창을 사용하는 등 개량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 마당을 출입하는 작은 문.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랑채. 붉은 벽돌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전통 한옥 사랑채의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선병우 고가 앞 넓은 마당. 건너편에 마을에서 가장 큰 한옥인..

고택_정원 2017.02.20

함양 우명리 정씨 고가, 구한말에 지어진 고택

경남 함양 우명리 정씨 고가이다. 인근 개평마을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정여창의 후손이 분가하여 터를 잡고 살아온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집은 아주 오래된 고택은 아니고 구한말에 지어졌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담장으로 안채와 사랑채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유교적인 질서가 해체되는 구한말에 지어져서 집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대저택에서 사용하는 솟을대문을 사용하고 있다. 함양 우명리 정씨고가. 조선중기 문신 정여창의 후손들이 분가해서 세거지를 이루고 있는 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이다. 정여창을 모신 남계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유교적인 질서가 무너진 구한말에 지어진 고택으로 문간채는 솟을대문을 사용하고 있다. 안쪽에서 본 문간채. 한쪽편에는 문간방이..

고택_정원 2016.10.24

함양 개평마을, 풍천노씨 대종가

경남 함양 개평마을 풍천노씨 대종가로 풍천노씨 입향조인 조선초 문신 노숙동이 처가인 이 마을에서 처음 자리잡은 곳이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일렬로 배치되어 개방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의 구조나 형태 등으로 볼 때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다. 마을의 대종가이지만 저택의 규모나 형태가 소박하면서도 검소해 보인다. 개평마을은 하동정씨, 풍천노씨,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이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마을 특산물로는 정여창 종가에서 손님을 접대했던 지리산 솔송주가 있다. 개평(介坪)이란 말은 두개의 하천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함양 개평마을 풍천노씨 대종가. 조선중기 풍..

고택_정원 2016.10.10

함양 개평마을, 일두고택

함양군 개평마을에서 가장 큰 저택인 일두고택이다. 조선중기 유학자이자 문신인 정여창이 살았던 집터에 후손들이 다시 크게 지은 것이다. 경남 서부 지역을 대표하는 대저택을 넓은 부지에 사랑채, 안사랑채, 안채, 아래채, 광채, 사당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안채는 약 300년 전에 다시 지었으며, 사랑채는 구한말에 지었다. 폐쇄적인 구조의 경북북부 지역의 한옥과 달리 ‘-’자형구조를 하고 있으며 넓은 마당을 쓰고 있다. TV드라마 '토지'를 비롯하여 많은 사극에 등장했던 한옥이다. 개평마을은 하동정씨, 풍천노씨,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이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마을 특산물로는 정여창 종가에서 손님을 접대..

고택_정원 2016.09.28

함양 개평마을, 하동정씨 고가

함양 개평마을 고택 중 하나인 하동정씨 고가이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자형으로 앞면 6칸의 상당히 큰 규모이다. 사랑채는 앞면 3칸으로 별당 또는 아래채 건물 규모이다. 사랑채가 있던 자리에는 정원수가 있는 넓은 마당으로 바뀌었다. 마을 대저택인 일두고택과 비슷한 시기인 1644년에 지었다고 한다. 양반들의 세거지였던 개평마을의 명성에 걸맞게 이 집 주인은 성균관대 학장과 차관을 지냈다고 한다. 고택이 있는 개평마을은 하동정씨, 풍천노씨,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이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함양 개평마을 하동정씨 고가.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정여창의 후손이 분..

고택_정원 2016.09.21

함양 개평마을, 오담고택

경남 함양 개평마을에 있는 오담고택이다. 정여창의 후손인 오담 정환필이 분가하면서 구한말인 19세기에 지어진 고택이다. 앞쪽에 '-'자형 사랑채, 뒷편에 안채를 두고 있으며 마당을 넓게 쓰고 있다. 조선후기 종가에서 분가한 양반계층의 주거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고택이다. 고택이 있는 개평마을은 하동정씨, 풍천노씨,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이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함양 개평마을 오담고택.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정여장의 후손이 분가하면서 지은 고택이다. 앞쪽에 사랑채를, 뒷편에 안채를 두고 있다. 마당을 넓게 쓰고 개방적인 조선후기 남부지방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바깥주인이 거처하면서 손님을 ..

고택_정원 2016.09.19

함양 개평마을, 노참판댁 고가

함양군 개평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 중 하나인 노참판댁 고가이다. 가옥은 사랑채와 안채가 일렬로 배치된 전형적이 남부지방 한옥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고 검소한 편이다. 구한말 바둑계의 일인자였던 노근영이 태어나고 살았던 유서깊은 집이다. 이 가옥이 위치한 개평마을은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로 하동정씨, 풍천노씨와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다. 조선중기 유학자인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함양 지곡면 개평마을 남아 있는 노참판댁 고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이라하며 앞쪽에 사랑채가, 뒷쪽에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구한말 도시한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문간채. 사랑채. 앞면 4칸 규모로 대청마루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건축적으로 잘 ..

고택_정원 2016.09.15

함양 허삼둘가옥

함양군 안의면 소재지에 있는 삼둘가옥이다. 기존 한옥과 약간 다른 면모를 보이는 일종의 개량한옥이다. 바깥쪽에 사랑채와 바깥행랑채가 ‘-’자로 배치되어 있고, 안쪽에 ‘ㄱ’자형 안채와 ‘-’자형 안행랑채가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을 이루고 있지만 안마당을 넓게 쓰고 있으며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안채 한가운데에 부엌을 배치하여 여자들이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하고 있다. 생활편의를 고려한 공간배치는 일제강점기 전통한옥의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마을은 옛 안의현 읍치였던 곳으로 마을 형상이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쇠부리’라고 불린다. 일제강점기 때 부호였던 윤대홍이 부인 허삼둘과 함께 지었다고 한다. 함양군 안의면 소재지에 남아 있는 전통 한옥인 허삼둘가옥이다. 일..

고택_정원 2016.08.11

함양 화림동계곡 동호정

함양 화림동 계곡에 있는 작은 정자인 동호정이다. 정자는 남강변 넓직한 자연암반 위에 세워졌는데 계곡의 다른 정자에 비해 크고 화려하게 지었다. 건물은 사방이 뚫여 있으며, 가운데 작은 마루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자 앞 계곡에는 큰 규모의 담소인 옥녀담이 있으며, 가운데에는 차일암이라 불리는 넓은 암반이 자리잡고 있다. 여름 한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물놀이를 하면서 지내기에 좋은 장소이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 상류 화림동계곡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인 동호정. 구한말인 1890년 지역유림들이 친목을 위해 경치좋은 곳에 세운 정자이다. 건물은 넓직한 암반 위에 세워졌는데, 앞면 3칸 규모로 비교적 큰 규모의 정자이다. 건물은 사방이 뚫려 있어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다. 가운데 마루방..

고택_정원 2016.07.12

함양 화림동 계곡 군자정(君子亭)

경남 함양군 화림동 계곡(명승 86호)에 있는 작은 정자인 군자정(君子亭)이다. 이곳은 조선중기 유학자 정여창이 즐겨 찾았던 곳이라 전한다. 정자는 19세기에 전세걸 등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건물은 계곡에 있는 바위 위에 지어진 누각건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내부는 방이 없고 넓은 마루로 되어 있다. 건물 초석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기둥으로 사용한 목재도 대충 다듬어 사용해서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화림동 계곡은 덕유산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산에서 발원한 남강이 바위가 많은 지형을 기암괴석을 만들며 빼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조선중기에 처음 세워졌다는 거연정을 중심으로 농월정, 동호정, 군자정 등 많은 정자들이 들어서 있다. 계곡의 빼어난 절경과 함께 양반들의 풍..

고택_정원 2016.07.07

함양 거연정(명승 86호)

함양 화림동 계곡에 있는 정자인 거연정이다. 조선중기 중추부지사를 지낸 전시서의 후손들이 19세기에 새로 지은 것으로 계곡 가운데 넓고 편평한 큰 바위 위에 세워졌다. 정자 건물은 앞면 3칸 규모의 2층 누각건물로 사방이 뚫려 있으며 가운데 작은 마루방을 두고 있다. 거연정 일원(명승 86호)은 기암괴석과 계곡물, 주위 풍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함양 지역의 경치가 빼어난 여러 정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곳으로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화림동 계곡은 덕유산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산에서 발원한 남강이 바위가 많은 지형을 기암괴석을 만들며 빼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조선중기에 처음 세워졌다는 거연정을 중심으로 농월정, 동호정, 군자정 등 많은 정자들이 들어서 있다. 계곡의 빼어난 절경과 함께 ..

고택_정원 2016.06.30

구례 방호정(方壺亭)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마을 부근에 있는 정자인 방호정(方壺亭)이다. 지역 유림들이 시모임을 위해 지은 작은 정자로 마을과 개천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며, 가운데 온돌방을, 양쪽에 마루를 두고 있는 전형적인 정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산동면 일대는 중국 산동지방에서 산수유를 가져와 처음으로 심었던 지역이라고 하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구례 산수유마을이 있다.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구례군을 가로질러 흐르는 서시천을 중심으로 농지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산수유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방호정은 봄철 지역축제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산수유를 처음 심었다고 전해지는 구례 산수유마을 부근에 위치한 작은 정자인 방호정. 인근 마을..

고택_정원 2016.06.20

구례 운흥정(雲興亭)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려온 서시천이 평지와 만나는 곳에 용소(龍沼)를 이루는 곳에 세워진 작은 정자인 운흥정(雲興亭)이다. 일제강점기 지역 유림들의 시사계(詩社契) 친목모임에서 경치좋은 하천가에 세운 정자로 건물은 온돌방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넓은 마루를 두고 있는 전형적인 정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마루에는 계모임 활동들을 보여주는 글들이 걸려 있다. 정자 건너편에는 조선초 전라감사를 지낸 하연이 용을 보았다는 일화를 새겨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상류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 우리나라에 처음 산수유를 심었다는 산수유마을이 있다. 구례 운흥정. 지역 유림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경치좋은 곳에 세운 정자이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정자로 당시 구례지역의 양반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정자..

고택_정원 2016.06.15

구례 운조루(雲鳥樓)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대저택인 구례 운조루(雲鳥樓)이다. 저택은 55칸 규모로 따뜻한 호남지방의 지역적 특징을 반영했다기보다는 구한말 한양의 권문세가들 사이에 유행안 안동지방의 'ㅁ'자형 주택 구조를 하고 있다. 건물은 오른쪽에 안채, 왼쪽에 사랑채가 배치되어 있고, 앞쪽에 행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T’자형을 하고 있는데 왼쪽 끝에 누마루를 두고 있다. 안채 앞에는 사랑채와 직각을 이룬 작은 사랑채가 있다. 안채는 ‘ㅁ’자형을 하고 있는데 상당히 규모가 큰 편이다.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방과 부엌, 광 등이 배치되어 있다. 안채 오른쪽에는 불천위 조상을 모신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이 집은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무관출신 유이주가 구한말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

고택_정원 2016.05.31

안동 천전마을 만송헌

안동에서 영덕으로 가는 34번 국도변 임하댐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마을인 천전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 중 하나인 만송헌(萬松軒)이다. 마을 후손 중 한명인 김세장의 종택으로 19세에 처음 지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1960년대에 새로 중건한 것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ㅁ’자형 한옥이다. 19세기 한옥의 건축 양식이 잘 남아 있는 고택이다. 안동 천전마을 뒷편에 남아 있는 19세기 고택인 만송헌. 만송헌 들어가는 골목길. 기와를 얹은 담장이 고풍스러운 전통마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주위에 있는 고택들도 지금은 낡았지만 원래 꽤 큰 규모의 저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붙어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안동지방 전통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 19세기에 처음 지어졌는데 1960년대에 ..

고택_정원 2016.05.23

안동 모계정사, 금계리마을에 남아 있는 정자

안동 금계리 마을에 남아 있는 정자인 모계정사(某溪精舍)이다. 모계정사는 선비들이 공부를 하거나 손님을 접견하기 지은 정자로 마을 한쪽편에 사랑채처럼 지어졌다. 건물은 앞면 3칸에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앞쪽에 반칸정도 마루를 달아 놓고 있으며 마루는 난간을 둘렀다. 정자 건물 외 앞면 3칸 규모의 솟을대문이 있는 문간채를 두고 있다. 구한말 홍문관시강(弘文館侍講) 등을 역임한 김홍락(1863~1943년)이 세웠다고 한다. 학봉 김성일이 살았던 고택이 있는 금계리마을에 남아 있는 모계정사. 선비들 손님을 접대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 지은 사랑채 역할을 했던 건물이다. 건물은 앞면 3칸 규모로 온돌방 2칸과 넓은 마루를 두고 있다. 건물 앞쪽에는 반칸 정도 마루를 달았으며 난간을 둘렀다. 솟..

고택_정원 2016.05.1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