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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삼채는 중국 역사상 가장 국제적인 성격을 지녔던 왕조인 당대(618~906년)에 만들어졌던 도기로 3가지 색상의 유약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도기에 녹색, 갈색, 황색, 백색 또는 코발트이 남색을 입혀서 칠한 것으로 그릇을 비롯한 생활용품과 무덤의 부장품이나 장식용으로 만든 남녀 인물상, 신상, 전설상의 동물, 말 등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진시황 무덤에서 발견된 토용이나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이형토기와 같은 용도로 죽은자가 사후세계로 가는 길에 동행하는 의미를 가진 부장품이 주된 용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귀족들이 취향이나 생활모습, 복식 등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당시 수도였던 장안이나 귀족들이 많이 살았던 낙양의 무덤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다. 안녹산의 난 이후 당나라의 국제적 영향력이나 경제력이 쇠퇴하면서 당삼채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을 대표하는 유물 중 상당수 이 시기에 만들어진 당삼채로 만들어진 것이다.

당삼채
삼채는 세가지 정의 색이 하나의 용기에 드러나는 도자기로 풍부하고 다양한 색채와 형태로 유명합니다. 삼채는 초당시기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성당시기에 가장 성행하였고, 안녹산의 난 이후 국력이 쇠퇴함에 따라 점차 생산이 줄어들었습니다. 수도였던 장안과 낙양의 무덤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남방의 무역도시 양주에서도 출토됩니다. 당삼채 제품은 크게 생활용품과 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생활용품으로는 병, 항아리, 사발, 접시, 잔, 벼루, 향로, 베개 등이 제작되었습니다. 용은 장식으로 사용하거나 무덤 부장용으로 사용하며, 귀부인, 시종, 문관, 무사, 악사 등의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이외에 말, 낙타, 노새, 소, 사자, 호랑이, 닭, 오리, 원앙 등의 동물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피리부는 기마인물상, 섬서성 의덕태자묘 촐토, 당 706년경

모리에 풍모를 쓰고 진지한 모습으로 피리를 불고 있다. 의덕태자 이중윤은 당 중종의 장자로 중종과 위황후 사이에서 출생한 유일한 아들이었다. 고종때 황태손으로 책봉된 후 701년 19세의 나이에 측천무후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705년 이현이 새로 황위에 오른 후 이중윤을 의덕태자로 추증하고 묘를 능으로 격상시켜 예우했다. 의덕태자묘에서 천 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이 유물은 말을 타고 악기를 연주하는 여러 도용 가운데 한 점으로 의덕태자가 의장을 갖추고 출행할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출처:경주박물관>


삼채천왕상(Tricolor heavenly king), 서안시 출토, 당 8세기. 지금도 사찰입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천왕상이다. 불교가 크게 융성했던 당대에 무덤의 수호신 성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체격이 크고 위풍당당하다. 머리에는 짐승모양의 관을 썼으며 갑옷을 입고 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있고 고함을 치듯 벌린 입 사이로 치아가 보인다. 오른손은 허리에 두고 왼손은 주먹을 쥐고 있으며 발로 악귀를 밟고 있다. 천왕상은 당나라 때 새로 나타난 부장용 도용인데, 일반적으로 무덤의 문 안쪽에 두어 벽사를 기원하며 재앙을 물리치는 용도로 쓰였다. <출처:경주박물관>


삼채여인상, 서안시 출토, 당 8세기. 가늘고 여린 하체에 비해 상체와 머리가 발달하였다. 채색은 양 어깨와 소매 등 주로 상체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얼굴과 작은 이목구비, 미소 띤 표정은 당대 여인용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출처:경주박물관>


남장한 채색여인상, 서안시 한삼채 출토, 당 8세기

당나라 때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회분위기를 배경으로 여성들도 복식의 아름다움을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또한 '남녀의 복식에 차이를 둔다'는 전통적인 예법을 깨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남자의 복식을 착용했다. <구당서> <여복지>에 당시 여자들이 남자의 복식을 착용한 상황에 대해 '천보 연간(742~756년)에 사류의 처가 남편의 옷을 입고 가죽신, 적삼, 모자를 착용했는데 내외일관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출처:경주박물관>


객사도(모사본), 당 706년, 섬서성 건현 장회태자묘 묘도 동벽, 고구려나 신라의 복식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고구려벽화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 그림에 나타난 조우관을 쓴 사신의 존재에 대해서 발해, 고구려, 신라의 사신일 것이라는 여러 의견들이 있는데, 연대와 당시의 국제관계 등을 고려해 볼 때 신라의 사신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 듯 하다.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아들로서 모함을 받아 사망한 장회태자 이현(654~684) 무덤의 벽화를 모사한 것이다. 원본은 지금 섬서역사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화면 왼쪽에 투명한 복두를 쓰고 소매가 긴 관복을 입은 세명의 당나라 관리가 그 오른쪽으로 대머리에 매무리코를 지닌 인물, 머리에 두 개의 깃털을 꽂고 긴 소매에 공수자세를 취한 인물, 그리고 털모자를 쓴 인물인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이 벽화는 홍로시 등, 외국 사신의 응대를 담당하는 전문 부서를 설치하여 외국과 활발하게 교류했던 당의 국제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당나라 벽화에 등장하는 고구려 사신은 머리에 새 깃털달리 조우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되어 이 벽화에서 깃털달린 모자를 쓴 인물도 한국에서 간 사신으로 추정된다. 그 국적에 대해서는 고구려, 신라, 발해 등 설이 다양하지만, 이 벽화가 중종이 황제로 복위하면서 그의 형인 장회태자를 복권시키고 706년 건릉에 배장할 때 그려진 사실을 참고하면, 통일신라의 사신일 가능성이 크다. <출처:경주박물관>

십이지신은 땅을 지키는 열두신장으로 쥐(子), 소(丑), 호랑이(寅), 토끼(卯), 용(辰), 뱀(巳), 말(午), 양(未), 원숭이(申), 닭(酉), 개(戌), 돼지(亥)의 12마리 동물을 형상화 하였다. 십이지에 대한 개념은 1년 12개월의 의미하기도 하며, 메소포타미아의 60진법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방위와 시간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등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개념이기도 한다. 12개념을 동물로 형상화한 것은 한나라대 이후이며,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당나라대에는 시간을 가리키는 신으로 도입되었으나, 도교의 방위 개념과 결합하여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사신도에 볼 수 있는 사신이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이었으나 당대이후에는 12지신으로 바뀐것으로 보인다.

쥐(子), 소(丑), 호랑이(寅)


토끼(卯), 용(辰), 뱀(巳),

말(午), 양(未), 원숭이(申)


닭(酉), 개(戌), 돼지(亥)

십이지상, 서안시 출토, 당 8세기 후반
얼굴은 12간지 동물을 형상화했다. 몸은 사람모양으로 목이 길고 옷깃과 소매가 널찍하다. 옷은 발 아래까지 늘어져 있고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으고 있다. 12간지 동물 도용을 부장하는 풍습은 북위 때 처음 나타났으며, 수나라 때부터 8세기 중반인 당 현종 천보연간까지 사실적으로 묘사된 도용이 유행했다. 이 십이지상은 8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출처:경주박물관>

십이지상
당대 십이지상은 묘지석에 새기거나 동경의 무늬로서 또는 도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초기에는 동물 형태로 만들어졌으나 점차 몸은 사람이면서 얼굴은 동물인 형태로 변화합니다. 당말기에는 동물모양을 안고 있는 모양으로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도용으로 만들어진 십이지는 주로 무덤의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최근에 무덤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하여 파 놓은 도랑에 자오선을 중심으로 12방향에 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십이지상들이 발견되어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들은 각 방향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