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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 전시된 대표적인 불상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불상이지 석굴암 본존불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상인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반가사유상도 이 곳에 전시되어 있다.  불상은 크게 그 재료에 따라서 석조불상, 목조불상, 철조불상, 금동불상 등이 있으며, 새겨진 부처님의 모습에 따라서 석가모니불(여래상),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성격에 따라서 대표적인 불상들을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있다. 

 보통 사찰 불당에 모시는 불상들은 대부분 유명 사찰에서 대대로 전해내려 오기때문에 박물관에 있는 경우는 많지 않고, 주로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했다가 조선전기에 폐사지가 된 절터에서 발굴된 불상들이 대부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개인들이 소장했던 작은 금동불상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발굴되고 있어 개별 사찰에서 보관하는 경우보다는 박물관이나 개인들이 소장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 곳 중앙박물관에는 국보급 석조불상으로는 경주 감산사터에서 발굴된 감산사 미륵보살상과 아미타불상이 전시되어 있고,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철불상이 여러점 전시되어 있다. 이들 철불상들은 주로 고려시대에 호족의 지원을 받아 흥성했던 절이 조선시대에 폐사된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불교조각
우리나라에 불상이 처음으로 소개된 때는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이지만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6세기부터이다. 불상제작 초기에는 단순히 중국 불상을 모방하였으나, 점점 우리나라 특유의 조형감각이 두드러진 불상을 만들게 되었다. 삼국시대 고구려 불상이 사실적인 인체표현보다 강건한 기상을 강조하였다면, 불제불상은 정교함과 세련미가 돋보이며, 신라 불상에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통일신라는 삼국 불상의 특징을 하나로 아우르는 한편 8세기에는 중국 당나라의 사실적인 조각 양식인 성당양식을 받아들여 조화와 균형을 이룬 여성적인 불상을 만들었다. 9세기부터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불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유행하진 않던 항미촉지인을 한 불상이나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상이 유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새 왕조의 활력을 반영한 거대한 불상과 지역별로 특색있는 불상을 만들었다. 고려 후기에는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불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을 따르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왕실이나 상류계층에서 불상 제작을 후원하기도 하였다. 또 불교가 여성층과 서민층에 깊숙히 파고 들어 그들 취향에 맞는 자유롭고 소박한 불상이 제작되었다. 불교조각실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대표적인 불상과 보살상을 시대별, 주제별로 전시하였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쇠와 돌로 만든 대형불상,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과 금동으로 만든 작은 불상들을 통하여 우리나라 불교조각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1.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은 2,600여 년 전 인도에서 왕자로 태어나 출가하여, 진리탐구와 수행을 통해 보드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실존 인물인 석가모니를 형상화한 것으로 고려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사찰 불전(대웅전)에 모셔진 불상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처, 철조불좌상(고려,11세기, 서산 보원사지).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석불 부근에 있는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보원사는 화엄십찰의 하나로 충청서부지역에서 상당히 유서깊고 큰 사찰이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폐사되었다.

쇠로 만든 이 부처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 터에서 1918년에 옮겨온 것이다. 두 손이 모두 없어졌지만 오른 손목의 위치로 보아 손갖춤은 항마촉지인으로 추정된다. 몸에 비해 머리가 커서 균형감을 찾아볼 수 없으며, 도식화되고 부자연스러운 옷주름 등 세부표현은 고려 철불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특히 강원도 원주에서 출토된 철불3구와 얼굴모습, 왼쪽 어깨에서 한 번 접혀져 있는 편단우견(오른쪽 어깨는 드러내고 겉옷인 대의를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리에 걸친 모습), 왼팔이 접히는 곳에 표현된 리본 형태의 옷주름, 항마촉지인의 손갖춤 등에서 거의 동일한 수법을 보이고 있어 같은 조각가 집단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부처. 하남 하사창동 철조여래좌상 (고려, 10세기, 경기 하남). 남한산성 아래 춘궁동 동사지에서 발굴된 철조불 좌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불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절터에는 대좌의 일부와 2개의 탑이 남아 있다. 태조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광주지역 호족의 근거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곳이다.

쇠로만든 이 부처는 경기도 하남시의 한 철터에 있던 것을 1913년에 옮겨온 거이다. 지금도 절터에는 돌로 만든 대좌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 부처는 높이가 2.8m에 무게 8.2톤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불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형식의 옷차림과 손갖춤을 하고 있으나 허리가 급격히 가늘어진 부자연스러운 조형감과 추상화된 세부 표현에 비추어 통일신라 불상은 모방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부처의 양 무릎에는 완격하게 굳은 옻칠의 흔적이 남아 있어, 원래 불상 전체에 두껍게 옻칠을 한 다음 도금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부처. 철조불좌상 (통일신라,8세기,서산 운산면 출토). 현재 출토된 철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석굴암 본존불과 그 형태가 비슷하다.

쇠로 만든 이 부처는 1918년 충남 서산시 운산면에서 옮겨온 것이다. 두 손이 모두 없어졌지만 오른 손목의 위치로 보아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항마촉지인의 손갖춤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머리에 생동감 넘치는 얼굴, 당당한 어깨와 풍만한 가슴, 그리고 결가부좌한 다리의 넘치는 양감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과 매우 비슷하다. 형식화된 9세기 철불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으로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우리나라 철불 가운데 가장 앞선 시기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부처의 머리 위에 설치된 집모형은 '닫집','천개' 또는 보개'라고도 하는데 이 것은 부석사 무량수전 내부의 닫집을 복원한 것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부처. 철조불좌상(고려, 10세기, 경기 포천)

두 손이 모두 없어졌지만, 오른 손목의 위치로 보아 항마촉지인의 손갖춤을 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편단우견의 착의법, 무릎 앞의 부채꼴 주름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의 모습을 따르고 있으나, 허리가 길어진 부자연스러운 조형미 등으로 미루어 석굴암 본존불을 계승한 고려 초기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부처에서 볼 수 있는 둥글고 온화한 얼굴, 항마촉지인의 손갖춤, 대의의 깃이 왼편 어깨에서 뒤집힌 점, 대의의 물결식 옷주름 등은 개성를 중심으로 한 경기 북부지역 불상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때 철불을 만들기 시작하여 고려시대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중국에는 6세기 송나라 이후의 것이며, 일본에서는 13세기 가마쿠라시대에 처음으로 철불을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철불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철불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 졌을까? 철불을 만들기 시작한 통일신라 후기는 왕실의 권력기반이 흔들리고, 지방 호족들이 제각각 세력을 키우던 시기였다. 이들이 불상을 많이 만들면서,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청동을 철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또 절은 지방 호족들이 풍부하게 가지고 있던 무기재료였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동보다 적은 비용으로 큰 불상을 만들 수 있는 경제적 이점을 가진 재료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머리만 남은 불상.

2. 비로자나불

 부처가 설법한 진리가 태양 빛처럼 우주에 가득 비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 비로자나불이다. 화엄신앙의 비로자나불은 진리 그 자체를 뜻하는 법신불이기 때문에 형상화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7세기 무렵 중국에서 불상으로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9세기에 널리 유행하였다. 삼국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것으로 보이며, 화엄종의 전통이 오래 남아 있는 해인사 같은 사찰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전, 대적광전이 있는 경우도 있으나, 고려시대 이후에는 대부분의 사찰이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을 중심으로 통일되는 경향이 있다. 구례 화엄사 같은 경우에도 대웅전이 중심불전 역할을 하고 있다.


석조비로자나불(통일신라, 9세기). 비로자나불상의 전형적이 손갖춤을 하고 있는 불상이다.

비로자나불은 온누리에 가득 찬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로자나불상은 6세기에 등장하여 9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여래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비로자나불상은 둥그러고 친근감 있는 현실적인 얼굴, 계단모양의 규칙적인 옷주름, 둔화된 돌섬에 비해 오히려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광배와 배화로 보아 통일신라 후반기 석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비로자나불.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통일신라~고려초). 세부표현에서 세련되지 못하고 형식적인 면을 보이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불상을 모습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온 누리에 가득 찬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로자나불상은 8세기에 등장하여 9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여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단정한 얼굴, 안정감 있는 자세, 표면에 이음매가 보이지 않는 뛰어난 주조 기술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전통이 엿보인다. 그러나 형식화된 옷주름 등 세부표현에서는 사실성이 떨어지는 고려 철불의 특징도 함께 나타나고 있어, 통일신라 말 고려초에 제작된 불상으로 보인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3. 아미타불

 아미타불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정토로 이끄는 부처이다. 무한한 진리의 빛을 상징하여 무량광불로 불렸으며, 도교의 불로장생 신앙과 결부되어 무량수불로도 불렸다. 아미타불은 삼국시대 이래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승불교의 교리와 잘 맞아서 그런지 민간에서 많이 숭상받고 있는 부처의 모습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전이나 무량수전으로 불리는 불전에 모셔지는데, 고려시대 유명산에 위치한 이름난 사찰에서 아미타불을 주불전으로 모신 경우가 많다. 부석사무량수전, 무위사 극락전, 봉정사 극락전 등의 경우가 있다. 불교를 대표하는 주문인 '나무아미타불'에도 등장하는 부처의 모습이다.


감산사 아미타불 (통일신라,8세기, 경주 감산사터).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 그 조각수법이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1915년 경주의 감산사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빼어난 조각 솜씨를 보인다. 광배 뒷면에는 이 불상을 만든 사람, 만든 목저 등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집사부시랑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임금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성덕왕 18년(719년)에 만들기 시작한 아미타불과 미륵보살이다. 그러나 만드는 도중 김지성이 성덕왕 19년(720년)에 죽자 김지성의 명복도 함께 빌게 되었다. 미륵보살은 온화한 표정과 허리를 약간 비튼 자세를 보이며, 아미타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곧게 선 자세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8세기 전반 석조 조각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4. 약사불

 약사불은 모든 육체의 질병뿐만 아니라 무지의 병까지도 고쳐주는 부처로서 대의 왕불이라고도 불린다. 이 부처는 둥근 약단지를 들고 있어 쉽게 알 수 있다. 약사불은 불교에서는 중요한 신앙대상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약사불은 약사전에 모셔지는데 우라나라 대형사찰 중에서 통도사와 강화 전등사를 제외하고는 오래된 약사전을 가지고 있는 곳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약사불. 석조약사불좌상(통일신라,9세기, 경주 남산 삼릉곡)
이 불상은 원래 경주 남산 삼릉곡 정상 가까이에 있는 마애대불 건너편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항마촉지인의 손갖춤을 하고 있는 약사불로 근엄하면서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통통한 얼굴, 건장한 신체, 얌전하게 흘러내린 계단식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절정기인 8세기 불상의 여운이 보인다. 그러나 침울한 얼굴표현, 생감감이 둔화된 웅크린 자세, 화려하고 장식적인 광배와 대좌 등 9세기 불상의 특징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만든 불상으로 추정된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대좌 안상에 새겨진 불상들.

5. 미륵보살


 석가모니에게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며, 석가모니가 죽은 뒤 56억7천만 년이 지난 뒤 이 세상에 내려와 모든 중생을 제도 한다고 한다. 미륵신앙은 대승불교와 연관되어 우리나라에서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며, 전통적으로는 보살로 불리지만 고려시대 이후에는 미륵불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미륵불을 모시는 불전은 미륵전 또는 용화전이라고 부르며 황룡사 금당에도 미륵불상이 있었다고 하며, 백제의 대형사찰이었던 익산의 미륵사지는 사찰이름 자체에 미륵불이 들어간다. 삼국시대에 비로자나불과 함께 크게 유행했던 부처의 모습이다. 지금은 김제 금산사에 삼국시대 금당의 모습을 한 미륵전이 제일 유명하며, 양산 통도사에도 용화전이 있다.


감산사 미륵보살, 아미타불 (통일신라,8세기, 경주 감산사터). 남성적이며 서구적인 미륵불의 형태가 잘 나타나 있는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불상과 보살상 각부의 명칭


불상의 손갖춤은 부처나 보살이 깨달은 진리나 중생 구제의 소원을 밖으로 표시하기 위하여 짓는 손 모양을 의미한다.

1) 지권인: 비로나나불이 짓는 손갖춤으로 이치와 지혜,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은 본래 하나라는 뜻이다.
2) 시무외인.여원인: 어떠한 두려움도 없애 주고 어떤 소원도 다 들어준다는 뜻으로 모든 부처가 취할 수 있다.
3) 항마촉지인: 석가모니불이 온갖 번뇌를 물리치고 도를 깨닫는 순간에 짓던 손갖춤이다.
4) 선정인:참선할 때 짓는 손갖춤으로 모든 부처가 취할 수 있다.
5) 아미다 구품인:아미타불이 중생의 신앙심이나 성품의 깊이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어 교화하여 구제한다는 뜻이다.
6) 전법륜인: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뜻으로, 석가모니가 불교의 진리를 진도할 때의 손갖춤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인도의 불상과 보살상

중국의 불상과 보살상

 

한국의 불상과 보살상

일본이 불상과 보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