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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터 55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913호)

경주 남산 용장사 절터에 남아 있는 마애여래좌상(보물 913호)이다. 삼층석탑 아래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불상을 새겨 놓았다. 얼굴은 원만하게 표현했으며 신체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활력있는 형태, 세련된 선의 흐름 등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8세기 통일신라 불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바위 옆 공간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187호)이 남아 있다. 용장사 절터는 금오산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용장사 계곡 정상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조선초 세조때 생육신인 김시습이 이곳에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저술했다고 한다. 경주 남산 용장사 절터에 남아 있는 마애여래좌상(보물 913호) 바위에 돋을 새김한 불상으로 단순하지만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표현이 돋보인다. 마애불상..

남원 용담사지 석조여래입상(보물 42호)

남원 용담사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 42호)이다. 큰 바위에 부처의 형상을 부조로 새겨놓은 높이 6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다. 얼굴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심하게 마모되어 알아보기 힘들지만 힘차고 박력있는 표정을 느낄 수 있다.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비롯하여 고려 초 호족세력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성한 거대한 불상 중 하나이다. 조각으로 표현된 부분이 마모되어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힘이 넘치고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도 양호한 편이다. 남원 용담사는 백제 성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선국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고 출토된 유물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남원 용담사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 42호). 얼굴 형체는 알아볼 수..

천안 천흥사 절터와 당간지주(보물99호)

천흥사지는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성거산(해발579m) 서북쪽 계곡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절터이다. 천흥계곡에 둑을 쌓고 저수지를 조성하면서 절터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천흥리 마을 입구에 남아 있는 천흥사지 당간지주(보물99호)와 저수지 둑 아래에 위치한 오층석탑(보물354호)이 이곳에 절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천흥사 창건과 내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중인 천흥사지 동종(국보280호)에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주조한 천흥사 종이라는 글이 남아 있다. 기록에는 없지만 당간지주나 오층석탑의 형태 등으로 볼 때 고려가 건국되었던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역에 세웠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규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사찰입구에 세웠던 당간지주와 ..

절터 2014.08.12

천안 천흥사지 5층석탑(보물 354호), 고려전기 양식을 잘 보여주는 석탑

천안시 성거읍 천흥사 절터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오층석탑(보물354호)이다. 지대석 위에 2층기단을 놓고 그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부는 1층은 낮게, 2층은 높게 만들었다. 윗층 기단은 각 면마다 1개씩 4개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되어있으며 1층 기단은 높게,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높이가 줄어든다. 통일신라 말기 석탑이 작고 정형화된 형식인데 반해 웅장하면서 전체적인 비례에 있어 조형미가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을 연상시키고 있는 석탑이다. 천흥사는 천안 성거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찰이었다. 천흥사종(국보280호)를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오층석탑,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성종대..

[진주박물관] 서부경남지역의 불교 유적과 유물

서부 경남에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명산 중 하나인 지리산이 자리잡고 있다. 지리산은 삼국시대 이래로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으며 불교가 전래된 이래로 많은 사찰들이 자리 잡았다.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화엄10찰 중 하나인 화엄사를 비롯하여 통일신라말부터 지방호족세력의 지원을 받아 크게 융성한 선종계열 사찰로 실상사, 단속사, 쌍계사 등이 있었으며, 고려말 결사운동을 주도했던 송광사와 선암사 등이 지리산 일대에 자리잡았다. 지금도 지리산 주변을 비롯하여 서부경남지역에는 많은 사찰들이 있지만, 통일신라.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하였다가 폐사된 사찰 또한 적지 않았으며, 많은 유물들이 절터에서 출토되고 있다. 대표적인 절터로 합천 영암사지, 거창 천덕사지, 함양 승안사지, 산청 단속사지와 석남사지 등이 있다. 신앙의 산..

지역박물관 2013.08.23

북한산 중흥사지, 북한산성 승군을 총지휘한 승대장이 머물던 사찰 절터

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있던 중흥사는 북한산성을 지키던 승군들이 머물던 사찰 중 가장 큰 사찰이었다. 중흥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원증국사가 머물때 중수하면서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리 크지 않았던 사찰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의 방어를 위해 숙종이 북한산성을 쌓으면서 산성을 지키고 수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승군들이 머물 수 있도록 크게 중수하였다고 한다. 사찰이 1915년 대홍수로 무너지기전까지 136칸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중흥사에는 북한산성을 지키던 승군들이 머물던 11개의 사찰을 지휘하던 승대장이 머물던 승영으로 승대장은 전국 승병을 지휘하는 팔도도총섭을 겸임하였다고 한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로 호국불교로서 ..

절터 2013.05.13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59호)와 절터 출토 유물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주세붕 선생이 세운 소수서원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에 위치한 당간지주이다. 이 곳에 서원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숙수사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문화재이다. 서원과 마찬가지로 사찰도 대부분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에 이 곳도 사찰이었다가 어떤 사연에 의해서 절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서원을 세운 듯 한다. 소수서원이 위치한 곳은 영주 순흥지역에서도 경치가 좋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의 요지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인근 부석사 못지않게 큰 절이었던 숙수사가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부근에 출토된 많은 유물들로 볼 때 숙수사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숙수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부근 소수중학교 건립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모두 25구의 불상들이 출토되었..

강릉 굴산사지(사적448호)와 당간지주(보물86호), 통일신라 선종사찰인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사굴산 굴산사 절터

굴산사지는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굴산사는 통일신라후기 범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고려시대에는 이 지역 호족들의 지원을 받아 크게 번창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후기 선종을 크게 전파한 구산선문 사찰 중 하나이다. 범일국사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후 굴산사에서 40년동안 지내면서 불법을 공부하고 전파하였다. 구산선문은 기존 교종의 교리 중심에서 부처의 가르침이 주는 본래 의미를 전한다는 선종의 성격을 갖고 있다. 통일신라말기 왕실의 권위가 떨어지면서, 지방호족의 지원을 받아 크게 유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의상대사의 화엄십찰과 함께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불교의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굴산사는 후삼국시대 세력균형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

절터 2012.08.23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경주지역 절터에서 출토된 석조 유물 (고선사지, 영흥사지, 임천사지)

삼국시대 신라는 불교가 제일 늦게 전래되었지만, 법흥왕대에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된 이후 크게 번성하였다. 신라의 불교은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하여 불교를 통해 국민을 단합시키는 역할이 컸다다. 호국불교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황룡사 9층목탑의 건립, 사천왕사의 건립 등을 들 수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삼국의 불교문화가 융합되어 화려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신라 천년이 수도였던 경주에는 지금도 불국사를 비롯하여 여러 사찰들이 남아 있지만, 전성기에는 상당히 많은 사찰들이 국가를 비롯하여 귀족집단들이 주도하여 세워졌다. 삼국시대에 세워진 칠처가람이라 불리는 흥륜사, 담엄사, 영흥사, 분황사, 사천왕사, 황룡사, 영묘사 들이 있었으며, 삼국을 통일한 이후 화려한 불교예술을 보여주는 불국사..

절터 2012.07.19

경주 사천왕사지 (사적8호), 문무왕이 당나라를 물리치고자 낭산에 세웠던 사천왕사 절터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사적 8호로 지정된 사천왕사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처음 지은 사찰이다. 사천왕사는 679년(문무왕19)에 문무왕이 당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사천왕사가 위치한 곳은 신라인이 신성시여기던 경주 낭산 남쪽 끝 자락으로 경주에서 울산을 통해 일본과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선덕여왕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줄 것을 유언했다고 하며, 사천왕은 불교에서 수미산입구를 지키던 천왕들로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이 수미산임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고, 그 예언이 실현시켜준 사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사천왕사는 경덕왕 때 향가인‘도솔가’, ‘제망매가’를 지은 고승 월명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사천왕사 절은 없어지고 남북..

절터 2012.07.13 (2)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 (보물 909호)와 절터

남간사지는 경주시 탑동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 탄생신화가 있는 경주 나정에서 남산 북쪽편 남산신성이 있는 해목령으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한 남간부락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 절터이다. 이 절의 창건 연대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신라 애장왕때 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절터가 있었던 자리에는 남간 마을이 들어서 있어서 그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고 당시 절에서 사용한 초석이나 축대 등을 민가건물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석조가 남아 있다. 절터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사찰입구임을 알려주는 보물 909호 지정된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같은 형태와 크기로 마주 서 있는 당간지주에는 아래 위에 둥근 구멍을 뚫었고 안쪽에 +자 모양의 홈을 판 것이 특징이다. 이..

절터 2012.06.29

경주 영흥사 절터, 신라의 신성한 숲인 천경림에 세웠던 사찰인 칠처가람 중 하나

영흥사는 경주시 사정동 경주공업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신라의 사찰로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기던 숲인 천경림에 지었던 칠처가람 중 하나이다. 이 절은 최초의 비구니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삼국유사 기록에 법흥왕비가 머리를 깎고 중이되어 영흥사에 살다가 죽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법흥왕대에 있었던 사찰로 보인다.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것은 법흥왕 14년(527)으로 이차돈의 순교로 귀족들의 반발을 잠재웠기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이차돈은 신라인들이 신성시여기는 숲에 절을 지어서 귀족들이 반발했는데, 이후에 이들 천경림에 지은 숲을 칠처가람이라고 하며, 그 중 서쪽을 중요시해서 그런지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를 비롯하여 영흥사, 담엄사, 영묘사 등이 경주도심의 서쪽 형산강변에 자리잡고 있으며, 황룡사와..

절터 2012.06.26

경주 보문동사지(사적390호), 보문사지석조(보물64호)와 당간지주, 금당터가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경주시 보문동 농경지 한가운데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인 보문동사지이다. 절터에서 보문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에 보문사라는 절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문헌상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처음 건립된 연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현재 남아 있는 금당터, 동.서 목탑지 등의 건물 배치와 주춧돌, 축대 등 석제 유물 등으로 볼 때 삼국시대에 조성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절터에는 보물 64호로 지정된 물을 담는 그릇인 석조를 비롯하여 출입문 방향으로 추정되는 서쪽편에는 보물 123호로 지정된 보문리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보문동사지가 있는 경주 보문동은 경주도심에서 남동쪽으로 명활산성과 경주 낭산 사이의 들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신라를 건국한 연맹체였던 신라 6촌 중 명활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절터 2012.06.18

경주 천군동사지 (사적 82호), 보문관광단지 근처에 남아 있는 절터

경주 보문관광단지 동쪽편 입구에 있는 작은 마을인 천군동 마을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인 사적 82호로 지정된 천군동 절터이다. 현재는 보물 186호로 지정된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인 천군동 동.서삼층석탑과 주춧돌 등이 절터에 남아 있다. 문헌이나 자료에 이절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지명을 따서 천군동사지라고 부른다. 이 사찰의 가람배치는 2개의 탑을 중심으로 중문, 금당, 강당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쌍탑1금당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금당.강당.중문의 건물터가 확인되었고 출토 유물은 건축부재 외에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천군동사지가 있는 천군동 마을은 지금도 경주와 동해안 감포, 포항 등을 연결해 주는 4번국도..

절터 2012.06.16

경주 천관사지(사적 340호), 김유신장군이 천관녀를 위해 세웠다는 천관사 절터

경주시 교동에 위치한 사적 340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절터인 경주 천관사지이다. 천관사는 삼국통일에 큰 역할을 한 김유신 장군과 기생 천관의 전설이 얽혀 있는 곳으로 농경지 가운데 석탑의 기단석 등이 논 가운데 남아 있던 곳이라고 한다. 오랜기간동안 농경지로 사용된 곳이라 건물터 등을 확인할 수 없어 전체적인 사찰의 규모나 가람의 배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천관사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도당산 서쪽기슭이라고 하며 김유신이 사랑하던 기생 천관의 집이 있던 곳에 삼국통일 이후에 천관사라는 절을 세웠다고 한다. 절터는 경주 오릉 동쪽편 들판 한 가운데 있으며 북쪽으로 경주의 궁성이었던 월성 남쪽을 흐르던 남천이 흘러가고 있다. 김유신의 집터로 알려진 재매정에서 남쪽으로 500여m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

절터 2012.06.12

[부여박물관] 능산리사지 목간에 남겨진 이야기

책(冊)이라는 한자의 어원이 되는 목간은 종이가 발견되기 이전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문서로 폭 1cm, 길이 20~30cm 정도로 끈어로 묶어서 사용했는데, 지금의 책과 비슷한 크기라고 할 수있다. 목간은 춘추전국시대 이후 다양한 저서들이 적혀있는 오늘날의 책과 같은 용도로도 많이 사용되었지만, 실제로는 교역을 위한 영수증, 물품표, 교역내용의 기록한 장부 등의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는 한.중.일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지역에서 교역의 목적으로 한자를 도입하고, 이를 목간에 기록해 놓은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목재로 만들어진 목간은 물품표 등이 경제적인 목적으로 종이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동안 사용되었는데, 목재의 특성으로 우리나라에서 잘 부패되지 않는 연못, ..

지역박물관 2012.06.03

[부여박물관] 능산리사지 가람이야기, 공방지 출토 유물들

부여군 능산리 고분과 부여 나성 사이에 위치한 능산리 절터는 백제 성왕의 아들 위덕왕이 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찰로 원찰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탑1금당의 전형적인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이 사찰은 다른 사찰과는 달리 뒷편 강당과 주변 건물들이 사당으로 먼저 세워지고 그 뒤에 목탑과 금당이 지어지면서 사찰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능산리 사지 절터 뒷편에는 강당건물과 함께 공방지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있는데, 이 곳은 원래 성왕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의 부속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절을 세운 위덕왕이 죽고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그 기능이 축소되면서, 공방건물로 바뀌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굴뚝을 설치하여 동광석을 제련하고 사찰에 필요한 각종 ..

지역박물관 2012.06.02

[부여박물관] 위덕왕과 능산리사지,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백제 마지막 왕들의 무덤이 있는 능산리고분과 백제 나성 사이에 위치한 능산리사지는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된 절터이다. 백제는 사비성을 도읍으로 하던 시기에 많은 사찰들을 건립했지만 그 중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이다. 이 사찰은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에 지어졌다는 의견되 있지만, 대체로 백제 성왕의 아들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원 원찰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이 절은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1탑 1금당의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여러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중국으로 부터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를 비롯하여, 문서에 해당하는 많은 목간들, 건축자..

지역박물관 2012.06.01

부여 백제문화단지, 능산리절터에 있던 사찰을 재현해 놓은 능사

능산리사지는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소재한 백제의 마지막 왕릉이 있는 능산라고분군 옆에 있는 절터이다. 이곳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성 도성인 부여나성 바깥쪽에 자리잡고 있는 고분으로 다른 왕릉들과 마찬가지로 백제의 큰 위협이었던 신라를 비롯한 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주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능산리사지는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능사로 이 곳에서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이 출토되었다. 절은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는 1탑, 1금당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사찰의 규모는 황룡사나 익산 미륵사에 비해서 작은 편으로 선왕들의 명복을 비는 원찰 또는 능사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던 사찰이라고 할 수..

[중앙박물관 특별전] 타임갭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 탐험, 창녕 말흘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중앙박물관에서 2012년에 개최 중인 "타임캡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탐험" 특별전은 옛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고고학적인 방법론 측면에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옛사람들이 살았던 특정한 시기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유물의 특징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의 흔적들은 선사시대 이후 사람들이 촌락을 이루면서 살기 시작하면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당시 사람들이 버렸던 쓰레기 등이 모여 있는 형태인 조개무지(패총)을 비롯하여, 많은 부장품들이 묻힌 고분 등이 있다. 이번 전시에는 이런 타임캡슐을 성격을 갖는 신라의 수도 경주의 궁궐인 월성 부근 4개의 우물제사 유적과 창녕 말흘리 절터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창흥 말흘리 절터에서는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건물터와..

중앙박물관 201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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