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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유물로 본 신라의 궁궐 건축

younghwan 2012. 6. 2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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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압지는 신라의 궁궐이었던 월성 동쪽편에 있는 별궁에 있던 임해전지의 별칭이다. 이 곳에 궁궐을 짓고 연못을 조성한 것은 <삼국사기>기록에 의하면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대에 별궁으로 지었다고 한다. 백제 무왕이 사비성에 조성한 궁남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도교적 형식이 많이 반영되어 궁궐건물인 동궁안에는 돌을 쌓아 산을 만들고 연못에서 세개의 섬을 만들었으며, 후원에는 꽃나무를 심고 오늘날 동물원처럼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궐인 경복궁의 경회루나  향원정, 창덕궁 후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으로 사신의 접대나 연회를 베풀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규모는 조선시대 궁궐에 비해서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안압지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대부분 실생활에 사용하던 것이라 한다. 출토된 유물 중 많은 부분은 궁궐건축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형태의 기와와 벽돌, 난간 등 건축부재들이다. 이들 건축부재들은 상당히 화려한 외형을 하고 있는데, 녹유기와나 화려한 용무늬가 새겨진 기와, 보상화무늬를 비롯하여 당시에 유행하던 문양이 새겨진 벽돌과 전돌 등과 목재에 사용되었던 화려한 금동장식 등으로 볼 때 조선시대 궁궐에 비해서 상당히 화려하게 지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목조건축을 대표하는 곳으로는 백제 장인 아비지가 만들었다는 황룡사구층목탑을 비롯하여 임해전지의 궁궐건물들, 월성 남쪽 남천을 건너는 다리인 월성교 등이 있으며,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백제의 목조건축기술이 신라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안압지와 통일신라의 궁궐건축(복원), 안압지는 궁궐 안에 만들어진 연못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쓰였던 많은 건축부재들이 출토되었다. 이 건축모형은 안압지에서 출토된 건축부재들을 근거로 실물을 복제한 것이다. 재현된 건축모형을 통해 통일신라시대 궁궐 건축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출처:경주박물관>


유물로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용얼굴무늬기와를 실제 사용했던 모습. 지붕 모서리끝을 장식하던 용얼굴무늬 기와가 눈에 띈다.


서까래와 연꽃문양을 비롯한 많은 문향이 새겨졌던 암막새와 수막새 기와

건축부재 공포(Bracket structure)
공포는 한국, 중국,일본의 전통 목조 건축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재인데,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는 동시에 분산시키기 위하여 기둥머리 같은 데에 짜맞추어 댄 나무쪽을 말한다. 안압지에서 발견된 첨차와 소루 같은 건축부재들은 통일신라시대 궁궐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출처:경주박물관>


지붕을 받치는 기둥과 공포


첨자


소루(Wooden connecting piece)와 소루간벽


돌난간(복원). 안압지 서쪽 호안에 인접한 건물터 5개소 가운데 가장 북쪽에 위치한 제5건물터에 설치되었던 돌난간이다. 발견 당시 파손된 부분이나 빠진 부재는 수리하고 새로 만들어 복원하였다. 난간 양쪽 끝에 8각형의 기둥을 세우고 그 가운데 세개의 동자주를 세웠다. 기둥 사이에는 두 단으로 돌난대를 설치하였는데, 나무난간과는 달리 살대는 생략하였다. <출처:경주박물관>


난간, 안압지에서는 네모난 부재를 수직과 수평으로 연결시켜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드는 난간살대가 많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모양의 살대는 칠곡 송림사전탑에서 발견된 사리엄장구의 난간장식이나 통일신라시대 사찰인 남원 실상사 백장암의 삼층석탑 난간장식에서도 확인되듯이 당시에 유행했던 형식이다. <출처:경주박물관>


용얼굴무늬기와


녹유연꽃무늬 수막새, 유약을 입혀서 구운 녹유기와로 통일신라시대 궁궐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녹유 당초무늬 암막새,

녹유와 (Roof tiles in green glaze)
도자기의 표면에 유약을 입히면 유리질의 막이 형성된다. 또한 유약에 철이나 구리, 코발크 등의 산화금속 화합물을 혼합하면 여러가지 색깔을 낼 수 있다. 유약의 매용제로 납을 쓰면 녹색을 띠는데, 녹유와는 점토로 성형한 뒤 납을 매용제로 한 유약을 발라 700~800도의 저온도에서 구워낸 기와이다. 안압지에서는 녹유를 입힌 암막새, 수막새, 벽돌이 출토되었다. 월성, 사천왕사터, 감은사터 등에서도 녹유와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러한 녹유와는 궁궐이나 중요 사찰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경주박물관>


용얼굴무늬기와


용얼굴무늬기와


보상화당초무늬 모서리기와. 보상화무늬는 모란꽃과 연꽃의 무늬를 융합시킨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여러가지 꽃이나 잎의 무늬를 결합하여 만든 인공적인 꽃무늬이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식물문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실크로드를 통한 대표적인 동서문화교류의 사례이다. 이슬람에서 많이 사용하는 식물문양도 이와 비슷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철로 만든 건축부재


용얼굴무늬기와


용무늬얼굴기와


연꽃무늬 마루수막새, 기린무늬 타원형수막새


'의봉4년개토'명 암키와. '의봉4년'은 679년이라는 제작년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 기와의 편년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무왕 19년(679)에 동궁을 세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동궁 창건에 사용되었던 기와로 추정된다. <출처:경주박물관>


'습부'명 암키와편. 암키와 등면에 양각된 '습부 習部'와 '습부 習府'는 부部와 부府의 뜻은 다르나 발음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당시 신라인들은 발음대로 한자를 썼던 것으로 보여진다. 습부라는 명문은 습비부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경주박물관>


금동 연꽃봉우리장식. 목재기둥이나 난간 등을 장식했던 금동으로 만든 화려한 장식품이다. 통일신라시대 궁궐건물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시대에는 목재의 단면인 마구리나 서까래끝에도 금동으로 장식했던 유물들도 출토되고 있다.


금동 연꽃봉우리장식


금동마구리장식


금동서까래장식


임해전지에 있었던 동궁 건물을 복원한 모형


임해전지에 복원되어 있는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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