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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73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국보 38호), 경주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석탑

경주박물관 뒷편에 우뚝 서 있는 국보 38호로 지정된 고선사지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신라를 대표하는 고승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던 고선사 절터에 있던 것을 70년대 덕동댐 건설로 절터가 물에 잠기자 197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이 석탑이 세워져 있던 절터에서 1914년 원효대사의 업적을 기리는 서당화상비가 발견되어 원효대사가 입적한 686년(신문왕6)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놓은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높이 10.2m로 상당히 큰 규모의 석탑이다. 초기 신라 석탑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는 석탑으로 감은사지 3층석탑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은 여러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기둥..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경주지역 절터에서 출토된 석조 유물 (고선사지, 영흥사지, 임천사지)

삼국시대 신라는 불교가 제일 늦게 전래되었지만, 법흥왕대에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된 이후 크게 번성하였다. 신라의 불교은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하여 불교를 통해 국민을 단합시키는 역할이 컸다다. 호국불교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황룡사 9층목탑의 건립, 사천왕사의 건립 등을 들 수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삼국의 불교문화가 융합되어 화려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신라 천년이 수도였던 경주에는 지금도 불국사를 비롯하여 여러 사찰들이 남아 있지만, 전성기에는 상당히 많은 사찰들이 국가를 비롯하여 귀족집단들이 주도하여 세워졌다. 삼국시대에 세워진 칠처가람이라 불리는 흥륜사, 담엄사, 영흥사, 분황사, 사천왕사, 황룡사, 영묘사 들이 있었으며, 삼국을 통일한 이후 화려한 불교예술을 보여주는 불국사..

절터 2012.07.19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사찰 입구 손을 씻는 물을 담아두는 석조와 우물 윗돌

석조는 사찰 입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물을 담는 그릇으로 원형 또는 직육면체 형태를 하고 있다. 보통 하나의 큰 화강암 석재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두는데 사용하고 있다. 삼국시대 백제의 석조에서는 원형으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으나, 통일신라 이후 대부분은 직육면체를 하고 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는 연꽃문양이나 글씨 등을 새겨 놓는 경우도 있다. 석조는 당간지주와 함께 그 연대가 상당히 오래된 경우가 많으며, 폐사된 옛 절터에 당간지주와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사찰에서 석조는 대웅전 등 불전이 있는 중심영역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위치하고 있는다. 보통 석조는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샘물로 목을 축이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원래는 사찰에서 종교적으로 신성하게 여겨지..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석등, 밝게 빛나는 부처님 말씀

석등은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불상을 모신 불전 앞을 밝히는 석조물이다. 불교에서 등불은 부처님의 진리를 비춰줌으로 중생을 착한 길로 인도하고, 탑과 불상 앞에 등불을 밝히면 내세에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복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도 사찰에서는 부처님이 태어난 초파일에 사찰입구에서부터 불전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연등을 볼 수 있다.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조물로서 석등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백제의 큰 사찰이었던 미륵사 절터에서 가장 오래된 석등의 화개석과 팔각연꽃무늬 하대석이 발견되었다. 원래 석등은 불전 앞을 밝히던 기능을 갖는데, 그 역할이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비롯하여 고려시대부터는 능묘를 밝히는 장명등의 형태로 확장되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본격적..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한국 석탑의 모범이 된 신라 석탑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으로 인도 산스크리트어 '스투파(Stupa)'에서 유래되었다. 스투파는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무덤을 뜻하는 것으로 원래는 진흙을 구워서 만든 반원형돔형태였다. 인도 아소카왕이 기존에 봉안되었던 사리를 분배하여 8만 4천기의 탑을 세우면서, 무덤의 성격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불교가 여러 경로를 통해 전파되면서 여러 지역에서 탑이 세웠졌는데 탑의 형태른 각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문화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에서는 벽돌로 쌓아 만든 전탑이, 한국에서는 돌을 다듬어서 만든 석탑이, 일본에서는 목탑이 많이 세워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목탑이 많이 세워졌으며, 사찰은 탑을 중심으로 건물을 배치하는 여러 형태를 가람배치를 보였다. ..

[경주박물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석조불상

불상은 부처의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좁은 의미로는 석가모니를 비롯한 여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을 말하지만, 대체로 보살상.신장상 등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불상이라 일컫는다. 원래 불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이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탑이나 보리시, 금강보좌 등이 중심이었으나 이집트와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지방과 인도의 마투라에서 처음 만들어져 대승불교의 전파경로를 통해 한국에 전해졌다. 사찰의 가람배치에 있어서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초기까지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을 중심으로 가람이 배치되었으나 후대에 들어서면서 탑보다는 불상을 보신 금당이 사찰의 중심이 되었다. 불상은 만든 재료에 따라서 석조불상, 목조불상, 철조불상, 금동불상 등이 있다.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인도나 서역에서는 진흙으로 빚어서 만든 ..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불법의 수호자, 사천왕.팔부중.금강역사.십이지신.사자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사찰 입구를 지키거나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에 새겨져 있는 사천왕, 금강역사, 팔부중, 사자 등을 볼 수 있다. 대체로 인도 고유의 신이었다가 불교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사천왕은 오늘날에서 사찰출입문인 천왕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존재로 원래는 부처님의 세상을 악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신장으로 인도에서는 귀신 무리의 왕이었다가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된 존재이다. 불법의 세계인 수미산을 사방으로 지키는데, 동쪽은 지국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남쪽은 중장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 머물면서 불법의 세계를 지킨다고 알려져 있다. 팔부중은 사천왕 비슷한 존재로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인공연못 안압지

안압지는 통일신라시대 신라 궁궐의 후원 연못으로 백제 사비성의 궁낭지, 경복궁의 경회루 연못, 향원정 연못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록에는 문무왕 14년(674)에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짐승과 새를 길렀다고 한다. 연못은 동서 200m, 남북180m로 서남쪽은 직선형인데 반해 북동쪽은 들쭉날쭉한 곡선으로 되어 있으며 무산12봉을 상징하는 연덕을 조성해 놓고 있다. 또한 발해만 동쪽에 있다는 삼신도를 본떠서 만든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연못안에 배치되어 있다. 안입지는 신라가 멸망한 이후 동궐 건물들의 잔해들을 연못속에 버리고 폐허가 되어 연못에는 갈대밭만 남아 있어 기러기와 오리가 노는 곳이라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안압지라 불렀다고 한다. 안압지는 1975년..

지역박물관 2012.07.08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통일신라의 생활용기, 토기와 벼루

통일신라시대에는 무덤은 불교가 도입된 이후 6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신라의 전통 매장방식지 돌무지덧널무덤양식이 없어지고 고구려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돌방무덤이 일반화되고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증가하면서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은 토기가 급격히 줄어들어 실제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는 현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의 토기는 신라의 토기를 기반으로 하여 고구려.백제의 문화가 융합되고 당나라의 발전된 도자기와 금속용기의 형태 및 문양이 토기에 반영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의 토기에는 그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다양한 문양들이 새겨졌는데, 사람이나 동.식물의 형상을 새긴 이전과는 달리 불교의 영향을 받은 추상적인 문향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런 문양은 토기표면에 여러가지 무늬를 새긴 새기내를 눌러 찍어..

지역박물관 2012.07.06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나무와 뼈로 만든 생활용품과 철제도구, 무기류

신라 궁궐의 후원이었던 안압지에서는 기와를 비롯한 건축부재들이 많이 출토되었고, 다양한 생활용기들과 불상들이 또한 많이 출토되었다. 안압지는 궁궐연못으로 바닥에 뻘이 형성되었기때문에 산소가 차단되어 다른 곳과는 달리 목재나 뼈로 만든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압지에서 운행하연 나룻배를 비롯하여 목재로 만든 빗과 같은 생활용품, 주령구라 불리는 놀이기구도 출토되었다. 이런 유물들은 대체로 사용중에 실수로 연못에 빠트린 것이거나 낡은 것을 연못에 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주령구는 당시 귀족들의 놀이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발굴당시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원품은 남아 있지 않고 발굴당시 사진을 토대로 복원한 것을 전시해 놓고 있다. 또한 안압지에서는 고분부장품에서 출토된 것들과는 ..

지역박물관 2012.07.05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금동불상과 판불(보물 1475호)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는 신라 금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금속공예 기술과 고구려, 백제유민들에 의해 화려한 불교조각예술을 꽃피웠다고 할 수 있다. 석굴암 불상으로 대표되는 통일신라 불교 조각은 서역의 간다라 미술의 사실적인 묘사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로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석탑을 중심으로 많은 불교조각예술품들을 남겨 놓고 있다. 불상은 부처의 상을 표현한 것을 말하지만 그 의미를 넓게 해석하여 보살상, 신장상 등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 불상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는데, 불교가 전파경로에 있었던 인도나 서역에서는 흙으로 빚어서 만든 소조불상을 많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을 거치면서 석조불상, 목조불상, 금속으로 만든 금동불상, 철조불상 등이 많이 만들어졌다. 신라 궁궐의 후원이..

지역박물관 2012.07.04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금속공예품과 곱돌공예품

신라는 내물왕대 이후 화려한 황금문화를 꽃피웠다. 당시에 조성된 고분들에서는 세계에서도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금.은제 장식품들이 출토되고 있다.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에는 부장품으로서 금속공예품은 만들어지 않았지만 금동불상, 범종, 석탑에서 발견된 각종 사리기 등 불교와 관련된 화려한 금속공예품들이 만들어졌다. 이들 유물들에서 신라와 통일신라 화려한 금속공예기술과 예술성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교관련 공예품을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었던 화려한 생활용품들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신라의 궁궐 후원이었던 안압지에서는 당시 궁궐에서 사용했던 많은 금속공예품들 출토되고 있다. 이들 공예품들은 건축의 장식에 사용하였던 금속장식품을 비롯하여, 의자를 비롯한 가구에 사용..

지역박물관 2012.07.03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의 생활용기

경주 안압지는 신라 궁궐의 별궁인 동궐 후원에 있었던 연못으로 발굴조사 결과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신라의 유물들 중 상당수는 신라황금 문화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내물왕대 이후에 조성된 고분들에 껴묻거리로 묻혀진 것들인데 반해서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실제 생활에 사용하던 것들이 연못바닫 진흙 뻘 속에 묻여 있다가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 금동그릇을 비롯하여 청동접시, 청동 숟가락 등 식생활과 관련된 것들이 많이 출토되어 당시 사람들이 생활모습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출토된 당시의 생활용기들 중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은데 이 유물들은 오늘날 사용하는 용기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 중 청동숟가락은 일본 나라의 정창원에서 발견된 청동숟가락과 외형상 큰 차..

지역박물관 2012.07.02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기와에서 보이는 다양한 동.식물 문양

통일신라시대 별궁이었던 동궁 후원에 있었던 연못인 안압지에서는 당시 궁궐에서 사용하였던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출토된 것이 기와를 비롯한 건축부재이다. 안압지에서는 약 2만4천여점의 벽돌과 기와가 출토되었다. 기와에는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암막새와 수막새 외에도 타원형 수막새, 곱새기와, 치미, 귀면과 같은 특수기와가 출토되었다. 특히 암.수막새에는 당시 건축이나 미술의 경향을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의 문양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 형태는 식물을 형상화한 연꽃무늬, 보상화무늬, 인동보상화무늬 등이 있다. 기와의 문양에는 식물문양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악귀를 쫓아내는 벽사의 기능을 갖은 다양한 동물문양도 만들어졌다. 대체로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사자, 용, 봉황, 새, 기린, 가릉..

지역박물관 2012.07.02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유물로 본 신라의 궁궐 건축

안압지는 신라의 궁궐이었던 월성 동쪽편에 있는 별궁에 있던 임해전지의 별칭이다. 이 곳에 궁궐을 짓고 연못을 조성한 것은 기록에 의하면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대에 별궁으로 지었다고 한다. 백제 무왕이 사비성에 조성한 궁남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도교적 형식이 많이 반영되어 궁궐건물인 동궁안에는 돌을 쌓아 산을 만들고 연못에서 세개의 섬을 만들었으며, 후원에는 꽃나무를 심고 오늘날 동물원처럼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궐인 경복궁의 경회루나 향원정, 창덕궁 후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으로 사신의 접대나 연회를 베풀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규모는 조선시대 궁궐에 비해서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안압지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대부분 실생활에 사용하던 ..

지역박물관 2012.06.29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목간 등에서 볼 수 있는 신라의 문자생활과 민속신앙

경주박물관 안압지관은 안압지에서 출토된 3만여점의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유물 7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안압지는 신라 왕궁이었던 월성 동쪽편에 있던 동궁의 정원을 구성하고 있던 연못으로 동궁의 임해전에 딸린 연못이라하여 임해전지라고도 한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대에 연못을 파고 정원을 조성하였다고 하며, 이곳에는 동물원도 있었다고 한다. 1974년 이래로 오랜 기간동안 발굴조사를 벌였는데 신라을 대표하는 3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부장품으로서 만들어진 것인데 비해,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안압지가 연못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었던 까닭에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안압지가 있던 동궁..

지역박물관 2012.06.27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 당나라 장안 사람들이 정신세계, 불상들

당나라는 이민족과 치열한 투쟁이 계속된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를 계승한 국가로 이전 시기의 왕조로 가장 중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와는 다른 성격을 보이는 왕조였다.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서역의 많은 문물들과 종교, 사상들이 전래되었고, 동시대 세계를 휩쓸었던 이슬람이 절정기를 이루던 시기이기도 하다. 남북조시대에 중국에 본격적으로 전해진 불교는 당나라때에 전성기를 이루며, 한나라 이후 노장사상이 민간신앙과 결합된 도교는 황실의 후원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또한 국가 정치체제의 중심인 유교 또한 학문과 정치의 중심으로 그 역할이 줄어들지 않았으며, 사회 체제로서 그 중심은 더욱 굳건해 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교, 불교, 도교 이외에도 서역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마니교, 이슬람교 등도 장안을..

지역박물관 2012.06.26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 당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인 당삼채와 십이지신상

당삼채는 중국 역사상 가장 국제적인 성격을 지녔던 왕조인 당대(618~906년)에 만들어졌던 도기로 3가지 색상의 유약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도기에 녹색, 갈색, 황색, 백색 또는 코발트이 남색을 입혀서 칠한 것으로 그릇을 비롯한 생활용품과 무덤의 부장품이나 장식용으로 만든 남녀 인물상, 신상, 전설상의 동물, 말 등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진시황 무덤에서 발견된 토용이나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이형토기와 같은 용도로 죽은자가 사후세계로 가는 길에 동행하는 의미를 가진 부장품이 주된 용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귀족들이 취향이나 생활모습, 복식 등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당시 수도였던 장안이나 귀족들이 많이 살았던 낙양의 무덤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다. 안녹산의 난 이후 당나라의 국제적 영향력이..

지역박물관 2012.06.25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 당나라 시대 금.은으로 만든 화려한 금속세공품 그릇

중국 당왕조 사회의 국제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로 금과 은을 비롯한 금속제 생활용기들을 들 수 있다. 이전시기에도 청동으로 만든 동기를 비롯하여 금속제 용기들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는 제례의식과 관련된 의기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의 문화와 문물이 들어오면서 로마를 비롯하여 페르시아, 중앙아시아의 소그드 등에서 많이 만들어졌고 사용되었던 금속제 생활용품들이 당나라 장안의 상류층에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나라 등을 거쳐 실크로드 동단에 위치한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백제 말기의 부여나 신라에서 화려한 금은그릇 등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물왕대 이후 황금시기로 불리는 신라의 고분에서는 금관..

지역박물관 2012.06.24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 당나라인의 예술과 풍류

당나라는 남북조시대를 통일한 수나라를 이어 618년 이연이 건국하여 907년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중국대륙을 통치한 왕조이다. 한나라와 함께 중국 역사상 이민족인이 아닌 한족 왕조로서 가장 번성했던 왕조이기도 하다. 당나라는 남북조 혼란기를 통일한 왕조로서 중국 한족 고유의 문화도 발전했지만, 이민족과의 적극적인 교류로 국제적인 성격을 가진 대표적인 왕조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제도, 문물, 사회체제 등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는 유교문화가 사회의 주류을 이루었던 송나라를 비롯하여 후대의 중국 왕조와는 달리 국제적이며 개방적인 성격을 많이 갖고 있었던 왕조로 남북조대에 처음 전래된 불교..

지역박물관 201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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