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해저유물은 전남 신안군 도독도 앞바다에서 1976년에 발굴된 유물들이다. 이곳 어부의 그물에서 중국 용천요에서 만든 청자가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1984년까지 8여년간에 걸처쳐 발굴이 진행되었다. 이곳에서는 2만8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청자가 가장 많이 발견되었다. 유물들은 이곳에서 침몰한 거대한 목선에 실려 있었는데, 주요 수입품이었던 청자 이외에도 선박의 주인을 알려주는 화물 물품표인 목간을 비롯하여, 선원들이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주방기, 놀이기구, 칼 등과 이물건의 주인이 사찰과 관련되었음을 보여주는 불교용품과 함께 14세기까지 중국에서 사용되었던 대부분의 동전들이 포함되는 28톤에 이르는 동전도 함께 발견되었다. 신안해저유물에서 발견된 물품표인 목간에 적혀있는 일본 사찰과 승려의 이름 등을 통해 등을 통해서 이 선박은 중국과 일본을 왕래했던 무역선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신안해저유물들의 발굴조사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여러 기관에서 참여하였다고 하며, 발견된 주요 유물들은 현재 중앙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에서 볼 수 있다.
신안선의 물품들은 누구의 것일까?
신안선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물들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해답은 유물에 달려있는 나무로 만든 꼬리표 '목간'에서 찾을 수 있다. 목간에는 교토의 도호쿠사, 하코자키궁, 조지쿠암 등 일본소재의 사원 이름과 승려들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이것을 종합해 볼 때 신안선으 소유주는 사원과 상인이 공동출자한 교역선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일본의 사원과 승려들은 이 많은 물품들이 왜 필요했을까? 1319년 전후에 교토의 도호쿠사와 하코자키궁은 큰 화재를 입었고, 결국 중국으로부터 이들 사원을 재건하기 위한 물품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그 운송을 담당한 선박이 신안선이었던 것이다. 도호쿠사의 재건에는 주지가 앞장섰는데, 그는 말년에 조자쿠암에 거주했다는 기록으로 봤을 때, 세 사원의 관계와 신안선의 소유주가 누군지는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출처:중앙박물관>
청동추와 사인이 있는 물품꼬리표 '목간'
출항전 준비사항! 목간에는 주문자의 정보가 담겨져 있다. 운송될 물품에는 화물표라 할 수 있는 목간을 붙였다. 윗부분은 끈으로 묶을 수 있도록 "><"모양으로 파거나 구멍을 뚫었다. 윗면에는 물건을 주문한 사람이나 기관의 이름 및 상품명이 적혀 있다. 목간의 기록을 통해 볼 때 신안선은 1323년 4월 하순에서 6월 초순에 걸쳐 화물을 모았다. 물건을 주문한 곳은 일본의 도호쿠사, 조자쿠암.하코자키궁 등의 절이었으며 화물의 일부는 약재와 동전이었다는 것 등을 알 수 있다. 사인을 한 목간이 여러 점 있는 것으로 보아 배에 실린 무역품들은 체계적으로 관리되었으며 다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경원로'가 새겨진 저울추(Balace wight with inscription of '慶元路'qingyuanlu), 원나라
운송될 물품에 달려있던 화물표라 할 수 있는 목간. 목간에는 일본에 있는 사찰과 승려들의 이름이 적혀 있어 물품의 주인이 누구임을 알려주고 있다.
신안선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을까?
신안선에는 일본인과 중국인, 그리고 고려인이 탑승하였다. 그 중 도호쿠사의 재건을 맡았던 주지의 제자들이 배에 올랐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매일 배의 안녕을 위하여 불교의식으 ㄹ치렀다. 무사들은 갑판 위에서 순찰하며 배를 지켰고, 장기를 두기도 하고 주사위 놀이도 하였다. 상인들은 물품의 크기와 무게를 재고, 수량을 기입하고 도장을 찍어 확인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선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으며 여가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출처:중앙박물관>
금동 바라, 풍탁, 경자. 항해 중 선박에서 불교행사를 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물로 화물 주인이 사찰과 관련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장기말(Chess pieces), 주사위(Dices), 뚜껑이 있는 항아리(Lidded jar), 바둑알(Go stones). 당시 선원들의 여가생활을 모여주는 유물들이다.
칼코등이(Sword guards), 나막신(Wooden clog, geta). 일본인들이 애용하는 나막신의 유래가 꽤 오래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 애염명왕 거울, 국화.참새무늬 사각 거울,
저울추(Balance weight), 저울접시, 자(Ruler)
붓걸이(Brush rest), 벼루(Inkstone), 도장(Seal), 무역거래를 위해 필요했던 문방구를 비롯하여 무게나 길이 등을 재기 위한 도구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당시 무역거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신안선의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오랜시간 항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탑승자들의 식생활이 중요하였다. 중국 선원들은 국수를 삶아 먹거나 냄비에 고기를 볶아서 먹었으며 과일로 매실, 호도, 개암, 여지, 복숭아 등을 먹었다. 육류를 좋아하는 중국인은 음식물의 부패를 막기 위해 후추를 많이 사용하였고, 생선류를 좋아하는 일본인은 생강을 향로로 사용하였다. 일본인들은 일본제 칠기와 매병에 음식과 술을 담아 먹었으며, 중국제 흑유찻잔으로 차를 마셨다. <출처:중앙박물관>
숟가락(Spoon), 깔때기(Funnel),
국수국자(Ladle), 프라이팬(Frying pan). 출토된 조리기구에서 당시 선원들이 국수를 먹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중국선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술잔(Ritual wine vessel), 모란무늬매병(Vase), 흑유잔(Bowls)
주칠발(Lacqual bowl). 아직도 일본인들이 애용하고 있는 주칠을 한 그릇들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그릇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각종 약재와 향료
신안선에서는 약재로 쓰이는 산수유, 사군자, 파두, 빈랑, 계피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목간에 있는 진피(귤껍질), 감초 등의 기록으로 보아 각종 향료 및 약재가 실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도, 동남아가 주산지로 알려진 많은 자단목이 배 밑바닥부분에서 대량으로 인양되었는데, 자단목은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건축재, 불상, 도장, 장신구 등의 조각용 재료로 많이 쓰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신안선 탑승객이 이용한 식용 과일 및 향신로, 약재. 여지씨, 초과종자, 종자, 복숭아, 후추, 양강, 빈랑, 매실씨, 산수유씨, 약밤, 가래, 사군자씨, 파두, 개암, 은행, 계피가 있다.
수많은 동전과 주석덩이
특이하게도 신안해저에서는 모두 28톤의 동전이 발견되었다. 1세기부터 14세기까지 66종류로 약 800만개에 이르며 중국의 화폐박물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모든 종류의 화폐가 모여있다. 특히 지대통보와 대원통보는 신안선이 14세기 전반에 침몰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양의 중국화폐가 왜 선박에 실려 있었을까? 그 이유는 일본이 중국에서 동전을 수입하여 화폐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석덩어리와 황동판은 녹여서 불상과 종, 기타 기물을 만들기 위해 사들인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주석정과 금속판(Metal plates), 주석정의 형태는 원형, 타원형 여러가지가 있다. 가운데는 끈 등으로 매기 위해 대부분 타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 재료는 주석제가 대부분이며 그밖에 철제 백동제도 있다. 금속제품의 원료로서 주석과 백동은 값나가는 중요 교역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단향 나무(Red sandawood)
동전. 동전들은 중국에서 당시까지 사용한 거의 모든 동전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에서 화폐로 유통시키기 위해 수입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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