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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는 이민족과 치열한 투쟁이 계속된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를 계승한 국가로 이전 시기의 왕조로 가장 중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와는 다른 성격을 보이는 왕조였다.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서역의 많은 문물들과 종교, 사상들이 전래되었고, 동시대 세계를 휩쓸었던 이슬람이 절정기를 이루던 시기이기도 하다. 남북조시대에 중국에 본격적으로 전해진 불교는 당나라때에 전성기를 이루며, 한나라 이후 노장사상이 민간신앙과 결합된 도교는 황실의 후원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또한 국가 정치체제의 중심인 유교 또한 학문과 정치의 중심으로 그 역할이 줄어들지 않았으며, 사회 체제로서 그 중심은 더욱 굳건해 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교, 불교, 도교  이외에도 서역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마니교, 이슬람교 등도 장안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사원을 개설하고 민간에 널리 퍼졌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다종교, 다원화된 문화를 가진 사회로 종교를 대하는 입장이 현대 사회와 가장 비슷한 왕조였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시대에는 여러 종교들이 있었지만 민간에서는 불교가 가장 번성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불교사원이 세워졌으며, 현장법사를 비롯한 많은 구법승려들이 인도를 방문하여 대승불교 경전을 가져왔으며, 이를 번역하는 작업 또한 당나라시대에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불교 또한 당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으며, 팔만대장경을 비롯하여 많은 불경들이 당나라시대에 한자로 번역된 것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당시 신라인으로서 당나라에서 불경 번역에 큰 업적을 이룬 승려도 있고, 혜초처럼 구법승려로서 인도를 방문하여 여행기를 남긴 승려도 있다. 또한 이시기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으로는 돈황석굴을 비롯하여 많은 석굴사원들이 세워졌다.

장안 사람들의 정신세계
당대에는 종교적으로 개방적이어서 여러 종교와 민간신앙이 크게 발달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도교와 불교가 유행하여 불교사원과 도교사원이 전국으로 퍼지고 그 교파와 이론이 발생하였습니다. 도교와 불교가 서로 세력을 다투기도 하였습니다. 637년 태종이 조의에서의 자리를 도사, 승려의 순서로 정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국 황제들은 측천무후를 제외하고는 도교 세력이 앞서도록 하는 순서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불교측의 저항도 격렬하였으나 도교, 유교, 불교의 서열을 기조로 하는 종교 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교는 황실의 보호 아래 성장을 이루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교의 번성에는 미치지 못하여 도관의 수는 불교 사원의 1/3에 불과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분파, 마니교, 이슬람교 등 여러 서양 종교가 유입되어 당시 종교 문화는 더욱 다양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불교문화의 황금기
장안성에는 많은 불교 사원들이 밀집해 있었고 황실의 지원 아래 인도의 불교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역경이 이루어졌습니다. 역경은 태종(재위 627~649년) 때부터 시작하여 헌종(재위 805~820년) 때에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주로 대승불교 경전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장안성의 흥선사, 자은사, 천복사는 장안의 3대 역경장소로 유명하였습니다. 645년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귀국하면서 가져온 불교 경전을 불에 타지 않는 곳에 보관하기 위하여 자은사에 대안탑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고종(재위 650~683년)과 측천무후(재위 684~705년)의 지원 아래 용문석굴의 봉선사가 낙성되었습니다. 돈황석굴의 많은 동굴들이 당대에 개착되는 등 무종(재위 841~846년)의 폐불 이전까지 석굴사원으로 대표되는 불교 사원의 개착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청동관음보살입상, 섬서성 보계시 출토, 당 8세기 후반

보관의 정면에 새겨진 화불좌상, 오른손에 쥔 버드나무 가지, 왼손에 든 정병으로 보아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상체에는 드리개가 달린 목걸이와 함께 조백을 비스듬하게 착용하였다. 살이 오른 얼굴과 살이 찐 신체표현, 전체적으로 과장되면서도 경진된 조형성으로 보아 제작시기는 성당시기 이후로 추정된다. <출처:경주박물관>


금동관음보살입상, 중국1급문물, 출토지 미상, 당 7세기. 광배와 대좌를 따로 만들어 상과 결합하였다. 비교적 단순한 형식의 대좌와 광배, 2단으로 걸친 천의 형식과 긴 영락장식, 수대 보살상을 연상시키는 얼굴표정, 비교적 큰 손과 발의 크기, 과장되지 않은 삼굴자세 등으로 보아 초당시기인 7세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보인다. <출처:경주박물관>


금동불좌상, 섬서성 폐품장 발견, 당 8세기. 옆면에 산상이 뚫린 8각의 높은 받침대와 상중하 3단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의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불좌상이다. 왼손을 무릎 위에 대고 오른팔을 올린 이와 같은 수인은 당대 아미타불좌상에서 자주 보인다. 명상적인 얼굴표정을 비롯하여 대좌형식과 전체적인 조형성 등, 성당시기인 8세기 조각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출처:경주박물관>


보살입상, 옆면에 큼직하게 안상이 뚫린 6곡능형의 받침대 중앙에서 연꽃이 피어나고 그 위에 보살상이 서 있는 모습이다. 목과 허리와 무릎을 살짝 굽힌 자연스러운 삼굴자세, 적절한 신체비례, 이상화된 얼굴표정은 성당시기에 제작된 보살상의 특징이다. <출처:경주박물관>


흙으로 찍어 만든 불상, 서안시 소토문촌 출토, 당 7세기.

모양을 새긴 틀에 진흙을 눌러 찍어 그늘에서 말린 후 낮은 온도에서 구워 만들었다. 당대에 유행했던 이와 유사한 부조상의 뒷면에는 선업니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이들을 흔히 선업니불상이라 부른다. 현장을 비롯한 구법승들이 인도에서 새롭게 가져온 이국적인 불상을 모본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경주박물관>


석조삼존불, 서안시 서시유적 출토, 당 8세기 후반

상중하 3단으로 구성된 연화대좌 위에 본존불이 앉아 있고, 그 양 옆으로 보살이 협시한 당대의 전형적인 삼존불상이다. 특히 왼손을 무릎위에 대고 오른손을 올린 본존불의 수인과 좌협시보살의 보관에 새겨진 화불로 보아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진 아미타삼존불임을 알 수 있다. 살 찐 얼굴 모습과 경직된 표정, 빈약한 하체의 표현, 음각선 위주의 옷주름 처리 등으로 보아 제작시기는 성당시기 이후로 추정된다. <출처:경주박물관>


은제역사상, 출토지 미상, 당 7세기

무기를 든 채 역동적인 자세로 위협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역사상이다. 네 구 모두 콧수염이 달린 험상궂은 얼굴의 이른바 서역인 무사의 용모를 특징으로 한다. 머리에는 단순한 형태의 보관을 썼고, 몸에는 갑옷의 일종인 명광개를 착용하였다. 머리 뒤로는 이 중의 화염광배를 둘렀고, 발 아래에는 대좌가 있다. 이 역사상들은 본래 어딘가에 부착하여 장식했던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 통일신라 감은사지 석탑 출토 사리함의 사천왕상과 비슷하여 흥미롭다. <출처:경주박물관>


감은사지 출토 사리함. 동시대에 만들어진 것을 비슷한 형태의 사천왕상을 볼 수 있다.


손잡이 달린 향로, 서안시 출토, 당 7세기. 승려들이나 신도들이 불교 의식에서 공양할 때 사용하였던 청동향로이다. 몸체와 손잡이의 연결부분은 둥글고 볼록한 여의두와 비슷하게 처리되었고, 손잡이 끝부분은 아래로 접혀 있다. 손잡이가 달린 향로 중에서도 장식이 적은,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것이다. <출처:경주박물관>


춘추인물고사무늬 단지, 중국 1급 문물, 섬서성 유림배은촌 출토, 당 9세기. 항아리 표면을 세부분으로 나누어 여러 인물이 함께 모여 있는 옛 이야기를 표현하였다. 옆에 적힌 글씨로 보아 춘추시대 학자인 자로를 비롯하여, 영공문정, 소정묘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당나라 말기에는 유가와 관련된 소재의 문양이 금은 그릇에 응용되었다. <출처:경주박물관>


도교, 불로장생의 염원
당대에는 도교가 성행하여 연단술이 발달하였고 사람들은 불로장생을 누리기 위하여 다투어 단약을 복용하였습니다. <신당서> 방기전에는 고종이 방사를 불러 황금으로 연단하였고, 현종이 도사 장과와 손증을 불러 연단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도교가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현종 떄였습니다. 현종은 노자가 지은 <도덕경>의 주석서를 내고, 집집마다 한권씩 소장하게 하였습니다. 당태종부터 희종까지 거의 대부분의 황제들이 도교의 연단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은제단지, 서안시 하가촌 출토, 당 8세기. 은으로 만든 작은 단지 4점의 도교의 연단에 사용되는 광물들과 함께 하가촌 창고 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이 단지의 입구는 작은 구멍을 되어 있다. 연꽃무늬 받침이 있는 은으로 된 단지 또한 받침에 0.5cm정도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은제 용기들은 모두 연단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경주박물관>


뚜껑달린 동제병, 서안시 출토, 당

벌어진 아가리에 얇고 긴 목, 둥근 어깨, 볼록한 배부분, 나팔모양의 낮은 굽이 특징이다. 뚜껑 안쪽 면에 은으로 된 막대가 연결되어 있다. 뚜껑 안쪽면에 은으로 된 막대가 연결되어 있다. 뚜껑을 닫으면 막대가 병 내부에 삽입된다. 이러한 형태의 은병은 매우 드문데, 술을 담는 용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은으로 된 막대는 남은 술의 분량을 재는데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경주박물관>


은으로 된 막대

섬서역사박물관
섬서역사박물관은 중국 최초로 현대화된 대형 국가급 박물관으로서 1991년 6월 20일에 개관하였습니다. 중앙에 전당을 두고 네 모퉁이에는 높은 누각을 두는 당대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질서정연하면서도 변화를 둔 건물 구성은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며 장중한 멋을 풍깁니다. 또한 중국의 전통과 지방색, 시대정신을 고려해 지어진 건축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총면적 65,000㎡, 건축면적 55,600㎡, 유물보관실 8,000㎡, 전시실 11,000㎡ 규모이며 선사시대부터 근대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상주시대의 청동기, 각 시대의 토우, 당나라 금은기와 무덤벽화 등이 가장 두드러진 소장품입니다. 상설전시관에는 하가촌 출토 금은기를 비롯, 당나라 무덤벽화 역대 그림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섬서역사박물관은 해마다 100만 여명에 달하는 국내외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중국 문화를 알리고 대외 문화 교류를 진행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