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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보물 12호)과 삼층석탑(보물 13호)

younghwan 2010. 8. 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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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하남으로 가는 길에 있는 춘궁동 동사 절터는 남한산성과 이성산성이 있는 크기 않은 분지에 위치하고 있는 절터로 금당터를 비롯하여 건물터 흔적이 발견된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사찰이 있었던 곳이다. 규모가 상당히 큰 사찰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두개의 탑만이 절터에 남아 있다.

 이 절터를 지키고 있는 두개의 탑은 하나는 삼층석탑, 다른 하나는 오층석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개의 탑 모두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고려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두개의 탑 모두 지붕돌이 치켜들고 있는 모습으로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 가람 배치에서는 같은 모양으로 2개의 탑이 나란히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곳의 두개의 탑은 동시대에 같이 많들어진 것은 아니고 각각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보이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세웠다기 보다는 형식적이고 장식적으로 탑을 세웠다는 느낌을 준다.



현 위치는 하남시 춘궁동에 위치하고 있지만, 광주 춘궁리 석탑이라고 불리는 2개의 탑이다. 오층석탑이 먼저 세워졌고, 삼층석탑이 나중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적용한 고려시대 석탑이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광주춘궁리오층석탑(보물12호). 2층 기탄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이 탑의 특징은 1층 탑신부 몸돌 아래에 4개의 돌을 바쳐두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탑이 날렵하고 경쾌해 보인다. 이런 양식은 통일신라석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양식으로 이 탑만의 특징이라 한다


2층으로 이루어진 기단부. 이 석탑 기단부에는 특별히 부조로 장식하고 있지는 않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


광주 춘궁리 오층석탑

경기도 광주 춘궁동에 있는 5층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檀)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는데, 남쪽 면이 부서져 있어 그 안쪽으로 커다란 기둥돌이 들여다 보인다. 이 탑의 특징은 탑신부에서 드러난다. 첫층 몸돌이 2단인데, 아랫단을 4개의 네모난 돌로 두고, 그 위에 1장의 돌을 얹어놓았다. 이러한 예는 광주서오층석탑(보물 제109호)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고려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양식이다. 지붕돌을 구성하는 돌 역시 1∼3층은 4장, 4층은 2장, 5층은 1장이다.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은 5단, 2∼4층은 4단, 5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이러한 구성은 탑신부가 위로 갈수록 강하게 체감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지붕돌 아래는 수평을 이루어 반듯하며, 경사는 완만하면서도 네 귀퉁이 선이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있어 경쾌하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이 남아 있다. 구조상 불규칙적인 면이 많지만, 각 부분의 끝맺음마다 규칙성이 느껴지고, 탑신의 비례도 조화로운 우수한 작품이다. 지붕돌 모서리의 치켜올려진 정도나 기단을 2단으로 구성한 점 등 통일신라 후기 석탑양식의 전형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붕돌 받침수가 3∼4단으로 줄어든 점이나, 기단의 가운데에 새긴 기둥의 수가 줄어든 것 등으로 미루어 고려 전기인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광주 춘궁리삼층석탑(보물13호)..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이는 석탑으로 오층석탑보다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후기 이후 삼층석탑이 보편화되고 정형화되면서 예술적인 독창성은 약간 부족해 보이는 것 같은 석탑이다.


기단부는 목조건물처럼 보이게 하는 건물 기둥모양을 새겨놓고 있지만, 사천왕상이나 팔부중상 등을 새겨 놓지는 않고 있다.


탑신은 삼층석탑의 정형화된 비례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륜부의 보개석 등은 없어지고 탑신과 기단부만 남아 있다.


광주 춘궁리 삼층석탑

경기도 광주 춘궁동에 있는 3층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檀)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부의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의 가운데돌은 한돌로 짜여졌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땅속에 파묻혀 있고, 아래층 기단 맨윗돌 일부가 깨지고 없어졌다. 윗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아래면이 반듯하고 윗면도 완만한 경사를 보이지만, 지붕돌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뚜렷해 경쾌한 느낌이다. 이 탑은 1층 탑신과 2·3층 탑신의 크기가 줄어드는 비율이 따라 지붕돌도 작아지고 있어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탑의 세부적인 양식도 신라 후기 석탑의 전형적인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 중기 아래로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1966년 보수공사를 실시할 때 탑 안에서 곱돌로 만든 소탑(小塔)들이 발견되었다. <출처:문화재청>


두개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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