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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회화는 불교 교리를 표현한 그림으로 우리나라 회화에서 오래된 분야 중 하나이다. 보통 불화라고 불리는 이들 그림들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일본 호류사 벽화를 그린 '담징', 황룡사 금당의 늙은 소나무를 그린 '솔거' 등 그 이름을 떨친 화가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의 다양한 석탑, 고분 벽화 등으로 유추해 볼 때 우리나라 회화 수준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생각되며, 불교가 국가의 중심이었던 사회였기때문에 특히 불화의 수준도 높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산수화, 풍속화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회화 작품들은 많이 남아 있지만, 조선시대 이전의 회화 작품으로는 전국의 사찰에 남아 있는 여러 불화들만이 그 이전 우리나라 회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된 수준높은 불화들은 대부분 전국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끼 떄문에  중앙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 회화의 한 분야로서 불화를 전시하고 있지만, 불화를 이해하는 수준의 교육적인 목적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이 작품들이 우리나라 불화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힘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더라도 그 전시의 수준이 낮다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불화에 대해서 체계적인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불교회화
불교회화는 불교의 교리와 가르침을 표현한 그림이다. 좁은 의미로는 법당에 걸어놓고 예배하기 위한 부처와 보살 그림을 일컫지만, 경전의 내용을 설명적으로 나타낸 그림과 법당의 내외부를 장식하는 그림도 넓은 의미에서 불화라고 할 수 있다. 부처와 보살, 나한 또는 여러 신을 그린 그림은 예배용 불화에 해당한다. 그들은 혼자 표현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많은 인물이 함께 나타난다.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여러 보살과 인물을 표현한 영산회상도, 수행자의 모습을 그린 나한도,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을 묘사한 신중도 등이 있다. 그 밖에 부처의 전생 이야기나 일대기를 그린 불화, 경전의 내용을 묘사한 사경변상도는 어려운 불교 교리를 그림으로 나타내 쉽게 전달해 준다. 또한 법당을 엄숙하고 위엄 있는 예배 공간으로 만드는 용이나 연꽃 등의 장식 그림도 오늘날 불화로 감상하기에 손색이 없다. <출처:중앙박물관>


감로를 베풀어 아귀를 구해냄, 1648년, 삼베에 색, 부석사.

감로란 '단 이슬'이란 뜻으로, 부처가 내리는 천상의 음료이다. 화면 아래에는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영혼의 전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위에는 일곱 부처가 감로를 베풀어 이 영혼들을 구제하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가운데에는 영혼의 극락천도를 비는 의식 장면과 음식을 차린 단을 그렸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회화의 전개
불교가 들어온 4세기 이후 삼국은 많은 절을 지었다. 이에 따라 불교회화도 많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매우 드물다. 5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고구려 무덤벽화에는 부처에게 예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절에서도 이와 비슷한 불화가 걸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화엄경 그림>은 신라의 연기법사가 발원한 사경의 표지그림으로, 신라시대 불화의 높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솔거가 황룡상 금당에 그렸다는 늙은 소나무 벽화도 생동감 있고 우아한 모습에 채색을 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불교가 국가 종교였던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귀족을 위한 절이 수도인 개경에만도 수십 개가 있었다고 한다. 절 내부에는 수많은 불화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화려한 색채로 귀족적인 기풍을 잘 표현한 수월관음도는 고려시대 불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출처:중앙박물관>

법당에 거는 불화
절의 법당에 거는 불화는 앞에 놓인 불상을 보조하여 불교의 교리를 설명한다. 대웅전과 대적광전은 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법당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그린 그림을 건다. 영취산은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에 있는 산으로,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강의한 곳이다. 영취산에서의 설법은 부처의 가르침 중 뛰어난 것으로 이상적인 설법 모임을 의미하며 그 광경이 빈번하게 그려졌다. 세 폭의 불화를 거는 경우에는 석가모니불 양쪽으로 설법하는 약사불을 그린 그림과 설법하는 아미타불을 그린 그림을 건다. '큰 빛'이라는 의미의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봉안한 법당으로 부처의 세가지 모습을 의미하는, 설법하는 세 부처를 그린 그림을 건다. 중앙에 진라, 곧 빛을 의미하는 법신 비로자나불을 두고 왼쪽에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었음을 상징하는 보신 노사나불, 오른쪽에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난 화신 석가모니불의 설법 장면을 그린 불화를 건다. 이러한 불화에는 예배의 대상이 되는 부처를 중심으로 설법회에 참석한 보살과 제자, 사천왕과 천신 등 여러 인물을 표현한다. 부처와 보살이 지닌 특정한 물건, 손갖춤 또는 함께 그려진 인물을 통해 불화의 종류와 불화에 표현된 교리를 이해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설법하는 약사불, 1828년, 비단에 색, 중흥사

약사불의 세계인 유리광정토에서 약사불이 설법하는 장면이다. 약사불은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는 부처이다.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으며, 해와 달을 상징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함께 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 1828년, 비단에 색, 중흥사

극락은 고통이 없고 즐거움만이 가득한 땅이란 의미로, 사람들이 가장 태어나고 싶은 정토이다.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 아래에 흰 천의를 걸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서 있다.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신겸을 비롯한 7명의 화승이 이 그림을 그렸다.<출처:중앙박물관>


제석과 여러신, 조선, 비단에 색. 불교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을 그린 불화이다.

불교에 유입된 신 중 천신의 우두머리인 제석천과 여러 신을 그린 불화이다. 제석천을 중앙에 두고 악기를 연주하는 천상의 인물을 주변에 배치하였다. 구름이 피어오르는 화면 아래에는 용왕을 중심으로 갑옷을 입고 무기를 지닌 무장신이 있다.<출처:중앙박물관>

불법을 지키는 여러신
여러 신을 의미하는 신중은 부처나 보살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불교의 신들을 말한다. 이들은 석가모니불 이전부터 있었던 인도의 토속신으로, 부처의 자비심에 감화되어 불교에 귀의하였다. 이 신들은 본래 부처와 경전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으나, 점차 국가를 수호하거나 재앙을 막고 복을 주는 신이 되었다. 불교가 전파된 지역의 신들이 포함되면서 신의 종류도 늘어났다. 여러 신의 그림에는 대체로 상단에 하늘의 신을, 하단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무장신을 그린다. 인도 힌두고의 고대 신인 브라마와 안드라는 불교에서 범천, 제석천이라는 이름으로 하늘 신의 우두머라가 되었다. 무장신의 으뜸을 차지한느 이는 위태천이다. 그는 머리에 깃털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으며 인도 신화에 등장한는 용맹스러운 신, 스칸다에 기원을 두고 있다.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사천왕과 그 무리도 인도에서 유래한 신이다. 이 밖에 한국의 민간신앙에서 유래한 산신, 부엌신도 여러 신을 그린 불화에 등장한다.<출처:중앙박물관>


지옥의 저승사자, 조선후기, 비단에 색. 불교에서 말하는 4명의 저승사자 중 태어난 년을 다스리는 연직사자와 태어난 달을 다스리는 월직사자.

사람이 죽었을 때 염라대왕을 비롯한 지옥 왕들이 파견하는 사자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태어난 해, 월, 일, 시를 각각 다스리는 네 명의 사자가 있다고 한다. 그 중 사람이 태어난 년을 다스리는 사자가 연직사자이다. 담채계열의 밝은 색조로 그려졌는데, 두 뺨과 이마에 가해진 분홍 선염은 먼 길을 달려온 사자의 인상을 전해준다. <출처:중앙박물관>

명부를 그린 불화
명부란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머물러야 하는 세계이다. 그곳에서 죽은 이는 생전의 행적에 따라 심판과 형벌을 받고 다음 생으로 태어난다. 심판은 죽은 후 49일까지 7일에 한 번씩 그리고 100일, 1년, 3년에 이르기까지 총 10번에 걸쳐 진행된다. 절에 있는 명부전은 세상을 떠난 영혼이 극락에 태어나기를 바라며 마련한 공간이다. 명부전의 중심에는 지옥에 떨어진 중생까지 구제하겠다고 맹세한 지장보살을 모신다. 지장보살의 양쪽에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시왕의 그림을 건다. 시왕을 그린 그림은 보통 한 폭에 한 왕씩 르려 열 장면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화면을 2단으로 구성하여 상단에는 왕이 심판하는 장면을, 하단에는 전생에 저지른 죄에 따라 처참한 형벌을 받는 모습을 그린다. 이런 명부를 그린 불화에는 저승사자들에게 이끌려 지옥에 도착한 영혼이 왕의 심판을 받고 다음 생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설명적으로 묘사된다.<출처:중앙박물관>


지옥의 두번째 왕, 비단에 색, 19세기, 태고사. 지옥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중 2째, 3번째, 9번째 왕을 그린 그림이다. 2번째 왕은 죽은지 7일째 되는 날 심판한다. 지옥 왕의 심판 장면 아래에는 옥졸이 죽은 영혼을 끓는 물에 집어 넣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지옥의 3번째 왕은 죽은지 14일째 되는 날에 심판한다. 얼음에 갇히는 벌을 받는 죄인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지옥의 9번째왕은 죽은지 1년이 되는날 심판한다.죄의 무게를 달고 있는 장면과 불길 위의 쇠기둥에 매다는 장면, 정으로 온몸을 찍은 장면 등을 묘사하였다.


화엄경 그림, 고려, 푸른 종이에 금선묘


화엄경 그림, 고려, 푸른 종이에 금선묘


법화경 그림, 고려, 종이에 금선묘


법화경 그림, 1442년, 푸른 종이에 금선묘


관세음보살 밑그림, 18~19세기, 종이 위에 선묘

관세음보살은 현실에서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로운 보살이다. 물위로 솟아난 암좌는 <화엄경>에서 관음보살이 산다고 하는 보타락가산을 상징한다.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 그리고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천상의 세계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관세음보살, 1725년, 비단에 색

관세음보살의 아래에는 파도치는 물결 위로 구도의 길을 찾아 온 선재동자가 합장하고 있다. 뒤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과 대나무를 그렸다. 관세음보살의 화려한 보관에는 아미타불이 작은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출처:중앙박물관>


지장보살과 무리, 조선, 비단에 색

지장보살은 지옥세계에 떨어진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의 보살이다. 화면의 중앙에는 지장보살이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다. 젊은 승려 모습의 도명존자와 왕의 모습을 한 무독귀왕이 지장보살의 양쪽 아래에 서 있다. 지옥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과 중생의 구제를 돕는 여섯 보살이 화면 가득 나타난다.<출처:중앙박물관>


화담대사, 조선, 비단에 색

화담대사는 조선후기 불교의 편양문파에 속하는 뛰어난 선승이다. 18세에 양주 화양사에 출가하였고, <화엄경>을 어려 번 강설하였다. 이 그림에서도 <화엄경> 등의 경전과 안경을 함께 그려 대사의 높은 학식을 암시하였다.<출처:중앙박물관>


달마대사 진영, 조선, 종이에 색. 조선중기 김명국이 그린 달마대사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달마도이다.


부석사 괘불, 1684년, 비단에 색


부석사 괘불 중 가운에 자리잡고 있는 부처

부석사 괘불은 70여 명의 인물이 질서정연하게 자리잡은 대교모의 설법회를 그린 것으로, 조선시대 제작된 불화 중에서 보기 드문 작품이다. 석가모니불의 설법을 듣기 위해 영취산에 모여든 청중의 모습은 부석사 괘불의 중심 장면으로 많은 비중을 할애하여 장대하게 재현되었다. 그러나 설법회 너머로 모든 시공간의 부처를 대표하는 세 부처를 또다시 표현하였다. 인형속의 인형처럼 부처안에는 또 다른 부처가 있다. 가장 바깥에 석가모니불이 있다면, 비로자나불은 더 이상 열리지 않는 가장 중심의 부처이다. 무수히 많으면서도사실은 하나인 조선 사람들의 부처는 부석사 괘불을 통해 상징적으로 도해되었다.<출처:중앙박물관>


사자 받침이 있는 북, 조선후기, 나무

불교 악기 중 하나인 북이다. 소리를 통해 불법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법고라고 불린다. 늠름한 사자 모양의 북 받침과 한조로 만들어졌다. 불교 의식과 예불에 사용된다.<출처:중앙박물관>


바라, 조선후기

바라는 불교 의식에 사용하는 악기 중 하나이다. 중앙의 구멍에 끈을 맨 후 서로 맞부딪히면 큰 울림이 있는 소리가 난다. 불교 의식 무용의 하나인 바라춤을 출 때도 사용된다.<출처:중앙박물관>


불교의식집, 보물 949호, 1474년

불교 의식집은 승려와 신도들이 의식을 진행할 때 사용하는 지침서이다. 이 책은 몸과 마음과 입으로 지은 모든 악한 업을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절차를 통해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는 방법을 소개한 의식집이다.<출처:중앙박물관>


이포외여래도, 조선후기

일곱 부처를 각 한 폭에 그린 의식용 불화 가운데 하나이다. 두 손은 합장한 채 좌측을 바라보는 이포외여래이다. 이포외여래는 모든 영혼이 놀라거나 두려운 감정을 버리고 열반의 즐거움을 얻도록 돕는다.<출처:중앙박물관>


보승여래도, 조선후기, 종이에 색

일곱 부처를 각 한 폭에 그린 의식용 불화 가운데 하나이다. 두 손은 합장한 채 우측을 바라보는 보승여래이다. 그는 모든 영혼이 지옥.아귀.축생의 세가지 나쁜 길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다.<출처:중앙박물관>

복을 비는 마음, 삼성각의 불화
삼성은 칠성, 독성, 산신을 가리키는 말로, 불교가 민간의 토착신앙을 흡수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칠성도는 불교와 별자리 신앙이 결합하여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여래 등을 그린 것이다. 독성도는 불교의 성자 중 하나인 독성을 복을 비는 대상으로서 그린 것이고, 산신도는 전통적인 산신 신앙을 수용하여 불화로 그린 것이다. 주로 절 뒤편에 작은 전각을 마련하여 봉안하는데, 한 전각에 모두를 봉안하면 삼성각, 나누어 봉안하면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이라 부른다. 칠성, 독성, 산신은 불교 본래의 부처나 보살보다 위계가 낮아 전각도 작고 불화도 비교적 간소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수명장수, 득남, 재복, 소원성취 등 현실적인 기원을 들어주는 친근한 존재였고, 사찰에게는 일반 대중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삼성각의 불화는 한국 불교의 민간신앙 포용 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기복의 마음이 불교신앙을 통해 표출된 흥미로운 불화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칠성도, 조선, 1873년
불교와 도교가 결합된 칠성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 중심에는 북극성을 상징하는 불교 존격인 치성광여래와 그에 상응하는 도교의 자미대제가 있다. 치성광여래는 상단에서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철성여래를, 자미대제는 하단에서 그에 상응하는 도교의 칠원성군을 거느려 불교와 도교의 세계를 한 화면에 담고 있다. 그림의 가장자리는 복숭아와 석류 등 상서로운 과일 무늬를 그려 꾸몄는데, 수복을 비는 불화라는 점과 어울려 흥미롭다. <출처:중앙박물관>


칠성도, 1920년
20세기 초에 활동한 화사 보경보현과 호윤기정이 그린 칠성도이다. 그림의 아래 부분에는 밝은 채색이 잘 남아 있으나, 윗부분은 검게 변색되어 있어, 실제 사찰에서 사용되면서 초.향 등의 연기를 쐰 흔적으로 보인다. 가운데의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상단에는 칠성여래, 하단에는 칠원성군을 그리되 칠원성군의 한 명을 위로 올려 양쪽의 인물수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였다. 오른쪽 위에는 머리가 솟아오른 수노인을 그렸다. <출처:중앙박물관>


칠성도, 1923년
화면 가운데에는 금륜을 든 치성광여래가 푸른 연꽃 위에 앉아 있고, 좌우에는 각각 붉은 해를 든 일광보살, 흰 달을 든 월광보살이 시립해 있다. 각 보살의 뒤편에는 관에 해와달이 그려진 인물이 있는데, 이들은 일광.월광보살에 대응되는 동시에 주변의 관을 쓴 인물들과 합하여 칠원성군을 이루고 있다. 칠성여래는 생략되었다. 화면 왼쪽에 그려진 머리가 솟아오른 노인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수노인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독성도, 1878년
독성은 깨달음을 얻은 존재로, 나반존자라고 흔히 부르며 십육나한 중 하나인 빈두로존자로도 여겨진다. 독성은 성격이 까다로우나 신통력이 크고 소원을 신속히 성취해 준다고 믿어져 중요한 기복의 대상이 되었다. 이 독성도는 1878년 제작되었는데 1839년생인 만 서른아홉 살의 동갑내기 부부가 아들 낳기를 기원하며 시주한 것이어서, 독성 신앙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독성도, 1891년
독성에게 예배하는 의식문에 따르면 독성이 거하는 곳은 남인도의 천제산으로, 독성은 산이 깊고 물이 흐르며 꽃이 피어나고 새가 지저귀는 곳에서 선정을 닦고, 늘어진 소나무 사이를 마음대로 오간다고 한다. 대부분의 독성도가 배경에 산수, 화초, 소나무를 그리는 것은 이러한 의식문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이 그림은 산과 물결의 표현이 도식적이고, 소나무에는 인화문이 짙으나 독성도의 배경 요소를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독성도, 19~20세기
비교적 작은 화면이지만 독성신앙의 내용을 짜임새 있게 표현하였다. 화면 왼쪽의 산악과 폭포는 독성이 있는 천태산의 모습이며, 화면 오른쪽의 작은 집은 독성이 머무는 한 칸의 수행처를 나타낸다. 길고 흰 눈썹, 유유자적한 자세 또한 독성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독성은 예를 갖추어 공양하면 반드시 신통을 내려 감응한다고 믿어졌는데, 화면 아래의 작은 인물과 동자는 그러한 믿음을 반영하듯 허리를 굽혀 공손한 자세로 공양물을 바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독성도, 20세기
이 독성도는 충청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인 화사 금호당 약효가 보응.문성.동화와 함께 그렸다.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물과 솟아오르는 물결, 소나무, 꽃과 새 등 배경을 비교적 단순히 처리한 반면, 독성은 눈처럼 흰 눈썹과 수염, 어깨를 드러내며 흘러내린 옷자락, 뾰족하고 긴 손톱과 발톱 등 세간을 초월한 존재로서의 면모를 부각시켜 표현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금호당 약효의 다른 독성도에서도 나타난다. <출처:중앙박물관>


산신도, 19~20세기
산신도는 토착적인 산신 신앙이 불교와 결합하면서 사찰 내에 모셔지게 되었다. 불교에서도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의 하나로 주산신이 있으나, 대부분의 산신도는 민간신앙적인 산신의 모습을 더욱 강하게 반영한다. 이 산신도 역시 험준한 산을 배경으로 신령한 분위기의 노인이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전형적인 민간 신앙 속 산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신곁에는 동자가 시중을 들고 있으며, 호랑이는 민화풍으로 그려졌다. <출처:중앙박물관>

산신도, 1920년
호랑이와 동자들을 거느린 산신의 모습이다. 산신은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들어올려 족두리처럼 생긴 치포관을 썼다. 산신의 얼굴은 인자하고 온화하게 표현되었으나, 아래에는 호랑이가 산신의 허리를 둥글게 감은 채 복종하듯 얌전히 앉아 있어 산신의 초월적 힘을 암시한다. 산신을 모시는 동자 역시 호랑이 꼬리를 가지고 노는 등 평범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산신에게 속한 특별한 존재임을 드러난다. <출처:중앙박물관>

산신도, 1905년
산 속의 소나무와 바위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산신을 그렸다. 배경을 단순화하는 대신 산신을 크게 그려 부각시켰다. 산신은 눈꼬리를 치켜올리고 미간에 힘을 주어 눈을 부릅떴으며, 성성한 수염 속에 감추어진 입은 굳게 다물고 있어 엄숙하고 두려운 인상을 준다. 반면 산신의 무릎 앞에 작게 그려진 동자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듯 천진하게 웃으며 제각기 공양물인 주전자를 들거나 영지가 든 항아리를 메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산신도, 1885년
1885년에 조성된 기록이 있는 산신도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어두운 절벽과 멀리서 굽이치며 떨어지는 물은 이곳이 심산유곡임을 나타낸다. 신선은 눈을 번뜩이는 호랑이를 옆구리에 끼고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부채를 들고 앉아 있는데, 이러한 유형의 산신 도상은 부채가 영지로 바뀌는 등 약간씩으 변형을 보이며 다른 산신도에서도 여러 번 반복되어 불화 밑그림의 반복적 사용과 전파를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독성도와 산신도, 19~20세기
산신도와 함께 조성된 독성도이다. 편안히 앉아 머리를 긁적거리는 듯 자유로운 독성의 자세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자의 자세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한도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한편 독성 주변의 사슴, 거북이 등은 소나무, 산, 물 들 독성도 본래의 배경요소와 결합하여 민화의 삽장생도 구성을 연상시키며 이는 다시 독성 신앙의 현세구복적인 성격과 자연스러운 연결을 이룬다. 칠성, 독성, 산신은 한 전각에 셋 모두를 봉안하기도 하고, 간혹 한 전각에 둘을 봉안하기도 한다. 이 독성도는 산신도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 같은 전각에 함께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칠성도가 함께 조성되었다면 칠성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독성도와 산신도를 배치하였을 것이나, 현재 칠성도의 존재는 알 수 없다. 우둘투둘한 껍질이 강조된 소나무의 표현과 유사한 구도의 배경이 두 그림으 동질성을 잘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동자상, 조선
동자는 독성도, 산신도에서 특히 독성이나 산신을 곁에서 모시는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독성도나 산신도와 함께 동자상이 봉안되지는 않지만, 둥글고 통통한 볼과 천진한 표정, 작은 쌍상투 등 불화에 그려진 동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상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동자상과 동녀상


무위사 극락보전 백의관음도(모사도), 1476년, 보물 1314호
전라남도 강진에 있는 무위사 극락보전 후불벽에는 앞뒷면에 모두 벽화가 있다. 이 백의관음도는 벽의 뒷면에 그려진 불화로, 현재 전시된 것은 1938년에 그려진 모사도이다. 관음보살은 달처럼 크고 둥근 원광을 등지고 일렁이는 물결위에 서 있으며, 휘날리는 옷자락과 고요한 표정이 대비를 이룬다. 손을 뻗어 예배하는 노비구의 등에는 관음보살을 바라보는 새가 앉아 있어 흥미롭다. 여백에는 관음보살을 찬탄하며 참배하기를 원하는 내용의 시가 적혀 있다. 벽 앞면에 그려진 아미타삼존도와 함께 조선 전기 불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출처:중앙박물관>

무위사 극락보전의 벽화
전라남도 강진에 자리한 무위사의 중심전각인 극락보전은 간결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을 갖춘 조선 전기의 대표적 건축물로 내부에는 많은 벽화가 남아 있다. 극락보전의 주존인 아미타삼존불상의 후불벽에는 아미타삼존벽화가 있다. 1476년에 그려졌으며, 높은 연화대좌에 앉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음보살이, 오른쪽에 지장보살이 서 있는 구도이다. 아미타삼존벽화의 뒷벽에는 백의관음도가 있는데, 옷자락을 날리며 물결 위에 서 있는 백의관음의 발치에는 관음을 우러러보는 비구가 있다. 후불벽의 벽화들 외에도 극락보전의 내부에는 총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보존을 위해 분리되어 벽화보존각으로 옮겨졌다. 이 중 삼존불화는 동쪽벽에 있던 벽화로, 본존불이 좌우에 보살과 비구들을 거느리고 설법하는 모습을 그렸다. 서쪽 벽의 아미타내영도는 아미타불이 여덟 보살과 함께 죽은 사람을 맞이하러 가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무위사 극락보전의 벽화들은 전각의 벽화와 함께 남아 있어 더욱 귀중한 예다. <출처:중앙박물관>


수월관음도, 19세기
진리의 법문을 듣고자 여러 명의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던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에게 다라라 법을 든는 모습을 그린 불화이다. 파도치는 물결 위에 솟아오른 편평한 암반으로 관음보살이 거하는 보타락가산을 표현하고, 그 위에 편안히 앉아 법을 설하는 관음보살을 그렸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용왕이 나타나 관음보살에게 예배하고 있으며, 오른쪽 아래에는 선재동자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관음보살의 법문을 듣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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