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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안압지관] 통일신라의 생활용기, 토기와 벼루

younghwan 2012. 7. 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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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신라시대에는 무덤은 불교가 도입된 이후 6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신라의 전통 매장방식지 돌무지덧널무덤양식이 없어지고 고구려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돌방무덤이 일반화되고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증가하면서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은 토기가 급격히 줄어들어 실제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는 현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의 토기는 신라의 토기를 기반으로 하여 고구려.백제의 문화가 융합되고 당나라의 발전된 도자기와 금속용기의 형태 및 문양이 토기에 반영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의 토기에는 그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다양한 문양들이 새겨졌는데, 사람이나 동.식물의 형상을 새긴 이전과는 달리 불교의 영향을 받은 추상적인 문향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런 문양은 토기표면에 여러가지 무늬를 새긴 새기내를 눌러 찍어서 장식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 크게 유행한 기법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들이 드문 반면에, 안압지 연못에 묻혀있던 다양한 토기들이 남아 있다. 안압지에서는 약 1600여 점에 이르는 토기들이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이전의 고분 껴묻거리로 만들어진 토기들과는 달리 신라 궁궐에서 실제로 사용하던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당시 실생활에서 사용되었던 토기의 경향을 잘 보여주듯이 굽다리접시, 완, 접시 등의 대부분이며, 궁궐에서 실제 불을 밝히는데 사용했던 등잔들도 많이 출토되었다. 


통일신라의 생활용기, 토기
안압지에서는 1,600여 점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토기의 종류는 200여 가지에 이르지만 도장무늬 토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신라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들과는 달리, 당시 궁궐에서 쓴 생활용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출토된 토기의 종류는 굽다리접시.완.접시.뚜껑이 대다수이며 그 밖에 등잔.뼈단지.풍로.매병모양토기 등이 특기할 만하다. 토제 등잔은 모두 157점이 출토되었는데, 불을 밝히던 기름찌꺼기가 남아 있는 것도 있다. 또한 단청용 안료를 담았던 접시나 단지, 완 등도 출토되었다. <출처:경주박물관>


사람얼굴장식토기


접시, 굽다리접시


작은단지


굽다리접시,


사람무늬대접


뚜껑굽다리접시

 

 

찍은무늬토기
찍은무늬토기는 통일신라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토기 표면에 여러 가지 무늬 새기개를 눌러 찍어서 장식한 토기들이다. 무늬를 찍는 방법은 하나의 무늬판을 연속해서 계속 찍거나, 한번 누른 뒤 한쪽 끝을 들어 비껴서 찍는 것, 또 무늬를 엇갈려서 계속 찍는 방법 등이 있다. 무늬는 새나 구름 등을 단순화시킨 것도 있지만, 마름모나 원형 등의 추상적인 무늬가 많다. <출처:경주박물관>


찍은무늬합,


찍은무늬사발


찍은무늬 병

 

토기뚜껑, 찍은무늬 뚜껑


찍은무늬 목 긴 항아리

찍은무늬 토기


단청용 그릇
안압지에서는 단청용 그릇들이 출토되었는데 이 가운데 손잡이 달린 단지에는 주황색을 내는 단청 안료인 장단칠이 묻어 있었다. 또 다른 항아리에는 표면과 안쪽 전체에 석간주가 칠해져 있었고, 그릇 표면이 불에 그을렸던 흔적도 있어 안료를 넣고 끓여 필요한 양 만큼 떠내어 썼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경주박물관>

단청용 그릇


작은 항아리, 작은단지


대야


네귀달린 항아리


매병모양토기, 항아리


접시, 찬합모양토기


시루


풍로


등잔


항아리

벼루
벼루는 먹을 가는 둥근 면을 여러 개의 다리가 받치고 있는 백족연과 둥근 면을 원통형으로 받친 두 종류가 있다. 비교적 고온에 구워 짙은 회색을 띠는데, 그 중에는 먹이 묻어 있는 것과 장기간의 사용으로 벼루면이 닳은 것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도기벼루나 돌벼루를 사용하였다. <출처:경주박물관>


돌벼루, 흙벼루


녹유 벼루다리, 녹유 벼루편


다리달린 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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