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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국보 38호), 경주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석탑

younghwan 2012. 7. 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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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박물관 뒷편에 우뚝 서 있는 국보 38호로 지정된 고선사지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신라를 대표하는 고승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던 고선사 절터에 있던 것을 70년대 덕동댐 건설로 절터가 물에 잠기자 197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이 석탑이 세워져 있던 절터에서 1914년 원효대사의 업적을 기리는 서당화상비가 발견되어 원효대사가 입적한 686년(신문왕6)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놓은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높이 10.2m로 상당히 큰 규모의 석탑이다. 초기 신라 석탑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는 석탑으로 감은사지 3층석탑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은 여러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기둥모양을 새겨 놓고 있다. 탐신 몸돌도 3층 몸돌을 제외하고는 여러개의 돌을 짜 맞추어서 만들어으며, 3층 몸돌은 사리함을 넣어둘 목적으로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석탑은 감은사지 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인 7세기에 만들어졌으며, 신라 석탑 중에서는 상당히 크고 웅장하게 만들었다. 신라 석탑 양식을 완성한 불국사삼층석탑으로 옮겨가는 초기양식을 잘 보여주는 석탑이다.


국립 경주박물관 뒷마당에 서 있는 고선자시 삼층석탑. 형태나 규모면에서는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거의 비슷하다. 통일신라 초기에는 석탑의 건립에 많은 비용이 많이 소요되어 실제로 세워진 석탑은 많지 않다고 한다.


고선사지 삼층석탑의 기단. 2층으로 기단석을 쌓고 있으며, 목탑의 형태를 모방한 것으로 석재를 이용해서 목탑처럼 쌓은 것이라 한다. 10m가 넘는 거대한 석탑을 받치고 있지만, 안정감을 주고 있다.


고선사지 삼층석탑의 탑신 몸돌. 탑신 몸돌은 기둥을 새겨 놓는 등 목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탑신 1층 몸돌에 문모양을 새겨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붕돌은 분황사지 석탑처럼 전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국립 경주박물관 뒷마당에는 고선사지 석탑을 비롯하여 경주지역에서 발굴된 석탑의 석재를 비롯하여 많은 석재들이 종류별로 분류되어 전시되어 있다.


남쪽에서 본 고선사지 삼층석탑


북쪽에서 본 고선사지 삼층석탑


고선사지 삼층석탑 (2009년)

고선사지 삼층석탑, 통일신라 686년 이전, 높이 10.2m
이 탑이 있던 고선사는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있던 절입니다. 미술사학자인 우현 고유섭의 글에 따르면, 1914년 5월 이 삼층석탑이 있던 주변에서 원효대사의 비석인 서당화상비 조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삼국유사> 기록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효대사는 신문왕 6년(686)에 입적했으니까 이 탑 역시도 686년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1975년에 고선사터가 덕동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이탑을 비롯한 여러 문화재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탑과 너무나도 닮은 탑이 신문왕 2년(682)에 세운 감은사터 삼층석탑입니다. 감은사터 삼층석탑에는 찰주가 남아 있어 언뜻 달라보입니다만,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된 모습, 노반까지의 높이가 모두 10.1m라는 점, 82장의 돌로 이루어졌다는 점 등이 쌍둥이 탑이라고 할만큼 닮았습니다. 다만 고선사터 삼층석탑 1층 몸돌에 문을 표현한 점이 다를 뿐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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