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특별전] 타임갭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 탐험, 경주박물관 부지의 신라 우물제사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들

younghwan 2012. 4. 29. 16:35
반응형


중앙박물관에서는 "타입캡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탐험"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을 2012년 봄에 열고 있다. 한반도를 대표한 고대 유적지인 경주의 우물터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주요 유물만을 전시하는 일반 전시회와는 달리 고고학적 조사방법론 등을 소개하기 위해서 많은 유물들이 묻혀 있었던 삼국시대 우물제사와 관련이 있었던 경주의 국립박물관 부지에서 발견된 2개의 우물과, 인용사지 우물, 신라 왕경지구(안압지) 우물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물은 고대 이래로 인간이 물을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공시설이다. 옛 사람들은 이런 우물을 신성시하여 바닥에 병이나 항아리를 넣어두기도 하며, 토기와 기와, 동물의 뼈, 씨앗등도 넣어두기도 한다. 경주박물관 부지에서 발견된 우물에서는 일반적인 우물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유물들과 동물들의 뼈, 씨앗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7~8세 가량의 어린이 유골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다른 우물에 비해서 출토유물이 많은 것으로 볼 때 식수를 공급받기 위한 우물이라기 보다는 우물제사와 관련된 전용 우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곳 우물에서 출토된 각종 동물들의 뼈를 통해서 당시 제사에 사용한 제물이나, 당시 사람들이 식생활 등도 함께 추정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우물은 물만 떠 먹는 곳인가?
사람이나 동물이 살아가는데 물은 없어서는안되는 것이다. 우물은 물을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공시설이다.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공급받기 위한 마음을 담아 우물을 만들때 가장 밑바닥에 병이나 항아리를 넣어 둔다. 때로는 우물에서 토기나 기와 외에도 소뼈나 말뼈, 복숭아씨앗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우물은 시조가 탄생한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우물은 또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이동통로이기도 하고 부정함을 씻어주는 성스러운 장소였다. 최근 일본 동북부 지역에 쓰나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그 당시 어느 노인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우물물이 변하거나 탁해지면 대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일어날 징조이니 얼른 피하라는 옛 말씀을 따랐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경주 월성 주변의 우물제사 유적

우물1(국립경주박물관 부지). 국립경주박물관 연결통로 부지에서 발견된 우물로 깊이 약 10m, 내부 지름 70~120cm이다. 우물에는 상석과 배수로 시설까지 있었다. 우물안에는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약 20여종의 동물뼈 2,300여점, 7~10세 가량의 어린이뼈, 토기와 목제품 70여점 등 우물제사와 관련된 많은 유물이 확인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우물2.(국립경주박물관 부지).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부지에서 발견된 우물로 잔존 깊이 약 3m, 내부지름 90cm에 해당한다. 동물뼈 120여점과 토기와 기와, 나무두레박 등 46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전 인용사지 우물. 전인용사지는 신라 월성 남쪽에 위치한다. 문헌에 따르면 인용사지는 김인문(624~694)의 원찰로 전해지고 있다. 동회랑지 남쪽에서 확인된 우무에서 토기 외에도 소, 돼지, 말, 사슴, 고라니, 개, 기러기, 오리, 까마귀, 꿩, 닭, 다랑어, 숭어, 농어, 잉어, 상어, 돔 등 다양한 동물뼈와 복숭아씨가 출토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 부지의 우물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신라 왕경지구 우물. 안압지 임해전터의 북쪽 지역인 신라 왕경 유적을 발굴하던 중 길이 30m가 넘는 대형 건물지와 우물 등이 발견되었다. 우물 안에는 다양한 글자가 새겨진 기와와 토기 외에 말이나 돼지 등의 동물뼈와 복숭아씨가 출토되었다. 전 인용사지 우물이나 경주박물관 연결통로 우물1에 비해 동물뼈의 양이나 종류는 조금 적은 편에 속하지만 월성 주변의 우물제사와 관련된 것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출처:중앙박물관>


우물상석, 우물1 내부의 7~8m 지점에서 우물의 상석으로 보이는 4매의 돌이 출토되었다. '凸'자처럼 생긴 돌 2매와 장방형의 돌 2매가 맞물리게 다듬어져 있다. 상석의 아래면은 우물 첫번째 돌과 자연스럽게 맞물리도록 다듬어져 있다. 상석 안쪽 너비는 40cm정도이다. <출처: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연결통로에서 발견된 우물1에서 유물이 쌓여 있는 모습이다. 아래쪽에는 일반적으로 우물에서 볼 수 있는 아가리가 깨진 토기가 윗쪽에 어린이 뼈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20여종의 동물뼈, 토기와 목제품 등이 발견되었다.

우물은 아이와 동물들의 죽음을 품고... 끝내 우물마저도 죽음을 택했다.
경주박물관 연결통로 부지 우물에서는 어린아이의 뼈를 비롯하여 약 2,200여점의 동물뼈와 토기, 기와, 두레박, 나무빗 등 70여점이 확인되었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신라 왕경지역이나 주변 지역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월성주변에서 확인된 전 인용사지 유적, 신라 왕경유적의 우물에서 비슷한 예가 확인되었다. 다만 경주박물관 연결통로 우물에는 어린아이뼈가 확인되는 점이 다르다. 월성주변에서 확인되는 4개의 우물은 거의 8~9세기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신라 왕경 내의 우물 폐기(제사)와 관련된 동물뼈로는 소와 말뼈가 있다. 그러나 월성주변의 4개의 우물에서 확인된 것은 동물의 종류와수량, 출토품의 종류와 수량이 다른 것보다 월등하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 주택의 우물이라기보다 왕실에서 사용했던 중요한 우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왕실 내부에서 단순히 식수를 공급받는 우물과 제사를 지내는 특수한 성격의 우물을 구분해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통일신라 말기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거나 병의 치유와 부정함을 물리치기 위해 국가나 왕실차원의 대규모 우물제사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경주에서 발견된 우물제사 유적 중 이 곳에서만 발견된 어린이뼈이다. 우물에 묻힌 많은 짐승들의 뼈나 유물 등 중에서 제일 윗쪽에서 발견되었다. 실제 어린이가 제물로 받쳐졌는지, 사고로 죽은 어린이를 우물에 묻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풀잎같이 여렸던 아이가 감당해야 했던 죽음, 우물에서 어린아이뼈가 발견된다.
국립경주박물관 부지 우물에서는 유일하게 7~10세 가량의 성별을 알 수 없는 어린아이뼈가 유일하게 발견되었다. 귀족이나 왕족의 아이가 실수로 우물에 빠져 죽은 후 건져내어 제사를 지낸 후 다시 우물에 넣고 마지막에 상석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 우물은 아이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던 것인데 굳이 상류층의 아이가 우물에 빠져 죽었다고 해서 우물에 다시 넣어 제사를 지냈을까? 특별히 관리되었던 우물에 부정이 탔기 때문에 그랬을까? 아이의 뼈는 동뼈들과 함께 얽혀 있는 상태였고 이러한 유물과 동물뼈들 중에서도 맨 윗부분에 확인되었던 것으로 보아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확실한 문헌 기록이나 비교 자료가 충분치 않아 정확한 추론에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사 음식이나 제사의 희생물로서 다량의 동물들, 일부러 병의 아가리를 파손한 행위(나쁜 기운을 미리 없애거나 막아 준다는 의미)나, 많은 복숭아씨의 존재만으로도 국가나 왕실 차원의 우물제사였을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우물의 제일 윗쪽에서 발견된 '남궁지인'명 기와. 이곳은 신라의 왕궁이었던 월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헌상 기록에는 없지만 이 명문으로 월성남쪽의 남궁(南宮)의 존재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말 신라의 남쪽에 남궁이 있었을까?
신라 왕경의 구조와 관련하여 고대 문헌에 의하면 왕이 살았던 월성과 태자가 있었던 동궁(현 안압지 일대), 퇴임한 여왕이나 왕의 어머니가 거주하였던 북궁이 등장한다. 그러나 월성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연결통로 부지 우물1에서 출토된 '남궁지인'을 새긴 기와가 출토되어, 새롭게 월성 남쪽에 남궁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최근에는 남궁이 신라 왕실이 의례와 교육을 담당했던 곳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우물1의 두번째 층에서는 나무로 만든 두레박을 비롯하여 아가리가 깨진 항아리를 비롯한 토기류, 각종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우물1의 3번째 층에서늠 두레박이나 토기, 기와편 외에도 밤, 잣, 매실, 모과 등의 다양한 씨았이 발견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복숭아씨가 가장 많이 출토되는데 복숭아씨는 민간신앙이나 도교 등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한 부정함을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넣었던 것으로보인다. 

우물에서는 밤, 잣, 매실, 모과, 가래, 대추 등 다양한 씨앗이 발견된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복숭아는 하늘의 열매이자 신성한 과일로 여겨지며, 장수, 괴력, 여성을 상징하는 과일로 다산의 의미도 있다. 일본의 강가 주변의 제사유적에서도 복숭아씨가 확인된다. 이처럼 복숭아는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우물에 부정함을 없애기 위해 넣어 두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동천동 도시유적 우물과 폐와무지에서 확인되는 '井桃정도'가 새겨진 기와의 존재는 우물과 복숭아의 관계를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기본적으로 동물뼈 전공자가 다양한 종류의 동물표본과 동물해부학 책을 보고 비교해가면서 무슨 동물뼈이고 어떤 부위의 뼈라는 것을 확인한다. 종류별 동물뼈를 분류하고 목록을 만든 다음 동물뼈들이 혼동되지 않도록 동물뼈마다. 목록과 똑같은 숫자를 기입해둔다. 또한 종류별로, 때로는 전체 형태를 맞추어서 사진을 찍는다. <출처:중앙박물관>


우물1에서는 발견된 개의 뼈. 거의 완전하게 형태를 복원할 수 있을 정도의 뼈가 발견되었다. 이 개는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개 중에서는 가장 큰 개로 몸길이 108cm 정도의 수컷이다.


우물1에서 발견된 개의 뼈를 기준으로 본원한 개의 형태.

우물1에서는 약 4마리 정도의 개뼈가 발견되었다. 그 중 1개체분은 거의 완전하게 전체 형태가 복원이 가능하다. 전체 형태가 복원된 개의 경우 한반도에서 확인된 개 중에서 가장 큰 개(몸길이 108cm, 높이 53cm 정도)로 수컷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개는 신석기시대 유적인 창녕 비봉리유적에서 확인되었다. 개는 신라시대 건물의 기둥 초석 아래에서도 확인된 것으로 보아 제사와 인연이 깊은 동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개는 인간과 가장 친밀한 동물로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주인을 구하거나 은혜를 갚는다하여 충성심과 의리, 희생정신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특히 고대 문헌에 흰 개는 미리 일어날 일을 예언하고 경고하는 벽사의 능력을 가진 영험한 동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속담이나 설화에는 개가 어리석음, 비천함, 사랑을 방해하는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우물1에서 발견된 고양이뼈

고양이는 우물1에서만 확인되며, 대략 6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이 중 1마리의 전체 형태가 복원되며 집고양이가 아닌 야생종으로 밝혀졌다. 한반도 고대 유적에서 확인된 고양이는 드문편이다. 김해 수가리패총이나 안면도 고남리패총에서 고양이뼈 일부가 확인된 정도이다. 고양이가 한반도에 유입된 경유를 살펴보면 불교의 경전을 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고양이. 쥐잡기용이나 애완용으로 가축화된 고양이는 불경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서아시아,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개와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고양이는 꾀와 지혜를 상징함과 동시에 남을 속이는 교활함도 가지고 있는 동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일본 평안시대 우다천황의 일기에 집고양이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고 중국 당나라 황실에 고양이를 길렀다고 전해진다. 일본 6세기초 토기의 표면에 찍힌 동물발자국이 고양이일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쥐, 두더쥐, 땃쥐, 토끼의 뼈. 여러 동물들 중에 쥐나 두더지, 땃쥐와 같은 작은 포유류, 개구리와 뱀과 같은 종류는 우물 제사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넣은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특히 고양이의 경우 어른 고양이, 6개월 미만의 어린 고양이, 아기 고양이로 구분되어진다. <출처:중앙박물관>


멧돼지, 말, 사슴, 고라니의 뼈

신라의 음식에 대한 정보는 구체적인 기록보다는 무덤이나 집자리, 우물 등에서 확인되는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곡물로는 쌀, 보리, 콩, 밀, 밤, 팥 등이 있는데, 불탄 곡물이 항아리에 담긴 채로 발견되기도 한다. 그 외에 복숭아, 매실, 밤, 잣, 호두, 대추, 모과 등도 발견된다. 고기류로는 소, 돼지, 말, 개, 사슴, 산양, 닭, 꿩, 오리 등이 있다. 특히 천마총에서는 장군형 토기에 달걀이 담겨진 채 출토되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소, 고대에는 제사의식과 제의용이나 순장용으로 중시되었으며, 농경생활이 시작된 이후에는 농사의 신 농경의 조력자, 운송수단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소는 고집이 세고 어리석은 성격도 있지만, 우직하고 성실한 모습은 여유, 풍요, 부, 상서로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물1에서 확인된 소의 경의 소의 좌우 갈비뼈와 등뼈, 2개의 앞발에 해당되는 부위가 확인되었다. 특히 갈비뼈의 경우 양쪽 끝부분이 잘려져 나갔기때문에 갈비뼈 순서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출처:중앙박물관>


까마귀, 오리, 꿩, 참새, 새매, 메추라기

신라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사냥을 즐겼을까? 단지 활이나 창과 같은 도구만을 사용해서 동물을 사냥했던 것은 아니었다. 주로 가을에서 초봄 사이에 매를 이용하여 꿜을 사냥하였다. 문무왕 17년(677)때, 소부리주에서 흰매를 왕에게 바친 기록도 있다. <삼국사기>에 진평왕 시절의 사낭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날마다 사냥꾼과 더불어 매와 개를 풀어 꿩과 토끼를 쫓아다니며 나라를 돌보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고대의 사냥은 단지 음식물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왕이나 귀족들이 놀이로서 매사냥을 즐겼다. 또한 신체단련이나 군사훈려의 목적으로 사냥을 하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개구리, 뱀


어류로는 광어, 상어, 조기, 대구, 복어, 민어, 붕어, 잉어 등 다양한 바다고기와 민물고기가 있다. 특히 경북 일대에서는 제사음식으로 상어를 꼭 사용하는데, 그 기원이 신라까지 올라간다. 음식의 조리방법에 대해서는 안압지에서 출토된 목간의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특히 돼지, 가오리, 사슴 등으로 젓갈을 만들어 먹고 제조날짜를 표시해 둔 목간을 젓갈담은 항아리 목에 걸어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천 이백년전 우물가에서, 작은 쇠솥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그 속에 담긴 수수께끼의 정답을 풀 수 없습니다. 그저 신라사람들이 담고자 했던 크고 작은 희망들을 상상할 수 밖에는... 깊은 우물속에 겹겹히 쌓인.. 바람과 향기와 빛이 전해주는 그들의 염원에 다가섰습니까? 이제 당신의 자리로 돌아와 여지껏 여백으로 남아 있던 시간 속, 또 다른 숨은 틈새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출처:중앙박물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