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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기간동안 서울의 중심 종로 보신각에 걸려 있으면서, 전국민에게 새해를 맞는 기쁨을 알려주던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던 보신각 종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을 새로운 안식처로 삼고 긴 휴식을 하고 있다. 이 보신각종은 전형적인 조선초기 사찰의 종이었다가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걸려서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종이라 할 수 있으며, 서울시민과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 왔던 문화재이다.

 보신각 종은 조선 세조때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는 신덕왕후 정릉 안에 있던 정릉사에 있었으나, 원각사로 옮겨졌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종루에서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해 왔다. 높이 3.18m로 음통은 없고 2마리의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한다. 몸통에는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적혀있다.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종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2번의 화재로 원형이 많이 손상되었다. 통일신라 전성기때 만들어진 성덕대왕 신종에 비해서 주조기술이나 조각기술 등이 많이 쇠퇴된 것으로 보이는 범종이다.



서울 도심의 종루인 보신각에 걸려 있다가 그 역할을 다하고 지금은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보물 2호로 지정된 보신각 종.


보신각종은 통일신라 전성기때 범종에 비해서 제작수법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음통은 없고 범종표면에 특별한 장식을 새겨 놓고 있지 않다.


종의 몸통 가운데에는 3겹의 띠가 둘러져 있으며, 가운데에는 범종의 내력을 적은 장문의 글이 적혀 있다.


이 종의 주조연대를 비롯하여 내력을 적어 놓고 있는 장문의 글


글자가 적혀 있지 않은 부분. 이 종은 전체적으로 단순하게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보신각 종은 제작수법이나 조형미 측면에서 뛰어난 것은 아니고, 그 제작연대와 내력을 알려주는 글이 적혀 있고, 오랜 기간동안 수도 서울의 종루에 걸려 있으면서, 시간을 알려주었다는 역사적 의미가 큰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2마리의 용이 엉켜있으면서 고리역할을 하는 용뉴. 통일신라 범종과는 달리 음통이 없다.


보신각 종의 아랫부분


보신각 종


2009년 보신각 종의 모습


박물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보신각종과 종루


보신각종이 걸려 있었던 서울 종로의 보신각

보신각 종, 보물 2호, 조선 1468년
조선 세조 14년(1468) 원각사(현 탑골공원)에 걸기 위해 만든 종이다. 절이 없어진 후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광해군 11년(1619) 보신각으로 옮겨져 파루(오전 4시)에 33번, 인정(오후 10시)에 28번 울려 도성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리는 데 쓰였다. 하나의 몸체에 양쪽으로 용머리가 달린 장식 고리가 달려 있으며, 몸통 한 가운데는 세겹의 굵은 띠가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모양의 종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들어와 널리 만들어진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