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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 통일신라 금동불상,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국보 80호)

younghwan 2012. 8. 2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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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는 석굴암 본존불과 불국사삼층석탑으로 대표하는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시기이다. 삼국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특징을 보여주었던데 비해 통일신라만이 고유한 양식이 많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불상의 제작수법에서 세련되면서도 세밀하고 자연스러운 면이 크게 좋아 졌다고 하며, 후대인 고려시대 불상에 비해서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세련된 수법을 보여준다.

 반면에 고구려 불상에서 보여주었던 생동감 넘치고, 힘있는 모습은 다소 줄어들면서 정형화된 느낌을 주는 측면도 약간 있어 보인다. 이 시기에는 비로자나불이나 약사불이 많이 만들어졌고, 지방 호족을 중심으로 철불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통일신라 금동불상
일신라 불상은 삼국시대에 축적된 기술과 중국 당나라의 불상 양식을 기반으로 세련되고 사실적인 모습을 띤다. 이전에 비해 얼굴 표정은 훨씬 섬세해졌고 신체는 알맞은 비례를 보이며 몸을 감싸는 옷자락은 얇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이같은 새로운 표현은 8세기 중엽 석굴암 조각에서 완성되었다. 통일신라 후기에는 중국의 영향이 약해지면서 통일신라만의 독특한 경향이 부각되었다. 이 시기에는 항마촉지인의 손갖춤을 한 불상, 약사불, 비로자나불을 많이 만들었고, 철불도 만들기 시작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국보 80호, 경주 황복사 터 삼층석탑 출토, 692년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뒷편)

경주구황리금제여래좌상(국보 제79호)과 함께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에 안치된 사리함 속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전체 높이 14㎝의 순금으로 만든 불상이며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갸름한 얼굴은 양감이 있고 자비롭다.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콧날은 날카롭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다. 약간 좁은 어깨에는 두껍게 표현된 옷을 걸치고 있는데, 앞면에는 U자형의 옷주름을 새기고 있다. 치마는 발목 부분에서 양쪽으로 약간 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삼국시대의 불상 양식이 아직 남아 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옷자락을 잡고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머리 뒤에 원형으로 표현하였는데, 불꽃무늬에 둘러싸여 전체적으로 보주형(寶珠形)을 띤다. 원 안의 연꽃무늬를 중심으로 빛이 뻗어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장자리의 불꽃무늬는 섬세하게 뚫을새김하였다. 대좌는 따로 만들어 끼운 것으로 12각의 받침 위에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새겼다. 머리와 신체의 적당한 비례, 옷주름의 형태 등을 볼 때, 삼국시대 후기의 불상에서 좀 더 발전한 통일신라 초기 새로운 양식의 불상으로 보인다. 사리함에 새겨진 글을 통해 692년에 탑을 건립할 때 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만든 연대가 거의 확실하여 통일신라시대 불상 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안압지출토 금동판 보살입상(경주 안압지, 7세기말~8세기초, 보물 1475호),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불상으로 밀납을 이용해서 주조한 것이라고 한다.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만든 이 조각상은 당시 중국,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던 조각의 양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뒷면을 보면 마치 금동판을 압축해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7~8세기에 걸쳐 유행한 압출불과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밀랍을 이용하여 주조한 것이 이 판불의 특징이다. 섬세함과 화려함이 결합된 이와 같은 보살의 모습은 동시기 중국 당나라 보살상에서도 볼 수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안압지 출토의 삼존불상 등 판불상 10점은 조각수법이 우수하고 상들의 표현이 사실적이며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양식적으로는 7세기 말 통일신라와 중국, 일본을 포함한 국제적인 조각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도상이나 양식면에서 일본 법륭사 헌납보물에 있는 판불들이나 법륭사 금당 서벽 아미타정토의 본존불상과도 비교된다. 둥글고 통통한 얼굴과 자연스러운 옷주름 처리에 보이는 조각의 사실적인 표현은 중국 당(唐)시대 전성기 불상양식을 반영하면서도 7세기 후반 통일신라 불교조각의 뛰어난 표현력을 잘 대변해준다. 이 10점의 상들은 하나의 삼존불상과 4보살상이 한 세트로 두 종류의 소형목제 불감과 같은 구조물에 부착되어 예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조기법 및 기량이 뛰어난 10점의 안압지 출토 판불상들은 7세기 말 통일신라 초기에 새로이 유입되는 국제적인 조각양식을 반영하는 중요한 예들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당시 한 · 중 · 일 불교조각의 양식비교 및 전파과정과 영향관계를 파악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경북 영덕, 8세기).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중국 둔황의 상징인 비천상의 모습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불상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천은 천상 세계를 아름답게 하는 천인 가운데 하나다. 주로 불상의 광배나 석탑 긴단에 돋을 새김으로 장식된다. 입체적으로 표현된 다른 예는 감은사에서 발견된 사리기에서 볼 수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금동불입상, 금동불좌상, 통일신라


금동보살입상, 통일신라


금동 약사불 입상(8세기). 통일신라 전기인 8세기에 만들어진 약사불 입상으로 세밀한 옷주름이 돋보인다.



금동여래약사 입상 (8세기, 보물 328호). 보존상태가 양호한 금동불상으로 귀를 크게 묘사하고 있으며 다른 약사불과는 달리 약항아리가 남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높이 29㎝의 자그마한 금동불로,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없어졌지만 비교적 잘 보존된 약사여래입상이다. 약사여래는 모든 중생의 질병을 구제해준다는 의미를 지닌 부처로 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특징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고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풍만한 얼굴은 미소없이 근엄한 인상이며 눈· 코·입의 선이 명확하고 치밀하여 세련된 조각미가 느껴진다. 두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게 표현되었고,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지그재그형 옷주름과 U자형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당당하고 건장한 신체는 두껍게 축 늘어진 옷으로 인해 다소 둔중해진 듯 하다. 오른손은 허리 아래로 내려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를 맞대고 있고, 왼손에는 약항아리를 들고 있다. 대좌는 없지만 불상을 대좌에 꽂았던 뾰족한 촉이 두 발 밑에 하나씩 남아 있으며, 불상 뒷면에는 주조할 때 뚫은 구멍 자국이 남아 있다. 높다란 머리묶음과 얼굴 표정 등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비슷하여 8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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