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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103

[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 고려, 조선시대 금동불상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화려한 불교미술에 비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그 표현 방식의 섬세함이나 예술적 완성도에서는 크게 뒤떨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민간의 생동감 넘치는 투박하고 거대한 석불들과 철불상들이 전국 곳곳에 많이 만들어졌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완성도가 높았던 석탑의 제작은 크게 줄어들고, 고승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탑이 전국적으로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경향으로는 원나라 침입이후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경천사지석탑 등과 라마풍의 불상들도 제작되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유교국가로 불교 미술은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고려시대를 답습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1. 고려시대 불상 고려시대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비해서 불상의 세부 표현 기법이나 기술의 크게 떨어져서 지금의 기준을 봐서..

중앙박물관 2012.08.27

[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 통일신라 금동불상,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국보 80호)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는 석굴암 본존불과 불국사삼층석탑으로 대표하는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시기이다. 삼국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특징을 보여주었던데 비해 통일신라만이 고유한 양식이 많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불상의 제작수법에서 세련되면서도 세밀하고 자연스러운 면이 크게 좋아 졌다고 하며, 후대인 고려시대 불상에 비해서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세련된 수법을 보여준다. 반면에 고구려 불상에서 보여주었던 생동감 넘치고, 힘있는 모습은 다소 줄어들면서 정형화된 느낌을 주는 측면도 약간 있어 보인다. 이 시기에는 비로자나불이나 약사불이 많이 만들어졌고, 지방 호족을 중심으로 철불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통일신라 금동불상 통일신라 불상은 삼국시대에 축적된 기술과 중국 당나..

중앙박물관 2012.08.26 (2)

[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 삼국시대 금동불상, 반가사유상 (국보78,83호)

불교가 고구려 소수림왕(372년)때 처음 우리나라에 전해진 이래로 국가와 민간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은 원래 스투파라 불리는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이 중심이었으며, 점차로 서방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불교 이래로 부처와 보살의 모습을 구체화한 불상이 신앙의 중심이 되었으며, 사찰에서도 탑보다는 불상을 모신 금당이 중요해졌다. 삼국시대에도 많은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황룡사 장륙전의 거대한 불상처럼 금당에 모셔졌던 불상은 많이 남아 있지 않는 반면에 개인들이 소장했던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상들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중 국보 78호, 83호로 지정된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불상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불상이라고 할 ..

중앙박물관 2012.08.22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 (보물 360호), 정형화된 통일신라 탑비

새롭게 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넓은 로비 공간을 경천사10층석탑과 함께 지키고 있는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이다. 제천의 월광사터에 있던 탑비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옮겨 놓아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비로 머리.몸.받침이 온전히 남아 있고, 비례에 있어서 안정감이 있는 탑비로 우리나라 문화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어서 박물관 중앙 로비에 전시된 것으로 보인다. 이탑비는 통일신라 후기 승려인 원랑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로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리돌을 얹어 통일신라 후기의 정형화된 탑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랑선사는 당나라에 11년간 유학한 후 월광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 탑비는 헌광왕이 '대보선광'이라는 탑명을 내리고 글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글..

이천 안흥사지 오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고 있는 안흥사지 오층석탑이다. 경기도 이천의 안흥사터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 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서 석탑 구성 요소의 비례가 표준적인 석탑의 비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아서 조형미는 있어 보인다.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2층의 기단부는 1층은 낮고 2층은 높게 되어 있으며 모서리에 기둥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은 높게, 그 위로는 낮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조각수법이 많이 남아 있는 석탑이다. 안흥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말이나 고려초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석탑의 크기도 크고, 구성요소간의 비율도 안정적이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보물 358호), 석탑 형태로 만든 승려의 사리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보물 358호로 지정된 영전사지 보제존자탑이다. 이 사리탑은 고려말 승려인 보제존자의 사리탑으로 현재도 보제존자의 사리탑은 여주 신륵사 뒷동산에 석종형태로 만들어져 있지만, 특히하게 그의 제자들이 석탑형태로 사리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원주 영전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옮겼다고 한다. 고려말에 통일신라시대 양식이 두개의 탑 형식으로 세운 것도 특이하며, 아마도 우리나라 남아 있는 제대로 된 삼층석탑 중에서 가장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기단과 탑신의 구성요소들의 비율의 통일신라시대 양식과 비슷해서 얼핏 보기에도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옹선사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김천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국보 99호),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했다는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국보 99호로 지정된 갈항사 삼층석탑이다. 경북 김천시 남면에 소재한 갈항사절터에 있던 두개의 탑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처했던 것을 경복궁 마당으로 옮겼다가 현재 중앙박물관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진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네모서리와 각면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 몸달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동탑의 기단부에 통일신라시대 영묘사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글로 새겨져 있다. 이 탑에 모셔졌던 사리병과 법어 불경이 발견되었다. 이 석탑은 장식이 없고 약간은 정형화된듯하지만 석탑 각 부분의 비례가 뛰어나고, 당시의 석탑 양식이 잘 드러나 있어서 문화재로..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국보 100호), 고려 특유의 석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 중인 석탑 중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국보 100호로 지정된 문화재인 남계원칠층석탑이다. 원래는 경기도 개성 부근에 있던 석탑으로 탑신만이 경북궁에 옮겨졌다가 후에 기단부도 발굴되어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세운 것으로 전체적인 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화된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세부적으로 변화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 석탑에 비해서 1층기단은 약간 높아졌고, 2층 기단은 약간 낮아져 있다.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이 삼층석탑을 벗어나 고려시대 특유의 석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이라고 한다. 남계원칠층석탑은 2층의 기단부와 7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라석탑의 양식을 가지면서도, 고려 특유의 석탑 양식으로 ..

[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왕릉 석물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인 왕릉 석물들이다. 정원을 꾸미고 있는 장식들처럼 보이는 이 석물들은 아마도 개발등으로 인해 주인을 잃어 이 곳 야외 정원에 전시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왕릉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석물들을 종류별로 전시해 놓고 있다. 조선시대 왕릉이나 왕실의 무덤, 또는 개인의 무덤을 장식하던 석물들은 그 조각수법이 뛰어나지 못한편으로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또한 왕릉이나 이들 무덤들은 조선시대부터 철저하게 관리되어 오늘날까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서 박물관 등에서는 전시할 유물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도시화에 따른 토지개발 등으로 나온 석물들이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녕군 석곽, 1453년. 이 석곽은 경기도 양주..

중앙박물관 2012.07.23

[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 석불 입상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석불 입상이다. 왕릉을 구성하던 석물들과 부처상인 석불 입상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장면이다. 깊은 산중에 있어야 할 석불입상이 어떤 경유로 해서 이 곳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자연석을 깍아서 만든 것 같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석불입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석불입상들은 대체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조각수법의 섬세함이나 조형미 등이 뛰어난 편은 아니며, 단순하면서도 간략한 서민적인 모습의 불상이라 할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석불입상. 신체의 표현이나 옷주름 등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 정형화된 형태를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로 보이는 석불입상. 2012년에 본 모습 원래는 각기 다른 장소에 있던 석불입상이 박물관 정원에서 왕릉을 지키..

[중앙박물관] 보신각 종(보물 2호), 오랫동안 제야의 종소리를 들려주던 범종

오랜 기간동안 서울의 중심 종로 보신각에 걸려 있으면서, 전국민에게 새해를 맞는 기쁨을 알려주던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던 보신각 종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을 새로운 안식처로 삼고 긴 휴식을 하고 있다. 이 보신각종은 전형적인 조선초기 사찰의 종이었다가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걸려서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종이라 할 수 있으며, 서울시민과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 왔던 문화재이다. 보신각 종은 조선 세조때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는 신덕왕후 정릉 안에 있던 정릉사에 있었으나, 원각사로 옮겨졌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종루에서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해 왔다. 높이 3.18m로 음통은 없고 2마리의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한다. 몸통에는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적혀있다.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종의 양..

나주 서성문 안 석등 (보물 364호), 고려초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석등

보물 364호로 지정된 이 석등은 원래 나주읍 서문 안에 있던 것을 1929년에 경복궁 정원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삼국시대 이래로 정형화된 8각형을 하고 있는 석등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등이다. 복원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그 구조와 조각수법이 우수한편으로 전형적인 석등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 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석등은 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세겨져 있으며, 받침돌은 8각형으로 연꽃무늬를 새겼다. 직선적인 형태를 하고 있는 8각형의 간주석에는 각면에 테를 둘렀으며, 그 안에 글씨를 새겨 놓고 있다. 화개석과 지붕돌, 상륜부는 없어졌던 것을 석등을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석등 받침에 고려 선종 10년(1093)에 이 석등을 세웠음을 기록해 놓..

개성 현화사 석등

국립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현화사 석등은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는 아니지만, 석등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특이한 외형을 하고 있다. 현화사는 개성에 있었던 사찰인데, 석등의 규모로 보아서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는 높지 않아 보이고, 투박한 느낌을 준다. 석등은 불교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비춰줌으로서 중생을 착한길로 인도하다는 의미를 갖는 공양물로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불상을 모신 불전 앞을 밝히는 석조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석등은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익산 미륵사지에 백제에서 만들었던 석등의 하대석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 이후 석등은 기본적으로 8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많았으며, 고려시대 이후 4각형 석등이 많이 만들..

양평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보물 361호)

국립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보리사터에서 발견된 고려 초 승려인 대경대사 탑비이다. 머릿돌에 새겨진 구름과 용의 무늬가 인상적으로 중국에서 많이 본듯한 느낌을 준다. 받침돌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는데, 비석의 크기에 비해서 작아 보인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에 활동한 성주산문의 대경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비로 양평 보리사 절터에서 발견되어 경북궁으로 옮겨졌다고 현재는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비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북받침돌과 비몸, 머리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북받침돌에 비해서 용으로 장식되어 있는 머리돌을 크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고 있다. 머릿돌에 새겨진 용무늬 장식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매우 힘차게 조각되어 있다. 대경대사는 처음에는 교..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즈베키스탄 자르쿠탄 유적 (기원전 20~10세기)

우즈베키스탄은 과거 동서양 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 중심지였던 중앙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해서 아랄해로 흘러가는 강들을 따라서 발달된 오아시스에서 농경이 발달하였다. 그리스 알렉산드르대제의 동방원정의 끝 지점이 박트르를 비롯하여, 몽골의 칭키스칸이 서역 원정을 떠났을 때도 그 첫번째 목적지가 되었던 사마르칸트가 있었던 지역이다. 이 곳은 기원전 20세기부터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시팔리테파, 자르쿠탄, 추스트 등에서 토기와 청동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우즈베키스탄 남부 수르한다리아 동부에 위치한 자르쿠탄은 그 규모는 대략 100헥타르에 이른다고 하며, 초기 형태의 신전과 성채를 쌓기 시작했고, 벽돌의 사용, 요새화, 원시적 관개농경, 가축의 사육..

중앙박물관 2012.05.18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즈베키스탄, 동서문화의 융합 (안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에서 쿠샨왕조까지)

우즈베키스탄 남쪽과 아프카니스탄 북쪽은 알렉산드로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 그리스박트리아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이후에 한무제가 실크로들 개척하게 된 이유가 된 서역의 월지국이 흉노의 압력을 피해서 이 곳으로 들어오면서 쿠샨조를 세우게 된다. 이런한 까닭에 이 지역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문화가 중앙아시아 지역 문화와 융합된 형태의 모습을 보이게 되며 초기 불교가 서방문화와 융합한 간다라지역과 더불어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 곳에서는 이런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융합된 형태의 유물들이 다수 발굴되고 있으며, 초기의 원형에 가까운 유물들과 서방문화와 융합된 불교 유적들이 여러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중 마치 그리스 조각품을 보는 듯한 불상들과 그리스풍의 건축물들이 인상적이다. 주요 유적지로는 박트리..

중앙박물관 2012.05.18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즈베키스탄, 소그드와 도시 문화의 번영 (아프라시압)

4세기에서 8세기까지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쿠샨.사사를 비롯하여 여러 왕국이 흥망을 거듭했지만, 이 지역은 왕국의 흥망과는 별개를 지역별로 작은 도시국가 형태인 소왕국들이 존재해 왔다고 한다. 많이 들어본 이름인 사마르칸트, 호라즘, 페르가나 등이 있었는데 그 중 당시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 무역을 중개하면서 많은 부를 축적한 소그드 상인의 고향인 사마르칸드 왕국이 제일 번성했다고 한다. 사마르칸트 왕구의 도성인 아프라시압은 5~6세기에 소그드의 중심으로 크게 번성하였다고, 몽골 칭기즈칸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도시이다. 도성내에는 궁전, 주거지, 종교유적이 발견되었으며 고구려(?신라) 사신으로 추정되는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로를 차고 있는 사람이 그려진 아프라시압벽화가 이 곳에서 발견되..

중앙박물관 2012.05.18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즈베키스탄 19~20세기 전통 공예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에 있는 공화국으로 고대 동.서양 문명 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의 중요한 요지에 있는 국가이다. 현재 우리생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불교의 전래를 비롯하여 많은 서역의 문물이 이 곳을 통해서 동아시아로 전해졌다고 한다. 현재 수도는 타슈켄트이고, 국민 대부분은 이슬람을 믿고 있는 무슬림 국가라 할 수 있다. 이 곳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사막의 무슬림들이 사는 방식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박물관에서는 최근의 전통공예품을 전시해 놓고 있다. 얼마전 찾아 갔었던 중국 서부의 투루판 지역에 있는 위구르인 주택 내부의 모습과 거의 비슷해 보였다. 아마도 비슷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즈베키스탄의 일반가정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전시해..

중앙박물관 2012.05.18 (2)

[중앙박물관 인도.동남아실] 인도 간다라 미술, 동.서문화의 융합

간다라 지역은 오늘날 아프카니스탄 지역을 일컫는 말로 중동,인도,중앙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오랜 기간동안 다양한 문화가 이 지역에 도입되었다. 얼마전 인류문화유산이 파괴되었고, 미국과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드인 탈레반이 지금 근거지로 삼고 있는 지역이기도 한다. 이 간다라 지역은 불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한 곳이며, 불교에 외래 종교인 이집트, 그리스 등의 종교와 문화가 도입되어 융합되게 만든 중요한 지역 중 하나이다. 불교에서 신앙의 중심이 초기에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스투파(탑)에서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으로 변화하게 만든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다수의 불상을 비롯하여 서방 문화의 영향을 받은 조각상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인류의 문화에 정신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지역이라고..

중앙박물관 2012.05.18

[중앙박물관 인도.동남아실] 인도의 힌두교, 자이나교 예술

인도는 현재의 인도공화국 뿐만 아니라, 인도아대륙에 속해 있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부탄, 네팔, 스리랑카를 통칭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인도양과 북족의 산맥으로 다른지역과 분리되는 지역 특유의 문화적, 역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인도아대륙은 인구가 세계의 1/4에 해당하는 10억이 넘고, 면적 또한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 역사적 전통이나 종족,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중국처럼 하나의 세계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넓은 지역이다. 인도는 크게 남쪽의 기존 토착민인 드라비다계와 북쪽의 아리안계로 분류할 수 있지만, 수천년의 역사속에서 크게 뒤섞여 있고, 오랜 세월동안 힌두교, 불교, 시크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발생했다. 중앙박물관에는 많지는 않지만 인도의 종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

중앙박물관 201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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