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절터 55

파주 혜음원지, 고려시대 교통로 있었던 여관인 원(院)

혜음원지는 파주시와 고양시를 잇는 고개인 혜음령 동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혜음원에 대한 기록은 김부식의 '혜음사 신창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 예종 16년(1122년)에 지어진 국가에서 운영한 숙박시설로 왕의 남행시에는 행궁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혜음원지에서는 24동의 건물터에 각종 청자류, 불구,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혜음원은 그 건립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으며, 당시 서울지역과 개성지역의 교통로, 사회경제사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식적인 기능이 혜음령 북쪽에 있었던 혜음원에서 혜음령 남쪽 벽제에 있던 고양군 관아의 벽제관과 관아 주변의 민간시설에 그 기능이 넘어가면서 폐사되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원은 고려시대..

절터 2010.10.02

양주 회암사지, 조선 최대 사찰에서 폐사지로 변해버린 무학대사가 수도했던 곳

양주 회암사는 태조 이성계의 정신적 지주이자 한양천도에 관여했다고 잘 알려진 무학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사찰로 조선전기에는 전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인도에서 온 고승 지공선사와 회암사를 크게 중창한 고려말 고승 나옹선사, 그리고 무학대사가 회암사를 대표하는 고승으로 절터 뒷편 현 회암사가 있는 곳에 그분들의 부도탑이 남아 있다. 회암사 규모에 대해서는 목은 이색이 쓴 '목은집'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262칸의 건물에 거대한 불상 7구를 모시고, 3천여명의 승려들이 이 사찰에 머물렀다고 한다. 양주 회암사에는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양위한 후 이 곳에서 머물렀으며,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도 이 곳 회암사에 머물면서 불교 공부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가 또한..

절터 2010.10.01

익산 미륵사지 절터, 백제 최대 사찰의 흔적

익산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이 세운 당시 최대의 사찰로 황룡사에 버금가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미륵사지의 구성은 독특하게 3개의 탑과 3개의 가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면부에는 신앙의 중심이 되는 탑이 중앙에는 목탑, 동.서쪽에는 석탑이 세워져 있고, 그 뒷편에도 3개의 금당터가 남아 있다. 금당 뒷편에는 강당이 있고, 그 뒷편으론 3개의 승방이 자리하고 있다. 승방의 규모로 볼때에도 상당한 인원들이 이 곳 미륵사지에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그 규모가 조금씩 축소되어오다 없어진 사찰로 보인다. 미륵사지 동탑과 나란히 있는 목탑지. 미륵사지 목탑터는 이 사찰터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신앙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목탑지 기단은 북편 중앙의 계단석, 기단 ..

절터 2010.10.01

부여 군수리사지, 궁남지 서남쪽 백제 칠지도가 출토된 사찰터

부여 군수리사지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 남쪽에 위치한 궁남지 한쪽편에 있는 사찰이다. 이 사찰터는 일제강점기에 사찰터 중에서는 조기에 발굴이 시작되어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인 1탑, 1금당의 가람배치가 처음 확인된 사찰이다. 이 곳에서는 유물이 많이 발굴되었는데 목탑터 주변에는 금동보살입상과 석조여래좌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이 곳에서는 백제와 일본의 교류를 보여주는 칠지도가 발굴되었다. 부여 궁남지 서남쪽에 위치한 군수리사지. 중앙에 목탑터가 있고, 그 뒤로 금당터가 있다. 군수리사지 가람배치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목탑터. 이곳에서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군수리사지 뒷쪽편의 금당터와 강당터. 원래 절터의 가람배치에 따라서 절터를 재정비하는 공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

절터 2010.10.01

부여 능산리사지,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 백제 성왕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찰

백제의 대표적인 고분군인 능산리고분군과 백제 수도 사비성을 둘러싸고 있던 부여나성 사이의 공간에 위치한 능산리사지이다. 이 절터에서는 1990년대 이후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와 이 절의 창건연대와 내력이 적힌 사리함인 백제창왕명석조사리함이 발굴된 곳이다. 1990년에 오랜 기간에 걸쳐서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절터를 관광자원화하기 위한 정비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보이며, 현재 보수공사의 모습의 보면 옛절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곳 능산리사지는 전형형적인 백체 사찰의 가람배치를 보여주는 1탑, 1금당과 강당,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절의 규모는 익산미륵사지 등에 비해 크지는 않은 편이며, 능산리 고분군을 지키는 원찰의 의미를 갖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현..

절터 2010.10.01

서산 보원사지, 절터 발굴현장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는 계곡을 지나서 약 5km 정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때 1,000명 이상의 스님이 머불렀다는 백제와 고려시대의 대형 사찰 절터인 보원사지를 만날 수 있다. 보원사 절터는 개심사로 유명한 상왕산 동쪽편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절터이다. 최근까지도 경작지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지금 이 유적지를 방문해 보면 부여박물관 주관으로 유적지 발굴작업이 활발히 진행중이다. 발굴중인 절터를 보면 입구인 당간지주 주위부터 많은 건물터가 발굴되고 있다. 보원사지는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금당터와 여러 건물터가 발굴/정비되고 있는 중이다. 보원사지 입구 당간지주 북쪽편으로 발굴 준비중인 건물터(?). 상당히 규모가 컸음을 알 수 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 뒷편에 있었던 금당터를 중심으로..

절터 2010.10.01

하남 춘궁동 동사지, 고려시대 절터

경기도 하남시 외관순환도로와 중부고속도로가 만나는 하남분기점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고려시대 옛 절터인 춘궁동 동사지이다. 지금은 외곽순환도로때문에 세상과 동떨어진 고립된 섬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것은 현대의 교통체계때문이라서 생긴 현상으로 이 곳에 외곽순환도로가 지나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에는 교통요지였던 곳 중에 하나일 것이다. 광주, 이천, 충주에서 문경새재까지 3번국도를 따라서 형성된 옛길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입구 요지에 춘궁동 동사지가 자리잡고 있다. 북쪽으로는 작은 산성이 이성산성이 있고, 남쪽으로는 철옹성 같은 요새인 남한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수도권에서도 큰 고을인 지금의 송파,강동구,성남,광주,하남을 포함하는 광주목이 있던 곳이다. 한강을 건너는 주요..

절터 2010.10.01

여주 고달사지, 발굴작업이 끝난 고달사지 절터

고달사지는 여주 남한강변에서 북쪽 강원도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는 국보로 지정된 고달사지 부도를 비롯하여 여러점의 유물들이 절터에 남아 있다. 최근에 발굴작업이 완료되어 당시 절의 규모가 확인되고 있는데 상당히 규모가 컸던 사찰로 보인다. 남한강 내륙수운의 중심지인 여주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상당히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전성기는 고려시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언제 이 사찰이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이후 남한강 주변의 대형 사찰들일 충주의 미륵사, 청룡사, 원주의 흥법사 등과 함께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조선시대 정부의 간섭이 심해서 사찰규모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주변 사찰 중에는 세종대왕 영릉과 관계된 신륵사만이 지금도 번창..

절터 2010.10.01

원주 거돈사지, 남한강 내륙수운 교통요지에 위치한 절터

원주시 부론면에 위치한 거대한 사찰이 있었던 흔적인 거돈사지이다. 충주나 제천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육로상에 위치하고 있어 역원과 같은 역할을 겸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사찰은 중문, 탑, 강당, 승방, 회랑 등을 갖추고 있는 통일신라시대 평지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일탑식 가람이라고 한다. 거돈사 절터를 찾아가 보니 지금은 현대적인 교통수단인 도로나 철도와 거리가 먼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적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지도를 살펴보면 걸어서 여행을 하던 당시에는 서울로 가는 중요 요지였음을 느낄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사찰의 전형적인 형태인 탑, 금당, 강당, 회랑을 갖추고 있으며, 주변에는 승방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많은 건물터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많은 승려들이 이 곳에서 머물렀으..

절터 2010.10.01

원주 법천사지, 남한강 부근에서 크게 번창했던 절터

원주 법천사지는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내륙수운인 남한강 수운의 중간쯤에 위치하였으며, 횡성에서 흘러내려오는 섬강이 남한강과 만나는 지점 부근에 위치한 부론면 중심지에 있다. 지금도 충북 충주와 강원 원주를 연결해 주는 남한강 대교가 있고,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나루터 중에 하나였던 곳이다. 이 곳 부근에는 법천사지 말고도 거돈사지, 청룡사지라는 거대한 사찰터가 있는데 각각 국보급 문화재로 선정된 부도탑을 가지고 있었던 곳이다. 이를 보면 동시대에 비슷한 내력을 가지고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고려시대에 이름난 고승들이 이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남한강 수운을 통해서 얻은 막대한 경제력이 이 사찰 유지를 뒷받침했던 것으로 보인다. 법천사지는 부론면 사무소가 있는 남한강변에서 약간 ..

절터 2010.10.01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보물 12호)과 삼층석탑(보물 13호)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하남으로 가는 길에 있는 춘궁동 동사 절터는 남한산성과 이성산성이 있는 크기 않은 분지에 위치하고 있는 절터로 금당터를 비롯하여 건물터 흔적이 발견된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사찰이 있었던 곳이다. 규모가 상당히 큰 사찰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두개의 탑만이 절터에 남아 있다. 이 절터를 지키고 있는 두개의 탑은 하나는 삼층석탑, 다른 하나는 오층석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개의 탑 모두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고려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두개의 탑 모두 지붕돌이 치켜들고 있는 모습으로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 가람 배치에서는 같은 모양으로 2개의 탑이 나란히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곳의 두개의 탑은 동시대에 같이 많들어진 것은 아니고 각각 ..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현모탑비, 용이 살아움직이는 듯한 탑비

남한강변에 위치한 원주시 부론면에 위치한 법천사지에는 오래된 절터에 옛날의 영화를 보여주는 듯한 유물로 고려시대 고승인 지광국사현모탑비가 남아 있다. 탑비가 있으면 현모탑(부도탑)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 곳에 없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현재는 경복궁 경내에 있다고 한다. 탑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모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탑비의 양식에 이 탑비만으니 독특한 양식이 많이 남아 있어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법천사지는 남한강 이북의 교통요진인 원주시 부론면의 교통요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조선시대까지는 남한강을 오가는 내륙수운에 있어서 중요한 나룻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부론면에는 원주와 충주를 연결해 주는..

원각사지 십층석탑 (국보 2호), 유리벽에 갇힌 탑골공원 석탑

서울의 중심으로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이래 오랜 기간 역사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던 탑골공원이 원래는 사찰이었음을 말해주는 국보 2호로 지정된 원각사지십층석탑이다. 경천사지석탑과 더불어 고려말, 조선초를 대표하는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으로 도교사상이 들어가 있는 많은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원나라의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석탑으로 또다른 북방민족이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수도 북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조각상들이다. 이 곳에 원각사라는 절을 세운 사람은 단종을 폐위시키고 무력으로 왕좌에 오른 수양대군, 즉 세조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많은 살생을 하고, 살아가는 가운데 피를 많이 본 민족인 토번족인 티벳인, 몽골인이 세운 원나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라마교를 많이 숭상하고 이런류의 조각상을 많이..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보물 104호), 백제 흔적 남아 있는 고려전기 석탑

서산의 유명한 사찰인 개심사가 자리잡고 있는 상왕산 동쪽편 보원마을에 있는 절터인 보원사지에 우뚝 서 있는 보물 104호로 지정된 보원사지 오층석탑이다. 가까이에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과 더불어 이 지역에 백제 불교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석탑이다. 이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고려전기에 세워졌다고 하며, 이층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쌓고 있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백제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석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석탑을 중심으로 보원사지 절터가 있는데 지금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이층으로 기단석을 쌓고, 그 위에 오층탑신을 쌓았다.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뛰어난 고려전기 석탑 중에서 걸작이라 ..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석불이 있는 골짜기에 자리잡은 보원마을에 위치한 절터인 보원사지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당간지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지만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웅장한 멋을 지니고 있다. 장식은 거의 없으며 기둥의 윗부분을 둥글게 깍아놓아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한때 1,000명 이상의 승려가 기거했다는 것으로 알려진 보원사지. 그 입구에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 보원사지 당간지주. 뒷쪽으로 보원사지 5층석탑과 절터 발굴현장이 보인다. 측면에서 본 보원사지 당간지주 보원사지 절터 발굴현장에서 바라본 당간지주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