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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한탄강변에 위치한 전곡리 유적은 1978년 미군 병사에 의해 처음 확인된 이후 10여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유적지에서 발굴된 뗀석기인 아슐리안형 석기는 이전까지는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된다고 알려졌으나, 이후에 계속된 발굴.조사 결과 한반도와 일본을 비롯해서 동아시아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한탄강을 휘돌아가는 현무암 대지 위에 상당히 넓게 자리잡고 있으며, 이 지역의 지층 조사결과 구석기문화층은 30만전에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현무암층 위에 형성되어 있어 그 연대를 대체로 20만년전 부근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 것 같다.

 전곡리 유적지내에 위치한 표층전시관에서는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기 보다는 이곳에 처음을 발굴조사를 시작한 지점에 발굴구덩인 2개의 피트(Pit)를 복원.전시함으로서 구석기유적 발굴.조사 과정을 설명하고, 발굴시 연대 등을 알려주는 토층과 유물들이 발굴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근처에 전곡리 선사박물관이 있기는 하지만, 박물관은 선사시대에 이해를 높이는 자연사박물관의 성격이 강한 곳이고, 실제 전곡리 유적지의 특성과 고고학적인 발굴.조사 과정을 이해하는데는 이곳 표층전시관이 더 유익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전시된 내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유적지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 방법에 대해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전시관이다.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 내에 위치한 전곡리 토층전시관.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구석기시대 유물은 주먹도끼 등이 발견된 곳으로 실제 주거유적지 등은 남아 있지 않다. 토층전시관은 유물발굴이 처음 시작되었던 곳을 발굴과정을 복원하여, 구석기 유물을 발굴하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유적발굴과정

1) 경시와 시굴, 수평계
발굴작업은 '경시'라고 하는 자로 치수를 재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경시를 하고 나면 굴삭기로 50cm 깊이까지 큰 범위의 땅파기, 즉 시굴을 시작한다. 보통 10m 간격으로 시굴하며, 일반적으로 깊이는 1~1.5m 이나, 주공아파트 건설예정지 발굴의 경우 8m 깊이로 진행하기도 했다. 크게 시굴을 하다가도 굴삭기 끝에 유물로 예상되는 물질이 걸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작업의 섬세함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발굴팀은 유물로 예상되는 위치를 페인트 등으로 표시한다. 막걸리를 놓고 그 자리에서 절을 하는 등 의례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굴삭기로 깊은 구역을 팔 때는 바로 직각으로 시굴하지 않고, 비스듬하게, 예각으로 시굴한 후에 삽을 이용하거나 직접 손을 사용하여 벽을 직각으로 다듬는다. 이 수평게는 시굴 작업에서 땅을 수평과 직각으로 파내는데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2) 삽질과 호미질
굴삭기로 50cm를 파 내려간 후, 삽과 호미를 이용하여 사람의 손으로 작은 규모의 시굴을 시작한다. "조그만 돌이라도 만나면 무조건 남긴다."가 발굴의 철칙이다. 삽에 부딪히는 느낌이 오면 삽 대신 호미로 살살 긁어내야 한다. 유물 지점을 둥글게 원통형으로 남긴 다음에는 발굴팀이 와서 붓질로 섬세하게 흙을 긁어내고 유물 자리에 표식을 붙인다. 유물을 걷어간 다음에는 한 층을 더 시굴할 지 판단한 후 반복해서 진행한다.                                <자료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전곡리 토층전시관 내에는 유물발굴과정을 보여주는 2개의 발굴 피트(Pit)인 EOS1-I와 EOS1-II피트를 복원해 놓고 있다. 이곳은 전곡리 유적지 최초 발굴조사 지점으로 발굴조사 후 매립하였던 것을 이곳에 토층전시관을 만들면서 재조사 후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고 있다.

EOS1-I와 EOS1-II피트
발굴 피트는(Pit)는 발굴한 자리 또는 발굴구덩이를 말하며 주로 측량기준점에서 동서남북 방향의 거리를 구별하도록 번호가 주어진다. 전곡리 선사유적발굴단은 1차 발굴당시에 측량 기준점을 세웠고 이 기준점에서 동서남북 방향 10m 간격으로 사각형의 평면이 구획되었다. 따라서 EOS1파트는 측량기준점에서 남쪽 10m, 동쪽 0m 떨어져 있음을 나타내며, I, II는 10m x 10m의 피트를 전면 발굴하기 어렵기 때문에 5m x 5m로 나누고 이를 적은 것이다. 이 EOS1-I와 EOS-II피트는 3차 발굴조사(1980년 10월 3일~12월 29일)에서 시작되어 4차 발굴(1981년 10월 16일 ~11월 15일)에서 집중적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적색점토층이 끝나고 시작되는 모래질 황색점토층에서 대량의 유물이 출토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이를 통하여 각 층위의 토양 및 암석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연천 전곡리 유적 발굴조사 기준점. 발굴은 매장되어 있는 고고학 자료를 가장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방법이며, 그 첫 단추는 측량기준점을 세우는 것이다. 전곡리 유적의 측량기준점은 1979년 제1차 발굴조사 당시 세워진 것으로 전곡리유적의 발굴의 진행에 있어서 기준이자 시작이 되는 지점이 된다. <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전곡리 토층 전시관내 복원되어 있는 발굴피트(EOS1-I).

발굴피트(EOS1-I)
EOS1-I피트의 규모는 동서 400cm이며, 남북은 500cm로 깊이는 북동쪽 170cm, 남쪽 295cm이다. 3차 발굴조사에서 시작되어 4차 발굴조사에서 완료되었으며 피트 내 서쪽에서 직경 50cm정도의 암석이 발견되었다. 이 암석은 인간의 의해 운반된 것으로 보이며 모서리가 닳은 흔적이 남아 있어 석기제작시의 모룻돌이나 석기의 재료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4차 발굴조사가 완료된 이후 원래의 상태로 매립되었다가 2005년 3월 전곡리 전시관 신축공사를 위하여 재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최초 발굴조사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발굴피트(EOS1-I)의 토층. 상단부 I층(황갈색 점토층),  II층(황적색점토층), III층(적색점토층),  IV층(사질암입황색점토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I층(황갈색점토층)은 지표(표토층) 아래 두께 30-35cm로 형성된 층으로 식물의 뿌리 등이 섞여 토양의 부식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흙의 색, 점성 등에 차이가 있는 곳이 많다. II층(황적색점토층)은 50~60cm 내외의 두께를 가지고 있으며, 황갈색점토층 아래 35cm 정도에서는 5~15cm 크기의 자갈돌이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는데 자갈돌 자체에 인공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III층(적색점토층), 적색점토층의 두께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피트의 중심위치에서는 매우 얇아 10cm 내외이며, EOS1-II피트와 연결되는 동북모서리는 90cm 정도로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층이 상당히 불규칙하여 제IV층과 혼합되는 양상도 보여준다. IV층(사질암입황색점토층). <출처:전곡리 표층전시관>


전곡리 토층 전시관내 복원되어 있는 발굴피트(EOS1-II). 발굴 작업 도구들이 같이 전시되어 있다.

발굴피트(EOS1-II)
EOS1-II 피트의 규모는 동서의 길이 450cm, 남북은 500cm로 깊이는 253cm이다. 층위확인을 위하여 피트 내 남쪽 방향에 폭 1m로 깊이 283cm까지 파고 내려간 결과 현무암반층이 확인되었다.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층은 IV층이며, 윗층에서 발견되는 유물의 양은 적다. 4차 발굴조사가 완료된 이후 원래의 상태로 매립되었다가 2005년 3월 전곡리 전시관 신축공사를 위하여 새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최초 발굴조사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발굴피트(EOS1-II)의 토층. 상단부 I층(황갈색 점토층),  II층(황적색점토층), III층(적색점토층),  IV층(사질암입황색점토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I층(황갈색점토층)은 지표(표토층)에서 섞여 들어가는 유기물질에 의해 토양에 변화가 발생하였으며 두께 40~50cm 내외이다. II층(황적색점토층)은 I층과 함께 점토층이나 색상변화가 점진적으로 보인다. 북측 벽면에는 20cm~40cm 두께이며 남쪽으로 갈수록 두께가 훨씬 두터워진다. III층(적색점토층)은 북쪽 벽면에서 보이는 두터운 곳은 120cm이상이며 남쪽으로 기울면서 얇아진다. IV층(사질암입황색점토층)은  적색점토층과 접하여 불규칙적인 혼합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남쪽부분에서는 현무암이 발견된다. EOS1-I 피트의 IV층과 연결되고 있으며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으며 EOS-I피트의 IV층과 유사한 층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쪽방향으로 가면서 모래질이 점차 엷어지고 모래의 굵기도 작아지고 있다. <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전곡리 유적지 발굴조사에 사용되었던 도구들.


발굴조사대 발견된 유물들은 주변의 흙을 깍아 원통형로 만든 후 세밀한 조사를 위해 원래 위치에 두고 있는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전곡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석기.


발굴 당시에 사용된 발굴일지와 발굴 노트

유적의 발견
1978년 4월 어느날 오후,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김원용 교수의 연구실로 석기가 배달되었다. 김원용 교수는 영남대학교 정영화 교수와 함께 현장을 답사한 후 이 석기가 지닌 중요성을 깨닫고 <진단학보>에 발표하여 학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것이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 발굴의 시작이다. 1979년 3월 26일 본격적으로 시작된 발굴 조사는 해방 후 이루어진 조사 중 가장 큰 발굴조사였으며, 조사결과 우리나라의 구석기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유물이 대량 발견되었다. <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벽면에는 전곡리의 한탄강 단애와 한탄강의 자연환경에 재현해 놓고 있다.

한탄강 단애
임진.한탄강유역은 화산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으로 형성된 대지 위에 하천이 흐르면서 발달한 지형으로 깍아 내린 듯한 현무암 단애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전곡리 선사유적지를 휘돌아 흐르는 한탄강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주변 퇴적층은 구석기문화 이해를 위한 4기 지질 및 지형발달 연구에 귀중한 학술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제 11차 발굴조사
제11차 발굴조사는 2000년 6월 28일부터 2001년 7월까지 이루어졌으며 그동안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1~4지구에서 각 구역의 지층과 유물의 존재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연천군의 용역으로 한양대학교 문화재 연구소에서 실시한 대규모 전면적인 시굴조사로 총 462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E55S20피트에서는 전곡리의 토층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이루어져 전곡리 유적 의 연대와 형성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을 확보하였다. <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전곡리 일대 지층 조사결과를 보여주는 샘플이다. 전곡리 제일 아래층인 31.8~40m 지점에는 변성암의 일종인 편마암이, 그 위로 자갈들이 쌓인 백리의층(자갈층)이, 그 위로 화산활동 결과 생성된 현무암층이, 제일 위쪽 지하 6.1~26.5m까지 분포하고 있는 구석기문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마암은 변성암의 일종으로써 화강암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암석을 구성하는 광물들의 성질이나 조직이 변하여 만들어진 암석이다. 석영.장석 등이 많은 백색층과 운모.각섬석 등이 많은 암석층이 줄무늬를 이룬 암석으로 전곡리 선사유적지의 기반암을 이루며 배의리층이 생성되기 전 선캠브리아기에 형성되었다. 2005년 조사결과 31.8m에서 시추 종료지점인 40.0m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담회색 내지 담갈색을 띠고 있다. 백의리층(자갈층), 한탄강으로 흘러드는 물길 중의 하나인 영평천 주변의 청산면 백의리에는 전곡 현무암의 아래에 자갈들이 발견되는데 이것을 "백의리층"이라 부른다. 이 백의리층은 임진강과 한탄강유역의 현무암이 형성되기 전에 존재하던 것으로 현재의 한탄강 유류를 따라 현무암 아래에 여러 지점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하 26.5m에서 31.8m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갈색 및 암갈색을 띠고 있다. 현무암은 화산활동시 지표나 지표 근처에서 식어서 된 암석으로 전곡리에서 발견되는 현무암은 대부분 회흑색에서 흑색이며 세립이고 치밀하게 보이지만 구멍이 많은 다공질인 경우도 있다. 백의리층 위에서 채취된 이 현무암은 철원 평강지역의 분화구인 오리산에서 문산까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알려지고 있다. 채취지점에서는 지하 6.1m~26.5m까지 분포하고 있으며 대부분 암회색을 띠고 있다. 구석기 문화층은 구석기시대의 흔적이 발견되는 층으로 적색 점토 퇴적층과 사질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야외 구석기 문화층은 산성토양이 대부분이어서 유기질 성분의 유물은 발견하기 매우 어려운 환경으로 발견되는 유물은 주로 석기이다. 그 중 연천 전곡리의 구석기 문화층에서는 주먹도끼, 찍개, 긁개 등 많은 석기유물이 발굴 조사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채취 지점의 구석기 문화층은 전곡 현무암 위에 지하 6.1m까지 발견되고 있다. <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표토층, 지표늘 이루는 층으로 전곡리 유적지의 지표에서 다량으로 석기가 채집된다는 점에서 유물을 포함했던 부분이 많이 침식되었음을 알려준다. 적갈색 및 황갈색 점토층. 구석기 유물이 주로 수습되는 문화층으로 땅갈라짐 현상이 뚜렷하게 보인다. 모래.자갈층, 침식과 운반작용을 통하여 형성된 층으로 보이며 당시 물의 흐름속도를 알 수 있다.세사층, 양한 색갈 크기 입자로 된 서로 다른 색상의 토양층이 반복적으로 퇴적된 모습을 보여준다. 무암반층. 전곡 현무암층이라 불리는 넓은 용암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화산분출연대는 대략 30만년에서 35만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선사유적지 전경.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한탄강을 휘돌아가는 현무암 대지 위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 토층전시관 주변 공원화된 지역을 포함하여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서 유물이 출토되었다.

1지구 - 처음으로 석기가 발견된 지역
2지구 - 1지구 남쪽 건너편 지역으로 대표적인 주먹도끼들이 발견된 지역
3지구 - 발굴유구 및 습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
4지구 - 제1차 발굴시 발견된 강 건너의 대지인 고능리 지역
5지구 - 유적지의 동편 언덕 일대로 유물이 발견된 지역
<자료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전곡리 선사유적 발굴 당시 신문기사


석핵, 전곡리 선사유적지, 규암


케냐 올로게세일리에 유적, 탄자니아 이사밀라 유적에 출토된 주먹도끼. 전곡리에서 아술리안형 주먹도끼가 출토되기 이전에는 비슷한 유형의 석기들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출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돌날 제작 기법과 세석인, 후기구석기시대에는 돌날제작 기법이 개발되어 석기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돌날은 가로 대 세로의 길이 비율이 1:2이상의 길쭉한 박편을 말하며 세석인은 소형의 돌날 박편들을 발한다.무스테리안 석기공작. 중기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석기들로 최초로 발견된 프랑스 무스티에 동굴의 이름을 따서 불려지게 되었다. 이 석기들은 대개 르발르와 기술로 제작되는데, 원석의 겉모양을 만들고자 하는 석기의 형태로 다듬은 후 타격면을 조정해 박편을 떼어내면 처음 구상한 형태의 석기가 완성되는 방법이다. <출처:전곡리 토층전시관>


호모사피엔스, 호무에렉투스(북경원인), 네안데르탈인


호모에르가스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하빌리스, 케냐트로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