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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당왕조 사회의 국제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로 금과 은을 비롯한 금속제 생활용기들을 들 수 있다. 이전시기에도 청동으로 만든 동기를 비롯하여 금속제 용기들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는 제례의식과 관련된 의기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의 문화와 문물이 들어오면서 로마를 비롯하여 페르시아, 중앙아시아의 소그드 등에서 많이 만들어졌고 사용되었던 금속제 생활용품들이 당나라 장안의 상류층에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나라 등을 거쳐 실크로드 동단에 위치한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백제 말기의 부여나 신라에서 화려한 금은그릇 등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물왕대 이후 황금시기로 불리는 신라의 고분에서는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금속제품들이 출토되는데, 이는 당나라와의 교류라기보다는 그 이전 남북조시대에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 많은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당나라와 함께 동시대 문화를 공유하고 활발히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 부근에서는 1970년대 이후에 당나라시대 유적들에서 금은으로 만든 많은 생활용품들이 출토되었는데 중요한 유적지로는 서안 하가촌, 강소성 단도 유적, 섬서성 법문사 등이 있다고 한다. 당나라 금속세공제품은 안녹산의 난 이전에는 중앙아시아의 소그드와 사산조 페르시아, 동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며, 당나라의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약해지기 시작하던 안녹산의 난 이후에는 중국 고유 형태의 것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금은 그릇
고급 재료인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은 화려한 당나라 상류계층의 생활을 잘 보여줍니다. 금은 그릇은 용도에 따라 음식, 술, 차, 약 등을 담는 그릇과 장식품 등이 있습니다. 그릇에 새겨진 무늬는 새를 비롯한 동물, 식물, 인물, 고사 등이 많습니다. 금은 그릇은 1970년대 서안 하가촌 유적(270점), 1983년 강소성 단도 유적(957점), 1987년 섬서성 부풍의 법문사(121점)에서 대량으로 발견되어 발전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755년 안녹산의 난 이전에 제작된 하가촌유적 출토품은 그릇 모양과 무늬, 제작기법 등이 중앙아시아의 소그드, 서아시아의 사산조 페르시아, 지중해 연안 동로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안녹산의 난 이후에 제작된 법문사 출토품은 외래 영향은 적으며 중국의 전통이 강해 도자, 동기, 칠기를 모방한 것이 많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은그릇, 서안시 하가촌 출토, 당 7~8세기. 당나라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은으로 만든 그릇이다.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화려한 용기이다.

옆면에 접힌 부분이 있고 굽은 곡선형의 권족이다. 두드려 만들었으며 그릇 안쪽은 돌려 만든 흔적이 있고 표면에 광택이 있다. 그릇 안쪽 바닥에 '십이량반'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이는 그릇의 무게를 뜻한다. 1량은 약 40g을 나타낸다. <출처:경주박물관>


넝쿨무늬 은국자, 섬서성 유림배음촌 출토. 손잡이가 가늘고 긴 은제국자이다. 구부러진 손잡이에 전체적으로 도금을 하고 넝쿨무늬와 물고기알무늬를 장식하였다. <출처:경주박물관>



은국자, 서안시 한삼채 출토. 민무늬이며 국자의 앞부분는 4귀엽의 꽃입모양이다. 망치로 두드려서 모양을 잡았다. 부드러운 곡선형으로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격조가 높다. <출처:경주박물관>


은쟁반(섬서성 유림배음촌 출토)은 평면이 4곡의 해당화 모양이다. 테두리가 넓고 바닥의 깊이는 깊지 않다. 몸체에는 무늬를 표현하지 않았다. 꽃잎모양 은접시(섬서성 유림배음촌 출토), 다섯 갈래의 꽃잎이 펼쳐진 모양으로 무늬가 없으며 바닥이 약간 솟아 있다. 망치로 두드려서 형태를 만들었다. 은접시(서안시 하가촌 출토, 당 7~8세기)는 망치로 두드려 형태를 만들고 몸체는 도금하였다. 옆면이 둥글게 처리되었고 깊이는 얕다. 바닥 윗면에 구름 사이를 나는 까치 세마리가 새겨져 있다. <출처:경주박물관>


은접시, 서안시 하가촌 출토, 당 7~8세기. 왼쪽은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얕고 넓은 원반형의 은접시이다. 민무늬지만 물레로 돌려 제작하여 물레 자국이 선명히 모인다. 은그릇(오른쪽)은 입이 벌어져 있고 높이가 낮으며 바닥은 편평하다. 두드려서 만들었고, 표면은 아무런 장식을 넣지 않은 채 광택 처리하였다. 용도는 세면도구이다. <출처:경주박물관>


은젓가락, 서안시 왕가분 출토, 길다란 젓가락으로 민무늬이다. 은으로 만든 젓가락은 음식의 독을 검사하는데 썼으며 당대 귀족들의 호화스러운 생활방식을 보여준다. <출처:경주박물관>


금은평탈경, 출토지 미상, 당 8세기. 청동으로 만든 동경은 청동기 시대 이래로 제례의식에서 권위를 나타내는 의기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지배계층의 사치품으로 바뀌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금은으로 만든 화려한 금속세공품으로 만들어진 거울이다.

거울 뒷면에 넝쿨무늬로 바닥을 덮고 난새 두마리와 천마가 하늘을 날고 있다. 그 사이에는 날짐승 네마리가 날고 있다. 풀잎의 가운데 부분을 금점으로 장식했다. 금은평탈경은 당나라 때 새로이 나타난 거울인데, 세공이 정밀하고 재료와 공을 많이 들어서 주로 황족과 고관이 사용했던 공예품이다. 선물용으로도 쓰였다. <출처:경주박물관>



원앙무늬잔, 중국 1급문물, 서안시 하가촌 출토, 당 8세기. 이전 시기의 유물들과는 확연이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 금속세공품이다.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의 금속세공기술이 전해져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네모난 형태의 귀가 한 쌍 달려 있다. 잔 전체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그릇 바닥은 여러겹의 꽃무늬로 되어 있다. 안쪽의 절지화 무늬는 꽃과 잎이 무성하다. 바깥면에는 넝쿨무늬와 기러기, 원앙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모양의 잔은 중국 고대에 술을 담았던 것으로 전국시대에 나타나 한나라 때 널리 쓰였다. 당나라 때 만들어진 잔은 한나라의 칠기를 주로 모방하였고 당 이후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출처:경주박물관>


은제단지, 서안시 하가촌 출토, 당 8세기. 손잡이와 뚜껑이 있고 바탕은 민무늬이다. 뚜껑 안쪽에 '구량'이라는 글자가 있다. 양쪽 어깨에 고리를 달아 손잡이와 연결했다. 한 쪽 연결 부분에 19마디로 된 쇠사슬 고리가 있다. <출처:경주박물관>


은그릇 뚜껑, 섬서성 유림배음촌 출토, 당 8세기. 손잡이가 달린 그릇의 뚜껑이다. 밧줄무늬가 이 뚜껑을 4개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각 부분마다 나뭇가지와 꽃이 장식되어 있고 전체 뚜껑 테두리는 꽃잎무늬를 둘러 장식했다. 손잡이 안쪽에는 해수를 밖으로 타출하여 장식하였고 물결무늬를 넣었다. <출처:경주박물관>


해당화모양 접시, 서안시 출토, 당 9세기. 4곡의 해당화 이다. 정면 아래에 날개를 펴서 날아오르려는 원앙 한 마리가 새겨져 있고 주위에는 권초무늬, 연꽃무늬, 구슬무늬가 새겨져 있다. 가장자리에 꽃잎이 6갈래인 작은 꽃을 장식했는데, 배치가 가지런하고 정교하다. 만당(836~907) 시기의 작품이다. <출처:경주박물관>


꽃무늬 은그릇, 출토지 미상, 당 8세기.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져 있고 배부분이 부풀어 있으며 얕은 굽이 달려 있다. 구연과 굽 부분을 기하학적인 무늬로 장식하였고 그릇 표면에는 절지화 무늬를 새겼다. <출처:경주박물관>


기러기 무늬 물그릇, 중국 1급문물, 서안시 하가촌 출토, 당 8세기.옆면을 한 쌍의 원앙과 기러기무늬로 장식하였고 그 사이에 식물무늬를 배치하였다. 원래는 큰 기러기를 홍, 작은 기러기를 안이라 했다. 기러기는 높이 날아 멀리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커다란 뜻과 진취적인 기상을 지닌 군자를 비유하는데 쓰였다. <출처:경주박물관>

장안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당 장안성의 인구는 대략 100만명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방과 두 시장 지역에 거주하였습니다. 성 전체에는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되었고, 해가 진 뒤에는 방의 문을 닫고 이튿날 다시 열었습니다. 이처럼 장안의 도시생활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일몰 후 에는 활동에 제약을 받았습니다. 시장은 공업과 상업, 무역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동시에 서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외의 지역에도 점포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상업의 발달은 방리로 구획되어 활동에 제한을 받았던 일상 생활에 새로운 변화를 이르켰습니다. 특히, 장안성 숭인방에서는 '밤낮으로 북적거리고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기록과 '야시장이 열리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로 보아 상업의 발달로 활기에 찬 당나라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짐작하게 합니다. 시장에서 거래하였을 금은제 그릇들과 도자기, 당삼채를 보면 당시 상류계층의 풍요로운 일상생활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출처: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