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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에서 2012년에 개최 중인 "타임캡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탐험" 특별전은 옛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고고학적인 방법론 측면에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옛사람들이 살았던 특정한 시기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유물의 특징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의 흔적들은 선사시대 이후 사람들이 촌락을 이루면서 살기 시작하면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당시 사람들이 버렸던 쓰레기 등이 모여 있는 형태인 조개무지(패총)을 비롯하여, 많은 부장품들이 묻힌 고분 등이 있다. 이번 전시에는 이런 타임캡슐을 성격을 갖는 신라의 수도 경주의 궁궐인 월성 부근 4개의 우물제사 유적과 창녕 말흘리 절터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창흥 말흘리 절터에서는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건물터와 그와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는 곳이다. 하지만 건물터 기단 내부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수많은 기와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건물터 모서리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사용한 수많은 금동으로 만든 향로, 화로, 풍탁 등이 출토되고 있다. 대부분 불단을 장식하는 것들로 절터에 흩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모아서 솥에 담겨진 형태로 출토되었다. 문헌상으로 나타난 말흘리 절터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출토된 유물로 비추어 볼 때 통일신라시대 말기와 고려초에 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런 과정에서 한꺼번에 땅속에 유물들을 묻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절터는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 상당히 많이 남아 있으며, 삼국시대 수도인 경주와 부여 주변과 주요 교통로에 위치한 거점지역에 많이 볼 수 있다. 부처를 모시는 사찰은 대부분 오랜 기간 유지되었으며, 많은 기간 동안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타임갭슐이라고 할 수 있다.

1,200년 전 창녕 말흘리에선...
쇠솥이 발견된 유구 주변의 건물터와 그와 관련된 유물들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건물터 기단 내부에 통일신라의 수많은 기와들이 사용되었다. 특히 용무늬 암막새나 짐승얼굴 무늬 기와 등은 안압지, 황룡사터, 월성 등 통일신라시대 궁궐이나 중요 절터 등에서 출토되는 기와들과 비교할 만하다. 그러나. 어떤 건물에 사용되었던 것들인지, 당시 어떠한 사건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정확한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 다만, 통일신라 말기 전반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웠고, 이와 같은 중요 건물이나 사찰 등은 파과 및 약탈의 주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글씨가 새겨진 기와조각(Roof tiles with inscription),


짐승얼굴 무늬 기와(Roof-end tiles with beast design),


짐승얼굴무늬 수막새(Roof-end tiles with beast design),


연꽃무늬 수막새(Roof-end tiles with lotus design),


용무늬 암막새(Concave roof-end tiles with dragon design), 넝쿨무늬 암막새(Concave roof-end tiles with scroll design)


어느 이름모를 절터가 품은 보물단지
창녕 북동부 비슬산지에서 뻗어 나온 창녕의 진사, 화왕산. 그 남서쪽 능선에 말흘리 유적이 위치한다. 3개의 건물터 중 1호 건물터의 남서쪽 모서리에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누가, 왜, 여기에 절에서 사용하던 귀중한 보물들을 묻었을까? 보잘것 없는 쇠조각들로 교모히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그 밑에 보물들을 숨겨 놓은 것을 보면 제사나 의례의 목적이 있어 묻어 놓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쟁이 일어났던 것일까?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화재가 있었던 건 아닐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보물을 감추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어떤 급박한 사정이 있었던 듯 싶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와 부처님의 참된 세상을 펼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왜 쇠솥에 무처님의 물건을 넣어 두었을까? 작은 구덩이 속에서 확인된 쇠솥에는 갖가지 금동제품들이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겹겹히 채워놓아,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심케 하였다. 이 구덩이 안에서만 500여 점의 금동제품들이 출토되었느네, 대부분 불단을 장식하는 장엄구이거나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도구들이어서 절에서 사용된 것들이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나 한꺼번에 땅 속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솥(Cauldron)


꽃모양 장식판(Ornmental plates)


문고리(Door handle), 문고리장식(Ornaments with beast design)


자물쇠(Lock witn dragon design)


오각형 장식판(Ornamental plates)


향기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다
향香은 고온다습한 인도에서 악취를 없애고 해충을 쫓기 위해 사용된 것이지만 잡귀나 잡념까지도 제거해 준다하여 점차 수행자드이 지니는 필수품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불교의 성립과 함께 향은 부처님 앞에 올리는 중요한 공양물로 활용되었는데, 경전에는 향을 부처님의 사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향을 피워 흩어지는 향기는 공양자와 부처님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며, 향을 불살라 연기를 피우는 그릇인 향로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공양구였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와 함께 본격적으로 불교의 의식용향로가 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중앙박물관>


화로(Buners). 사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양구는 향을 피우는 용기로 불교에서 전래된 문화이기는 하지만, 사용하는 용기들은 대부분 청동기시대 이래로 중국과 한반도에서 사용한 솥을 비롯한 의기들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이는 중국을 거치면서 들어온 외래문화와 동북아시아 문화가 혼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손잡이향로(Incense buner with handle), 손잡이향로는 불.보살을 예배할 때 움직이며 사용하기 편하게 손잡이를 달아 놓은 것이다. 손잡이향로는 손잡이 끝의 형태와 무게를 고르게 하기 위해 놓은 추의 모습에 따라 작미형향로, 사자진병향로, 병진병향로로 분류할 수 있으며, 직미형향로가 가장 먼저 출현한다. 군위 인각사 출토품과 리움 소장품은 손잡이끝에 사자모양의 추가 놓여 있다. 반면 말흘리출토품은 꽃봉우리모양의 추가 놓여 있어 유일하다. <출처:중앙박물관>


사자모양다리향로(Incense buner with legs in the shape of lion), 불단에 놓고 사용하는 향로의 일종으로 바닥이 편평한 노신에 사자얼굴과 발모양을 장식한 다리가 3개 부착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실물로 남아 있는 작품은 익산 미륵사터와 말흘리 출토품뿐이지만, 흥법사터 염거화상탑, 실상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청량사 석등 등에 조각된 다족향로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수각향로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사자모양다리향로(Incense buner with legs in the shape of lion), 사자얼굴과 발모양을 장식한 아리 아래에 둥글고 높이가 낮은 받침이 부착된 형태이다. 사자다리의 접지면에는 올기가 있어 받침과 연결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사자 얼굴장식 뒤쪽에는 턱이 있어 향로의 몸체를 받치도록 고안된 형태로 추정된다. 이와같은 형식의 향로는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의 대좌에서도 확인된다. 받침형 수각향로는 밖으로 흘러 나오는 재를 받치는데 용이했을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시루솥(Three-legged cauldron)

부처님의 세상을 종소리로 열다
풍탁은 일반적으로 사찰 건물으 추녀밑이나 석탑의 지붕돌 아래에 매달아 장식했던 장엄구이다. 풍탁안에 매달린 얇은 풍탁판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맑은 소리는 중생들을 깨우치는 진리의 소리를 상징하며 경내의 분위시를 엄숙하게 만든다. 풍탁은 또한 건축물의 부재뿐만 아니라 법당 내부의 장엄구로서도 널리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감은사터 동탑사리기의 천개장식에 매달린 풍탁이나 일본 정창원의 번에 매다는 장식으로 사용된 금동진탁은 이를 증명해 주는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은 상징적 의장은 법당 내부의 부처를 모신 불단 장엄에서 차용해 왔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풍탁판(Wind bell plates), 창녕 말흘리 유적에서는 모두 198점의 풍탁판이 출토되었다. 풍탁보다도 훨씬 많은 수량이면서 모두 도금되어 있어서 풍탁판의 역할이외에도 다른 용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윗부분 고리의 아래부분 형태에 따라 심엽형, 심화형의 두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풍탁판 중에는 다른 것에 비해 크기가 3배 가까이 큰 것도 확인되는데, 대형 풍탁들이 여타의 것들과는 다른 곳을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풍탁판 걸이쇠(Joint tools of wind bell plate)


풍탁(Wind bells). 쇠솥과 구덩이 사이의 빈공간에 가로 눕혀져 있던 풍탁은 종의 모양과 비슷하며, 몸체.고리.연결구.풍탁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체를 주조한 후 미리 마련해 둔 구멍에 고리를 통과시켜 고정하였다. 고리가 마모되었을 경우에는 천판과 어깨부분 사이에 구멍을 뚫어 쇠봉이나 구리봉을 통과시켰다. <출처:중앙박물관>


풍탁과 고리(Knobs of wind bells)

찬란한 빛으로 부처님의 아름다운 감화를 일으키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불국정토는 온갖 보배로 둘러싸이고 아름다운 빛이 퍼져 나간다. 창녕 말흘리 유적에서는 500여 점에 달하는 금속공예품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불전을 장식했을 장엄구로 추정되는데, 그 가운데 상당량을 차지하는 것은 맞뚫어 새긴 금동장식판이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장식구와 자물쇠, 문고리, 마구리장식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찬란한 금빛을 발하고 있어 중생들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에 감화를 일으켜 부처님이 보여주신 진리의 길을 따르도록 권장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부처무늬 장식판(Ornamental plate with seated buddha design)


부처무늬 장식판(Ornamental plate with seated buddha design), 방형장식판(Ornamental plates), 나뭇잎 모양 장식구(Leaf-shaped ornaments),
 

원형장식판(Ornamental plates), 삼각형 장식판(Ornamental plates), 장식판(Ornamental plate)

장식판은 어디에 사용되었던 것일까요?
쇠솥과 다양한 모양의 장식판에는 부처무늬와 넝쿨무늬가 맞뚫려있다. 감은사나 송림사 사리기의 천개, 일본 법륭사 금당의 천개 등의 장식으로 보아 말흘리의 장식판도 천개를 장식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번이나 사리기 천개장식은 보통 금속판으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말흘리 장식판들에는 직물 흔적이 남아 있어 직물에 부착해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직물에 금속판이나 방울 등으로 장식했던 예로는 일본 법륭사 소장 번의 수식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직물이 붙어 있는 장식판을 찾아보자
장식판에 붙어 있는 직물의 종류는 크게 마직물과 견직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마직물에는 대마(삼베)와 저마(모시)가 있고 견직물(비단)에는 평견, 초, 금이 있다. 최소한 3겹 이상 직물을 겹치고 그 위에 장식판을 덧댄 것으로 생각된다. 직물이 붙어 있는 모든 장식판에는 금이 확인되는데, 금은 화려한 무늬가 있는 정교한 고급비단이다. 따라서 장식판 아래 보이는 비단인 금을 사용하고, 보이지 않은 안쪽에는 싼 직물을 끼워 넣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장방형 장식판, 오각형 장식판(Ornamental plates)


장식판 달린 고리(Joint tools with ornamental plate), 못(Nails), 고리달린 못(Joint tools), 모서리장식구(Ornament of corner), 장식띠(Ornamental Girdle), 장식판 달린 방울(Bells with ornmental plate),


공(balls), 방울(bells),


장식구(Ornments)

이와 같은 천개장식은 어디에 붙어 있던 것일까?
출토유물의 크기나 수량 등 규모면에서 사리기 장식은 아니며, 사리기와 같은 장식적 의장이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전각모양의 불감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함께 출토된 자물쇠나 문고리, 마구리 장식 등은 '감龕'과 같은 구조물의 부속구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불감 자료는 극히 희소하며, 더구나 통일신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자료는 없다. <출처:중앙박물관>

천개는 어디에 사용하는 것일까?
천개는 햇빛이나 비를 막기 위한 우산에서 출발하여 점차 권력자가 앉는 자리를 꾸며주는 권위의 상징물이다. 특히 불교가 수용된 이후에는 불교의 최고 존재인 불상 위에 올려져 부처의 존귀함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처럼 불전 안을 아름답게 장엄했을 천개는 현재 전하는 것은 없으나, 백제시대 유물로 알려진 김제 대목리 출토 부처나 경주 안압지 출토 화불의 머리 위에 장식된 천개, 그리고 전각 모양의 송림사와 감은사터 동탑 사리기의 천개장식을 통해서 불교 수용 이후 널리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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