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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사찰 입구 손을 씻는 물을 담아두는 석조와 우물 윗돌

younghwan 2012. 7. 1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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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조는 사찰 입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물을 담는 그릇으로 원형 또는 직육면체 형태를 하고 있다. 보통 하나의 큰 화강암 석재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두는데 사용하고 있다. 삼국시대 백제의 석조에서는 원형으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으나, 통일신라 이후 대부분은 직육면체를 하고 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는 연꽃문양이나 글씨 등을 새겨 놓는 경우도 있다. 석조는 당간지주와 함께 그 연대가 상당히 오래된 경우가 많으며, 폐사된 옛 절터에 당간지주와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사찰에서 석조는 대웅전 등 불전이 있는 중심영역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위치하고 있는다. 보통 석조는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샘물로 목을 축이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원래는 사찰에서 종교적으로 신성하게 여겨지는 불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으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서구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고대 이래로 서구에서는 신성한 장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도록 광장 한편에 분수 등을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슬람사원은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깨끗히 씻을 수 있도록 석조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분수 등을 많이 설치했으며, 캬톨릭성당 입구에서 성수대라고 하여 손을 씻는 곳이 설치되어 있다.



경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조. 하나의 화강석으로 된 큰 돌을 파서 물을 담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대체로 석조는 샘물과 연결되어 이 곳에 물이 잠시 머물렀다 흘러가게 설치하였으며, 손을 씻는 장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불국사에서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중심영역으로 들어가는 청운교 앞에 있는 불국사 석조(보물 1523호). 석조가 어떻게 사용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화강석을 깎아 만든 석조는 그 내구성이 뛰어나서 천년 이상이 지난 석조를 오늘날까지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주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사찰이라고 할 수 있는 흥륜사 절터에 남아 있던 수조. 실제로는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석조에 새겨진 글씨. 조선시대 석조를 경주부 관아로 옮긴후 이교방이라는 인물이 적은 것이라 한다.

석조, 경주 흥륜사터, 통일신라 8~9세기
석조는 장방형 또는 원형의 돌 내부를 파내어, 절 등에서 물을 담았던 것입니다. 이 석조에는 많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석조의 윗부분에는 경주 부윤 이필영이 인조 16년(1638)에 석조를 흥륜사에서 경주읍성 안 금학헌으로 옮겼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내용이 새겨진 반대편에는 이교방이 무자년 유두날 이 석조를 보고 지은 칠언절구가 있습니다. 측면에는 석조에 담긴 물에 하늘이 비친 것을 표현한 "天光雲影"을 크게 새겨 넣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경주 지역에서 출토된 석조들


작은 규모의 석조들도 볼 수 있다.


보물 194호로 지정된 부여 석조. 부여 왕궁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 석조가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이슬람사원이었던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사원 입구에 손과 발을 씻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수조.


바티칸의 대성당 광장에서도 수조와 같은 기능을 하는 큰 분수를 볼 수 있다. 이 곳 또한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카톨릭성당 출입문 부근에서도 손을 씻는 성수대를 볼 수 있다.


우물은 고대 이래로 인간이 물을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공시설로 옛 사람들은 우물을 신성시하였다. 신라에서는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있는 나정을 비롯하여 많은 우물 유적들이 있으며, 대부분 실제로 사용했지만 일부는 제사를 위한 우물들도 있었다고 한다. 신라에서는 우물 윗돌을 원형의 화강석으로 만든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경주에서는 많은 우물 윗돌이 출토되고 있다.


경주 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우물 윗돌들


우물 윗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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